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계획 ‘2030→2035년’으로 연기, 갑작스러운 전환에 당황한 자동차 업계

수낵 총리 “인플레이션과 이자율 상승에 따라 어려움 겪는 가계 위한 조치”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선 “전기차 전환 늦춰달라”는 주장 힘 얻을 수도 다만, 주요국 모두 ‘전기차 전환’에 힘 쏟고 있어 반발 계속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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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사진=위키미디어

영국이 휘발유 및 경유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5년까지 연기하겠다며 탈탄소 전환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친환경 정책이라는 미래 전략보다 당장의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기조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고통받는 가계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중동, EU 등 주요국 모두 전기차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가운데 영국의 이번 조치가 내연기관차 퇴출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독일 등 일부 국가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수낵 총리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해

2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룬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자신들의 개입 없이도 2030년쯤에는 영국에서 판매되는 차량 대부분이 전기차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20년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2030년을 내연차 퇴출 시기로 밝히면서 전기차 전환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수낵 총리는 최근 당시의 환경 정책이 소비자에게 부담을 강요한다며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탈탄소 전환은) 정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인 여러분이 선택해야 한다”면서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해당 논쟁은 너무 감정적이며 명확하지 않다. 영국은 균형 잡힌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던 자동차 업계에선 수낵 총리의 갑작스러운 발표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영국에서 전기차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포드의 영국 지부 대표 리사 브랜킨은 “우리는 영국 정부로부터 포부, 약속, 일관성 등 이 세 가지를 원한다”면서 “이번 완화 결정은 이 세 가지 모두를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아차도 “(이번 조치는) 복잡한 공급망 협상과 제품 생산 일정에 차질을 가져오면서 소비자와 업계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 “영국 정부가 계획을 연기하는 것이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미국, 중동, EU’ 등 지금 세계는 전기차 체제로 전환 중

영국의 이번 조치는 최근 세계 주요국이 보이는 흐름과 완전히 반대되는 행보다. 먼저 미국은 지난 5월 ‘자동차 배기가스 허용 기준안’을 새롭게 발표하며 2027년식부터 2032년식까지 새로 생산되는 차량의 이산화탄소 등의 배출총량 크게 낮추도록 했다. 사실상 미국에서 내연기관 차량을 생산 및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EU 역시 지난해 10월 오는 2035년부터 27개 모든 회원국에서 휘발유·경유 등을 연료로 쓰는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안에 합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2030년까지 신차의 탄소배출량을 2021년 대비 55%까지 줄여야 하며, 2035년 이후 판매하는 신차에 대해선 탄소배출량을 100% 감축해야 한다.

중동에서도 전기차 시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특히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는 탈석유 시대에 대비해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추진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30년까지 수도 리야드 내 자동차의 3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에 더해 총 5,000억 달러(약 670조원)를 투자해 네옴시티에 100% 전기차만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전기차 산업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현재 정부는 2035년까지 무공해차 전환을 정부 과제로 설정하고 관련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30년까지 누적 기준 450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차에 대한 세금·주차·통행료 등의 혜택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2021년 사우디에서 열린 ‘내셔널 오토 어워드’에서 베스트 럭셔리 크로스오버에 선정된 전기차 ‘제네시스 GV70’/사진=현대자동차

영국의 정책 전환이 불러올 변화

한편 전기차 전환에 브레이크를 건 영국의 이번 조치가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도 나온다. 현재 내연기관차 퇴출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부 EU 국가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차 체제 전환에 반대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EU의 친환경 정책에 꾸준히 예외 조항을 추가할 것을 요구해 온 독일과 이탈리아에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먼저 독일은 예외 조항으로 탄소를 덜 배출하는 합성 연료를 허용할 것을 요구 중이며, 이탈리아도 탄소 배출 목표가 일자리와 생산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 선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결국 법안을 완화하자는 의미로 내연기관차와 관련된 일자리와 산업에 가해질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의 전기차 전환 속도에도 영향이 전혀 없을 것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미 미국에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얽힌 이해관계나 내연기관차의 수익성, 전기차 전환에 따른 비용 등으로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체제 전환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지난해 전기차 비중은 5.8%로 향후 10년 후 67%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계획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 관계자는 “2030년에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새 자동차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운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와 달리 실제론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속도가 훨씬 느려 목표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