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로 CVC 투자 활성화, 대·중견기업 분리 규제해야”
CVC 투자 규제, 규제샌드박스로 풀어내야 해외 진출 지원하는 전략적 투자자형 CVC도 등장 한국 CVC들의 해외 기업 투자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스타트업 민관협력 단체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의 투자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투자 활성화를 위한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CVC의 특수목적회사(SPV) 설립을 허용하고, SPV에 규제샌드박스를 적용해 현행 규제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CVC 투자 활성화를 막는 조항들을 빠르게 해결해야 벤처 투자 시장이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벤처투자 시장 어두운데 대기업들의 벤처투자 시장 진입도 가로막는 규제
CVC는 금융 기업이 아닌 일반 대기업이 보유한 벤처투자 기관을 말한다. 기존에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보유하는 것이 금지됐으나, 지난 2021년 말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CVC를 설립해 사내 벤처나 외부의 벤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일반지주회사의 CVC 지분 100% 보유 △부채비율 200% 제한 △펀드 외부자금 비중 40% 제한 △해외투자 한도 20% 제한 등 각종 규제로 CVC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강형구 교수의 제안도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CVC의 제도적 장벽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특히 “국익과 사회적인 공익에 부합하는 SPV를 대상으로 규제샌드박스를 적용해 제도적 장벽을 해소해 줄 필요가 있다”며 “SPV를 공급망, 딥테크, 산학연계 등 국익에 부합하는 특정 정책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는 규제샌드박스로 해결, 그보다 해외 투자에 적극 나서야
노규승 현대차 제로원 팀장은 국내에서는 스타트업의 투자 제한을 규제샌드박스로 완화하고, 글로벌 시장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국내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 제한을 풀기 위해 기존에는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진출에 나설 경우 CVC의 투자 제한을 일부 풀어주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로 본사를 옮길 경우 CVC의 투자 제한에 적용되지 않는 부분도 언급됐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강조하던 노 팀장은 “현대차의 글로벌 혁신거점을 중심으로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 CVC나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삼성이나 현대차 등 대기업도 긴장하고 M&A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경쟁을 통한 선순환 구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률적인 CVC 규제 폐지돼야
기업 규모별로 CVC 규제가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에 따르면 대기업보다 중견기업 CVC가 투자할 때 더욱 부담으로 작용하는 규제의 제약을 받아 투자가 위축된 측면이 있다면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분리해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전년 대비 17% 감소했지만 CVC 투자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며 “벤처투자 활성화와 혁신 촉진을 위해선 대·중견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활동과 연계한 독립법인 형태의 CVC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유사한 주장을 제시했다. 상당수의 CVC는 일반 VC와 유사한 운영체계를 갖출 수 밖에 없으며, 펀드의 외부자금 조달이 필요하므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중견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논지다.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해외 투자도 진행돼야
토론회 발표를 들은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이미 스타트업 수가 포화 상태에 도달했으므로, 혁신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의 해외 투자 목적의 다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최근 들어 한국 스타트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면서 대기업들도 CVC를 해외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전략적 투자자(SI) 형태로 스타트업 투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한 재무적 이익을 얻는 측면을 넘어, 미래 사업 기회 확대라는 큰 그림을 그리며 해외 투자를 추진하는 것이다.
한편 대기업의 해외 투자 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에 대한 열띤 논의도 이어졌다. 동석한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금융업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자국 편향성(Domestic bias)’이 대기업들의 투자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한국 대기업들이 해외 기업들과 문화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투자를 진행하다 실패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2018년 SK그룹이 180억원에 인수했던 한 실리콘밸리의 데이터 과학 전문 스타트업의 인수 직후 해당 스타트업의 유일한 핵심 인재였던 데이터 과학자가 회사를 떠났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기술 역량을 얻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할 경우 투자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지난18일 정부는 현행 CVC의 해외투자 한도를 자본금의 20%에서 3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규제 완화의 계기로 대기업의 해외 투자가 활성화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