IRL 창업자에 1.5억 달러 소송 건 ‘소프트뱅크’, 스타트업 거짓 실적에 피해 보는 투자사들
제2의 왓츠앱 꿈꾸던 IRL, MAU 1,200만 명 중 95%는 조작된 ‘허수’ 영업이익 등 내세울 실적 없어 ‘사용자 부풀리기’로 투자사 현혹 ‘테라노스, 프랭크’ 등 실리콘밸리선 기업 실적 속이는 사기극 만연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 스타트업 IRL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과거 IRL에 2,000억원을 투자했던 소프트뱅크는 IRL이 서비스 이용자수를 부풀리는 등 계획적으로 실적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실리콘밸리에선 테라노스나 프랭크 사태 등 스타트업의 사기 행각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플랫폼에 대한 투자사들의 평가가 한층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IRL 창업자와 가족 상대로 1억5,000만 달러 소송 제기
19일(현지 시간)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미국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IRL의 창업자 아브라함 샤피와 그의 가족들을 상대로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의 투자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소프트뱅크는 소장을 통해 “IRL 측이 이용자 수를 조작해 부풀리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타 업체를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1년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II’를 통해 IRL의 창업자와 가족들이 가진 지분 일부를 사들이며 시리즈 C 라운드 투자를 주도했다. IRL은 소프트뱅크 투자 소식에 당시 시장가치가 10억 달러(약 1조3,300억원)로 뛰면서 단숨에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올랐다.
한때 IRL은 제2의 ‘왓츠앱’을 꿈꾸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고, 소프트뱅크는 IRL의 성장성을 믿고 투자했다. 당시 회사 관계자들은 IRL 앱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가 1,200만 명에 이르며, 미국의 28세 이하 인구 중 25%가 앱을 이용한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IRL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그간의 실적이 모두 거짓이었던 걸로 드러났다. 지난해 IRL 측은 앱 이용자 가운데 95%는 봇으로 생성된 조작된 가짜라고 인정했다.
IRL,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가까지 고용해 조작
SEC에 따르면 샤피와 그의 가족들은 타 업체에 수백만 달러를 들여 가짜 계정을 생성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IRL 신규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 기존의 투자자에게 알려진 것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고비용 구조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샤피는 IRL 운영 당시 MAU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여러 핑계를 둘러댄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IRL측이 집계한 이용자 수와 외부 기관 측정치 간 차이’에 관한 지적에 “IRL은 개인정보 보호 대상인 미성년 사용자가 많아 외부에서 데이터 추적이 잘 안된다”고 답변하며 얼버무렸다.
결국 아브라함 샤피는 지난 4월 CEO 자격을 박탈당했고, 회사는 6월 서비스를 접었다. 현재 IRL의 홈페이지에는 지난 6월 27일부로 회사 운영을 중단한다는 공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지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IRL 사태는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이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오랜 관행에 타격을 줬다”면서 “앞으로는 MAU를 앞세워 투자받으려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검증 절차가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제2, 제3의 테라노스 사건들’
사용자 수를 부풀러 투자를 받거나 회사를 매각한 스타트업은 과거에도 있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프랭크(Frank) 사건이 있다. 지난 4월 미국 대학 학자금 대출 중계 핀테크 스타트업 프랭크의 창업자 찰리 제이비스가 사용자 수를 부풀려 미국의 대형은행 JP모건에 회사를 매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미국 수사 당국에 따르면 제이비스가 프랭크 매각 직전 홍보하던 525만 명의 학자금 대출 신청 고객 수는 실제론 3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 2021년 9월 프랭크를 1억7,500만 달러(약 2,343억원)에 인수했던 JP모건에 따르면 제이비스는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가를 고용해 거짓 고객 목록을 만들고 사업 성과를 조작하는 등 계획적으로 은행 실사팀을 속였다. 제이비스는 증권·은행·전신 사기 등 혐의로 최대 징역 30년 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엘리자베스 홈즈의 테라노스 사건도 잘 알려져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로 불리던 홈즈는 피 몇 방울만 있으면 240가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며 거액의 투자를 받아 한때 기업가치가 10조원을 넘었으나 결국 관련 기술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지난해 11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이같은 스타트업의 실적 부풀리기 등 사기 행각이 잇따르자 이들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특히 B2C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투자에 신중한 입장이다. 국내에서도 고금리 여파로 인해 벤처투자 시장이 혹한기를 겪는 것과는 별개로 B2C 플랫폼들이 투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5만 회원을 보유한 제철 회 수산물 배송 서비스 ‘오늘회’를 운영하는 오늘식탁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으며, 가입자 20만 명을 돌파한 샐러드 신선배송 서비스 프레시코드도 지난달 후속 투자유치에 실패하며 파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