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감춘 ‘0원 요금제’, 800만 회선 자랑하는 알뜰폰 가입자 증가세에 영향 줄까
알뜰폰 가입자 1,400만 회선 중 휴대폰 가입자 809만 명
6개월마다 알뜰폰 갈아타기, '0원 요금제' 사라지며 제동
이통3사·알뜰폰 비슷한 서비스, 소비자 편익은 '저렴한 요금제'와 직결
국내 알뜰폰 가입자가 8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항목인 통신비를 최소화하려는 소비자가 급증한 데다 올해 4월부터 우후죽순 쏟아진 ‘0원 요금제’ 역시 가입자의 증가를 불러온 것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지난 6월 중순을 기점으로 다수의 사업자가 0원 요금제 판매를 중단하고 있어 가입자 증가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 이후 최대, 올해에만 82만 명 늘었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휴대폰 기준 알뜰폰 가입 회선 수는 809만 명을 기록했다. 이는 5월 794만 명에서 약 15만 명 증가한 수치다. 알뜰폰 가입자가 800만 명을 넘은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차량용·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전체 알뜰폰 가입 회선은 1,400만을 넘는다.
지난해 시작된 알뜰폰 가입자의 급증세는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국내 대형 이동통신 3사인 SK텔레콤(2,327만→2,323만)과 KT(1,374만→1,364만), LG유플러스(1,119만→1,108만)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불과 6개월 사이에 모두 합쳐 25만 명의 가입자를 잃는 동안, 알뜰폰 사업자들은 약 82만 명의 가입자를 늘렸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알뜰폰 가입자 급증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알뜰폰 가입자의 증가를 이끈 일등 공신 ‘0원 요금제’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면서다. 오늘(14일) 기준 알뜰폰 정보 제공 사이트 알뜰폰Hub에서 확인 가능한 0원 요금제는 약 30건으로, 대부분 음성 통화 50분과 기본 데이터 2GB 내외의 한정적인 서비스만 포함하고 있다. 기본 데이터로 10GB 이상을 제공하고 데이터 소진 후에도 최대 3Mbps 속도를 지원해 큰 인기를 모았던 0원 요금제들은 정상 요금인 3만원대를 되찾았다.
0원 요금제는 가입 시점부터 4G LTE 서비스를 0원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정상 요금을 적용하는 상품이다. 이같은 파격적인 조건이 가능했던 것은 중소 알뜰폰 회사들이 통신사에서 받는 회선당 최대 20만원의 보조금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3사는 지난 6월부터 알뜰폰 업체에 제공하던 판매장려금을 대폭 축소했다.
그 결과 7월부터는 알뜰폰 가입자의 증가세에 변화가 포착됐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가 발표한 번호 이동자 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 알뜰폰으로 번호를 이동한 사람은 약 21만8,000명으로 전월 대비 17.9% 감소했다. 특히 통신3사에서 알뜰폰으로 이동한 가입자는 6만2,201명으로 6월(7만8,910명)보다 21.17% 줄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알뜰폰은 판촉이나 정책 영향을 많이 받는데, 2분기에는 0원 요금제나 데이터 추가 제공 혜택이 많아 가입자가 급증했다”며 “하반기에 비슷한 수준의 판촉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가입자 증가세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짠테크’ 열풍에 청년 가입자 급증, 6~7개월마다 ‘갈아타기’가 대세
한때 ‘효도폰’으로 불리며 고연령층을 겨냥한 서비스로 여겨지던 알뜰폰은 최근 2·30대 고객의 절약 수단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최대한 없애 적은 돈이라도 모으려는 이른바 ‘짠테크’를 지향하는 청년들이 늘어난 데다, 가입 절차 역시 비대면으로 간편하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은 앞다퉈 0원 요금제를 내놓으며 6~7개월만 이용하면 위약금을 물지 않고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프로모션으로 청년층 고객 모시기에 열을 올렸다. 휴대전화는 물론 기업의 사무용 전화 역시 알뜰폰 회선을 이용하면 무약정 또는 2년 약정에 매월 1천원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사업자들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은 알뜰폰 신규 가입자 중 2·30대 고객의 비중을 70%가량까지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상당수 청년 고객은 6~7개월마다 ‘알뜰폰 갈아타기’를 하며 사업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한 20대 직장인은 “학생 때부터 KT를 오래 이용했는데, 작년에 알뜰폰으로 옮긴 후 6개월마다 다른 알뜰폰으로 갈아타고 있다”며 “가격적인 메리트가 커서 알뜰폰을 이용 중인데, 0원 요금제가 사라진다면 계속 이용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가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곳에 정착해 매달 꾸준히 통신 요금을 납부할 것으로 기대했던 알뜰폰 사업자들은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실정이다.
“알뜰폰 적극 지원” 정부 공언, 소비자 편익으로 이어질까
정부는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강화해 통신 시장 내 경쟁을 활성화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더 큰 편익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지난 7월에는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도매의무제공제도 상설화 등을 골자로 한 통신 경쟁 활성화 핵심 정책을 제시했다.
알뜰폰은 기존 이동통신사의 서비스와 설비를 도매로 받아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그동안 정부는 알뜰폰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알뜰폰 사업자가 의무 기간통신사업자(SK텔레콤)에 요청을 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망을 의무 제공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해당 규정은 전기통신사업법 부칙에 규정된 일몰 기한에 따라 지난해 9월 효력이 만료된 상태로, 이를 상시화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그간 알뜰폰 업계는 5G 요금상품 등을 판매함에 있어 대형 통신사와 협상하려면 ‘도매의무제공’이라는 핸디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 외에도 정부는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 방안으로 △유통망 추가지원금 한도 확대(공시지원금의 15→30%) △알뜰폰 5G 중간 구간 도매제공 △알뜰폰 데이터 대량 선구매 시 할인 폭·방식 확대 등을 제시했다.
다만 정부의 청사진이 현실로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해당 안은 국회 입법 절차를 거쳐야 실효성을 가지게 되는데, SK텔레콤을 비롯한 대형 통신사들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매의무제공제도가 지나친 규제이며 시장 혁신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미 1,400만 회선 규모를 자랑하는 만큼 알뜰폰 사업자들도 대형 통신사와 비슷한 수준의 협상력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특히 알뜰폰 시장에는 신규·중소 사업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토스와 KB국민은행, 기존 이동통신사의 자회사 등이 진출해 있는 만큼 과도한 보호장치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도매의무제공제도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견해차가 큰 만큼 이후 통신 시장의 판도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 알뜰폰 사업의 특성상 “경쟁력 있는 알뜰폰 사업자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0원 요금제에 버금가는 저렴한 요금제 등으로 실현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업계와 소비자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