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없으면 투자유치 어림없다? 벤처기업이 꼽은 ‘투자유치 걸림돌’ 1위는

벤처기업협회 ‘벤처기업 투자유치 현황 및 애로조사’ 결과 발표 응답자 48% ‘실적 위주 보수적 투자 심사’ 어려움으로 꼽아 위험 회피 급급한 ‘큰 손’ VC-정부, 신생 기업 성장은 누가 돕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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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와 경기침체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 벤처 업계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업은 실적 위주의 보수적인 투자심사가 사업 성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투자 업계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신생 기업에 ‘꽉 막힌’ 투자유치의 길

4일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벤처기업 투자유치 현황 및 애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 중 48.1%가 투자유치에서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실적 위주의 보수적 투자 심사를 꼽았다. 이어 기업가치 저평가(20.5%), 투자유치 관련 지식 및 노하우 부족(18.2%) 등의 순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디딘 신생 기업들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벤처기업들은 투자유치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응답 기업의 36.8%는 투자자 사전 동의 조항으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속한 의사결정 방해(34.7%), 자금조달 어려움(18.9%), 경영 간섭(13.7%) 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사전 동의 조항은 투자자가 특정 회사에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 체결하는 신주인수계약서에 포함되는 내용으로,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투자자와 사전에 협의하거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투자자가 가장 많이 요구하는 사전 동의권 유형은 신주 발행 등 후속투자유치로 18.6%를 차지했다. 이어 합병 및 분할(17%), 주요 자산 매각(15.4%) 등 순을 보였다.

벤처기업들은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정부의 벤처투자 예산 확대(31%), 국내외 투자자와 네트워킹 활성화(20.7%),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제도 활성화(17.6%)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올해 6월 기준 투자금액 합계 5,000만원 이상, 자본금 중 투자금액 합계 비율 10% 이상인 308개 회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 벤처기업들의 투자유치 현황과 각종 애로 사항,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이번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하반기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 활동 강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큰 손’ VC들 “수익보다 안전이 중요”

이같은 벤처기업계 투자 혹한기의 배경에는 VC 업계의 양극화가 있다. 실제로 자금력이 탄탄한 대형 VC들 사이에서는 고위험 회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 대형 VC는 단기적 고수익보다는 ‘대안적인 금융 상품에 비해 안정적이면서 높은 투자 수익’에 초점을 맞추고 논리적인 판단에 근거해 매우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한다. 이는 대규모 자금력과 시장의 상황에 밝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심사역을 모두 보유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며, 시장을 구성하는 VC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반대로 중소 VC들은 고수익을 위해서라면 고위험을 감수하는 사례가 많아 상대적으로 뛰어난 유연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자금력이 부족한 이들 VC에 요즘 같은 투자 경색기에 활발한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들은 단일 투자보다 펀드를 조성하는 등 방식으로 소자본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신사업 진출을 목표로 하는 VC가 10억원에 대한 투자처를 고를 때, 1개의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해당 영역에 투자하는 100억원 규모의 펀드에 출자해 여러 스타트업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VC는 안정적인 관리 수준과 장기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개별 스타트업이 유치하는 투자액은 줄어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벤처기업 성장 도모하겠다”던 정부도 ‘위험 피할 궁리만’

모태펀드 운영 등으로 벤처기업 성장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정부의 위험회피 심리도 벤처 투자 업계에 찬 바람을 불어 넣은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정부 주도 모태펀드는 도입 당시부터 스타트업 등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되는 자산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는 정부 모태펀드가 공적 자금 성격이 강한 탓에 투자 실패에 따른 후폭풍을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부 모태펀드가 시장 전체의 위험 부담을 하향 조정하는 방식으로 유한책임출자자(LP) 등의 VC 조합 결성 참여율을 높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자금이 VC 시장 전체의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만큼 정부의 위험회피 성향은 ‘벤처기업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모태펀드 도입 취지와는 동떨어진 행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