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금융위 조각투자 관련 혁신금융 심사 일정, 업계는 ‘한숨만’
조각투자 규제 샌드박스 허가 안건 금융위 심사 일정 불투명
뮤직카우 등 일부 업체 '금전신탁수익증권' 형태로 제재 면제
투자자 권리·투자금 안전 위한 신중론도 힘 얻어
미술품 등의 자산을 여러 지분으로 쪼개 투자하는 ‘조각투자’ 장내시장 개설을 위한 금융당국의 규제특례 심사가 1년 넘게 지연되며 관련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며 신규 사업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인건비 등을 투입한 관련 회사들은 사업 지속 여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혁신금융서비스 심사도 대기업 위주?
27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에 이어 이달 열리는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 심사 소위원회에서도 조각투자 서비스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허가 안건은 포함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9월 13일 발표된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 의결 결과에서는 △안면인식기술과 위치확인기술을 활용한 내점고객 대상 실명확인 서비스(중소기업은행) △셀러 웰렛 통합 금융지원 서비스(쿠팡페이·하나은행) △골프장 캐디 대상 QR 기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그린재킷) 등 총 10개의 서비스가 신규 지정되고 기존 서비스 25개는 지정 기간을 연장했다.
당초 투자 업계에서는 금융 당국이 10월 전까지는 조각투자 장내시장 개설을 위한 규제특례 심사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각투자 상품(투자계약증권)이 2024년부터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기 위해 더 늦어져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위는 지난해 4월 ‘조각투자 등 신종증권 사업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해당 가이드라인이 조각투자에 대한 법규 적용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위법 행위 발생을 예방하고, 충실한 투자자 보호를 토대로 한 건전한 시장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 이후 구체적인 규정 등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일부 업체에 한해 사업 재개에 성공한 곳도 있다. 음악수익증권 플랫폼 뮤직카우는 지난해 4월 미등록 증권업으로 분류돼 서비스가 중단됐지만, 올해 금전신탁수익증권 형태로 사업 제재 면제 조치를 면제받아 지난 9월 다시 영업에 나섰다. 음악 저작권료를 기존의 참여 청구권이 아닌 수익증권 형태로 유통하는 방식이다. 뮤직카우 외에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 아트투게더와 테사, 한우 조각투자 플랫폼 뱅카우 등이 올 하반기 사업 재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 상품을 다루는 극소수의 사업자를 제외하면 신탁수익증권을 다루는 사업자들은 사업자들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기존에 조각투자 서비스를 진행하던 대다수의 회사와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업체들은 사업 중단 또는 연기 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 심사 및 승인 절차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근 혁신금융으로 신규 지정된 서비스 중 상당수가 쿠팡, 하나은행, 교보생명, 삼성생명 등 대기업이라는 점을 지적한 이들은 “중소 업체들은 심사 순위에서도 뒤로 밀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사업을 재개한 일부 조각투자 플랫폼과 같은 품목을 다루는 업체들은 초기 사업자가 시장을 선점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혁신금융서비스 수요조사 신청서를 제출하면 늦어도 몇 달 안에 결과가 나는데,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유독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짚으며 “무조건 사업을 허가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업 전개 가능 여부라도 알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불공정 거래 위험 커” 신중론도
다만 전체 투자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신중한 행보에 일부 공감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조각투자의 특성상 투자자의 청구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와 투자금이 안전하게 관리되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고, 업체 중 상당수가 상품의 발행과 유통을 겸해 불공정 거래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뮤직카우가 1년 5개월 동안 영업을 중단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용자들의 민원이 거듭 제기되며 금융당국의 제재로 이어진 결과다.
사기 행각 등 조각투자를 악용한 사례 또한 속출하고 있다. 다수의 가해자가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미술품 조각투자를 빌미로 가상화폐를 발행한 뒤 시세조종으로 약 4,000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사건이 대표적 예로, 이들 가해자는 올해 구속 기소돼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로 재판 중이다. 이와 같은 각종 불법 행위가 반복되는 것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 데서 비롯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조각투자 시장 규모는 2030년 3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외 시장 개설은 관련 법 개정 후 가능
사업자 입장에서의 고충도 제기된다. 증권을 모집 또는 매출하기 위해 금융위에 제출해야 하는 증권신고서에 과도한 시간과 비용, 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권신고서에는 투자상품의 정보와 투자의 위험성 등 모집 또는 매출에 관한 사항은 물론 회사의 재무와 임원의 보수 등 발행인에 관한 사항 등을 상세히 기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투입되는 비용이 상품 판매로 기대할 수 있는 수익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높은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당초 늦어도 10월에는 혁신금융서비스 심사 소위원회에서 조각투자 장내시장 개설을 위한 규제특례 심사에 나설 예정이었던 금융당국은 결국 이같은 각계 관계자들의 우려에 부담을 느껴 심사를 유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사가 늦어지며 장외 시장 개설도 법 개정 후로 미뤄지게 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증권 발행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유통 업무는 아무에게나 허가할 수 없다”며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주식을 발행하고 거래소를 운영할 수 없는 것처럼 장외시장은 경쟁 형평성을 뛰어넘을 정도의 혁신성과 필요성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