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매장에서 ‘유료 멤버십’을? 전자랜드의 승부수 통할까
상반기 가전 시장 전년 동기 대비 8.3% 축소, 경쟁 본격화 '공격적 사업 전개' 전자랜드 vs '효율 극대화' 하이마트 중소기업 품고, AS 확대한 쿠팡에서 주도권 뺏어올 수 있을까
국내 최초의 오프라인 가전 양판점 전자랜드가 유료 회원제 ‘랜드500′(LAND500) 서비스 확대에 팔을 걷었다. 전국에 위치한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서 매주 특정 품목을 선정해 온라인 최저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전자랜드는 이를 통해 쿠팡을 비롯한 대형 이커머스로 발길을 돌린 소비자들을 자사의 오프라인 매장으로 되돌리겠다는 방침이다.
집객 효과 최대화 위해 ‘멤버십’ 카드 꺼낸 전자랜드
6일 업계에 따르면 전자랜드는 이달부터 매주 가전제품 한 품목을 특가 품목으로 선정해 유료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에게 온라인 최저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해당 품목에 대한 포인트를 지급한 후 안내 문자를 발송해 소비자의 매장 방문을 유도하고, 특가 품목을 구매할 때 미리 지급된 포인트를 일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특가 품목 선정 방식은 가을과 겨울 주문량이 많은 가습기, 김장철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김치냉장고 등 계절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는 제품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전자랜드는 프로모션을 위해 사전에 발주하는 방식으로 미리 상품 수량을 최대한 확보한 후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랜드500은 지난 5월 가전 양판점 가운데선 처음으로 유료 회원제 매장을 선보인 후 지난달 19일 경주점까지 6개월 사이 15개의 매장을 열며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 중이다.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 중인 500여 가지의 상품을 온라인 최저가 수준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추가 할인 및 포인트 적립 등을 제공한다. 회원 등급은 라이트(1만원), 스탠다드(3만원), 프리미엄(5만원)으로 구분된다. 제품 구매 시 쌓이는 포인트는 등급별로 차등 적립되며, 가입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캐시백을 제공하는 점 등이 특징이다.
전자랜드가 랜드500 사업에 주력하는 것은 소비자의 매장 방문 빈도를 높이는 집객 효과를 노리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가전제품의 경우 소모품에 비해 교체 주기가 길다는 점, 온라인을 통한 가격 비교가 용이하다는 점, 소비자 개개인의 경제 상황에 민감한 점 등을 이유로 이전과 같은 단순 판매 방식으로는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자랜드는 기존에 운영 중인 오프라인 매장 중 2개 점포 이상을 연내 랜드500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온라인 최저가’ 콘셉트를 통해 쿠팡 등 이커머스로 유입된 가전 고객들을 매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히며 “시민들이 길을 지나가다가 전자랜드 매장을 만나면, 편하게 들어와서 다양한 가전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랜드500을 개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임 CEO 경영 능력 시험대, 적자 타파할까
업계는 오프라인 매장 활성화를 위해 유료 멤버십을 도입한 전자랜드의 행보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가전제품 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할 때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며 가전제품 교체와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반짝 증가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국내 가전제품 판매액(경상금액)은 2021년 38조2,08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35조8,07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상반기 16조6,752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18조1,890억원)과 비교해 8.3% 줄었다.
특히 오프라인 가전 매장들은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가전 양판점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롯데하이마트와 전자랜드가 일제히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먼저 롯데하이마트는 2021년 3조8,697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지난해 3조3,368억원으로 약 13.8% 줄었다. 또 1,068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은 52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이에 롯데하이마트 경영진은 지난 한 해에만 40개 점포의 문을 닫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전자랜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1년 8,784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액은 7,230억원으로 17.7% 줄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8억원 적자에서 109억원 적자로 악화를 거듭했다. 전자랜드는 사업 축소 대신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단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신입 대표에 선임된 김찬수 전 신규사업 부문장은 불과 7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고, 올해 8월에는 김형영 대표 체제에 돌입했다. 김 대표가 실적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랜드500을 확대 중인 만큼 유료 멤버십 서비스의 도입은 김 대표의 경영 능력 시험대가 된 셈이다.
쿠팡은 A/S 강화, 하이마트는 재구매 유도
이런 가운데 쿠팡은 가전제품 무상 수리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오프라인 가전 양판점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쿠팡은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나지 않은 TV, 노트북, 냉장고, 세탁기 등 약 400개 상품의 무상 A/S(애프터서비스) 및 방문수리 서비스를 선보이며 쿠팡의 ‘로켓설치’ 서비스와의 시너지를 꾀했다. 2019년에 시작된 로켓설치 서비스는 정해진 날짜에 전문 설치기사가 직접 배송하고 사다리차 지원과 폐가전제품 수거 등을 무료로 진행하며 빠른 속도로 소비자를 늘렸고, 이번 무상 수리 서비스에는 중소기업의 제품들도 모두 포함하며 소비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시장 축소와 경쟁사의 급성장 속에서 전자랜드와 롯데하이마트 또한 온라인으로 넘어간 시장 주도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전자랜드가 멤버십 전용 매장을 오픈했다면 롯데하이마트는 일정 수준의 연회비를 지불하면 가입 시 구매한 상품과 유사한 가격대의 새 상품을 반값 수준에 제공하는 ‘가전 교체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2일 해당 서비스를 론칭하며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는 물론 디지털 가전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 등 다양한 고객층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모바일,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 등 4개로 한정된 대상 품목은 향후 생활가전, 대형가전 등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자랜드와 롯데하이마트의 승부수가 시장에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소비시장의 축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데다 재구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가전제품의 특성상 최소 1년 단위로 결제해야 하는 유료 멤버십에 선뜻 지갑을 여는 소비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가전 시장의 부진과 관련해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커머스의 급속한 성장으로 이미 미국 등에서는 특정 분야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 시장이 무너졌고, 우리나라도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이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진단하며 “점점 IT와 물류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여러 소매 사업자가 유료 멤버십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