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까지 침투한 OTT 콘텐츠, 영화계가 자초한 ‘극장 영화의 몰락’
날개 돋친 OTT와 날개 꺾인 극장 영화, “OTT 없인 영화제도 못 열 판”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영화계, “볼 게 없으니 극장에 안 가지” 극장 영화 ‘퀄리티 저하’ 가시화, “몰락의 근원은 영화계 그 자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OTT 작품이 여럿 침투했다. 몇 년 전만 해도 OTT 작품이 영화제 전면에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음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지난 2021년 OTT 시리즈를 소개하는 ‘온스크린’ 부문을 신설한 부산국제영화제는 그해 두 작품을 선보이더니 올해엔 다섯 작품을 초청했다. OTT 작품들이 영화제의 후광을 노리는 가운데 영화제의 본래 주역이라 할 만한 극장 영화들은 다소 푸대접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OTT 비중 ‘극대화’, 영화계 부진은 어디까지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OTT 신작들이 황금 상영 시간대에 대거 포진됐다. 넷플릭스 영화 <독전2>, <발레리나>, 티빙 시리즈 <운수 오진 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디즈니+ <비질란테> 등 공개를 앞둔 주요 신작이 현지 관객의 높은 관심 속에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OTT 신작으로 피케팅 열기가 극장 영화에서 OTT 콘텐츠로 옮겨붙은 것이다. OTT가 영화제에서조차 성행을 이루기 시작한 데엔 영화계의 부진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올해 부산에서 공개된 신작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CJ ENM과 미국 A24가 공동제작한 배우 유태오 주연의 <페스트 라이브즈>와 배우 송중기, 신예 홍사빈이 주연한 <화란>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눈에 띄는 신작은 없었다는 게 영화계의 시선이다.
극장 영화의 위기는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제28회 부산영화제는 OTT 작품 없이 열리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중이 컸다. 영화제에 초청되는 건 주로 개봉 예정작이나 산적한 창고 영화들이 선뜻 개봉일을 잡지 못하고 있어 영화제 자체가 열리지 못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결국 위태로운 영화계 전반의 분위기가 영화제에까지 반영된 모습이다. 극장 영화 신작과 온도 차도 느껴졌다. OTT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과감하게 콘텐츠를 만들었고, 국내 최대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에서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공개를 앞둔 주요 영화, 시리즈, 심지어 다큐멘터리까지 잘 만들었다는 인상을 줬다. 무엇보다 과감한 시도가 돋보였다. 반면 극장 영화들은 새로운 시도는커녕 기존에 쥐고 있던 사탕마저 놓치는 모습을 보였다.
싸늘한 극장가,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영화계
최근 극장가는 싸늘하다. 영화계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8월 극장가 매출을 확인한 결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첫해였던 작년 8월보다 올해가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 8월 국내 극장의 전체 매출액은 1,433억원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8월 대비 90억원(5.9%) 줄어든 수치다. 관객 수도 같은 기간 39만 명 줄어 1,456만 명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관보다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기대를 모았던 여름 대작들이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8월 공개된 OTT의 콘텐츠 <무빙>, <마스크걸>이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영화관이 ‘여름 장사’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치솟은 티켓 가격을 비롯해 기대만 못한 퀄리티 등 내부적 요소도 극장 영화의 몰락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웅>, <교섭> 등 유명 배우들과 흥행 신기록을 써온 제작진들이 뭉쳐 내놓은 한국 영화들이 관객들의 발길을 잡지 못한 가운데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아바타:물의 길> 등 해외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반기 기준 5월 <범죄도시3>가 개봉하기 전까지 매출액 200억원, 관객 수 200만 명을 넘긴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점은 국내 영화계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영화계 전반에 걸친 문제라고 보기엔 외국 영화의 회복세는 가팔랐다. 올 상반기 외국 영화 매출액은 3,956억원이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이전 평균인 4,461억원의 88.7%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외국 영화 매출액은 74.0% 늘었다.
볼 영화가 없으니 극장에 가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처사다. 익숙한 기획, 뻔한 소재와 장르 등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극장 영화의 부진을 마냥 OTT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되는 이유다. 누리꾼 사이에선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OTT 콘텐츠만 봐도 최근 관객들이 극장에 걸리는 영화를 외면한 이유가 이해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개된 OTT 콘텐츠들 중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콘텐츠가 많았고, 아쉽다는 반응이 집중된 작품도 있었지만 OTT 콘텐츠의 ‘새로운 시도’는 관객이 응당 가질 만한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사실상 OTT와 극장 영화를 단순 비교하는 게 의미 없어진 수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악의 성적’ 거둔 추석 연휴, 원인은?
이 같은 평가는 극장가에서 가장 대목인 추석 연휴 기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추석 연휴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1947 보스톤>, <거미집> 등 기대작 3편이 공개됐지만, 세 작품 모두 손익분기점 200만 명을 맞추지도 못했다. 그나마 <천박사>는 15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나 <1947 보스톤>은 73만 명, <거미집>은 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이에 영화계에선 “사실상 셋 다 망했다”, “최악의 추석 성적”이라는 비판적인 평가가 쏟아진다.
심지어 올해 추석 연휴 극장가 성적표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막 벗어났던 지난해 추석 연휴 기록에도 미치지 못한다. 작년 추석 연휴는 주말을 포함해서 나흘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공조2:인터내셔날>이 연휴에만 누적 3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공조2>는 당시 일일 관객 수가 85만 명까지 치솟기도 했으나, 올해 1위인 <천박사>의 연휴 일일 최대 관객 수는 30만 명에 불과하다. 추석 연휴에 잘 된 영화는 이후 입소문을 타며 장기 흥행을 하기도 하지만 올해 추석 연휴 1위 영화인 <천박사>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정론이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3일 <천박사>가 새 영화 <30일>에 밀려나며 2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디어의 시대를 이끌어 갈 주역이 OTT로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장엔 관객이 대폭 줄었고, 영화제에선 OTT 콘텐츠들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고 있다. 영화계가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자성해 나가야 할 이유다. 일각에서 “마니아층이 두터운 애니메이션 영화, 블록버스터 영화 등의 성공만으로 영화의 퀄리티 측면을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는 궤변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최근 극장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재미가 보장된 영화만 본다’에 가깝다.
실제로 시작이 미미했던 영화 <올빼미>는 추후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좌석 점유율을 유지해 흥행에 성공했다. 반면 <극한직업>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바 있는 이병헌 감독의 기대작 <드림>은 개봉 2주차부터 10%대의 좌석 점유율을 보이며 흥행에 난항을 겪었다. 극장엔 관객이 줄었지만, 대중들 사이에서 ‘볼 게 없어 심심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OTT의 등장은 극장 영화의 몰락을 가속했을 뿐, 그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를 답습하는 영화계 내부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