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의대 정원 확대가 낳을 국내 벤처 업계의 암울한 미래
의대 정원 확대로 타 전공에 인재 몰릴 확률 더 낮아져 IT 벤처 업계, 영어 실력 부족으로 학습 속도 느린 한국 인재들 문제 더 가속화될 것 인재 더 줄어들면 국내에서 벤처 운영해야 할 이유 사라진다는 의견도
최근 의대 정원 확대 탓에 강남 일대 학원가가 북적거린다는 소식에 벤처기업가 A씨는 ‘한국에서 벤처하겠다는 애들 숫자가 더 줄어들고, 인력 수준도 더 낮아질 것’이라는 평을 내놨다.
A씨는 그간 한국에 제대로 된 인력이 없어 한국에서 사업체를 키우기보다 ‘리모트 근무’를 통해 후진국 영어권 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회사 운영이 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놓는 사업가였다. IT 스타트업 특성상 한때 전 직원의 80%를 개발자들로 채용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모든 개발 업무를 인도, 베트남 등에 외주를 준 상태고, 국내에서 해야 하는 업무는 본인이 직접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대 정원 확대, 다른 전공에 인재 들어가는 비중 더 낮출 것
A씨는 해외에서 개발자들을 채용하면서 한국보다 훨씬 더 최신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적극적으로 해외 채용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개발 업무에 뛰어드는 경우 중 대부분은 고교 수능 영어 시험에서 1등급을 받기 어려운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어 해외에서 나오는 새로운 기술, 적용, 활용 방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해외 커뮤니티에 질문을 하려고 해도 영어로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는 경우가 압도적인 다수라는 것이다. 심지어 수능 영어에서 1등급을 받았다고 해도 영어 문장으로 해외 커뮤니티에 적절한 의사소통이 되는 경우가 사실상 없는 만큼, 해외의 최신 지식을 바로바로 흡수해서 개발에 쓸 수 있는 인력은 아예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답했다.
한국어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번역 지식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국내 IT 인력과 달리, 영어를 모국어 혹은 준 모국어로 활용하는 국가의 인력들은 당장은 IT 개발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국내 인력을 추월하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 채팅을 통한 간단한 의사소통 이후 구글 검색에서 찾은 글 링크 몇 개만 공유해 주면 최종 결과물에서 한국 개발자들보다 더 수준 높은 결과물을 내는 경우들을 자주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서 영어 실력 기준으로 1등급에 해당하는 인력들 중 더 많은 숫자가 의대로 진입하고 타 전공의 ‘입학 커트라인’이 낮아질 것이 확실시된 만큼, 안 그래도 한국에서 일을 시킬 수 있는 수준의 훈련을 받은 인력 뽑기 힘든데, 앞으로는 자기 힘으로 훈련을 감당할 수 있는 인력 찾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겠냐는 의견도 내놨다.
이병철, 정주영이 의대 갔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다?
VC 업계 경력 5년 후 창업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B씨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VC 업계에 몸담고 있을 당시 만나봤던 국내 벤처 창업자들 중 상당수가 ‘이거 안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인재들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이런 실력인데 어떻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창업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고교생 중 실력파 대부분이 의대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타 전공으로 흘러 들어간 인재들의 역량 부족이 현업에서도 조금씩 나타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어린 창업자들을 만날 때마다 더욱 강하게 느낀다고 답변했다.
B씨는 또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이 30~40년대에 사업 포기 후 좌절했었다면, 혹은 그런 인재들이 의대를 갔었다면 지금 한국의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 운영을 통한 국가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사회 풍토 자체도 조성되기 힘들었을 것”이라 지적하며 “창업을 응원하고, 창업가의 역량 부족을 채워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돼도 시원찮을 상황에 거꾸로 창업과 거리가 먼 ‘꿀을 빠는’ 대학 전공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씁쓸해하기도 했다.
A씨도 이미 영어권의 평범한 인력이 한국의 상위권 인력보다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한국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리모트 근무’를 통해 해외 인력을 뽑아 운영하겠다는 생각이라며, 같은 생각을 하는 기업가가 많아질수록 한국에선 거꾸로 의대, 비의대 구분이 명확해지는 이원화된 노동시장 분리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의대 정원 확대한다고 의사들의 역량 올라갈까?
A씨와 B씨 모두 국내 시장 특성상 의대 정원이 확대되고 의사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진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과 같은 일부 금전적으로 수익이 나는 전공에 인력이 몰리는 현상, 의학 연구는 도외시되는 현상 등을 감안할 때, 정원이 확대된다고 해서 의사들의 역량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술기(術技)’로 불리는 기능적 지식만 더 쌓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어 지난 몇 년 동안 정부 정책 덕분에 국내 IT 개발자 공급이 크게 늘어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인력은 ‘파이선(Python)’ 등의 개발 기초 언어를 이용해 간단한 시스템을 만드는 역량만을 갖추고 있을 뿐, 복잡한 서버 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개발 언어를 직접 만들어 고급 서비스를 내놓는 토대를 마련하는 등의 도전을 하는 인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인력들이 IT 개발을 하든 의대를 가든, 어느 전공을 선택해도 결과물의 예상치는 비슷하지 않겠냐는 인식이 안타까운 예측의 근거다.
이미 3년 전 해외로 스타트업을 이전해 최근의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C씨도 의대 정원 확대는 지금도 인재와 역량이 부족한 한국 벤처 업계를 더더욱 암울하게 만들 것이라는 A, B씨의 의견에 공감대를 표현했다. 해외 진출 후 한국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인재를 채용하고 시장에 접근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한 C씨는 “모든 부분을 다 제쳐놓고, 영어 실력에서 한국인이 영어권 국가 인재들의 학습 속도, 이해도를 따라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IT 분야처럼 영어로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나오는 업계는 한국의 최상위권 인력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제 영어 실력이 더 부족한 인재가 이 시장에 공급된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한국을 인재 채용이 가능한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