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급등에 앓아누운 토종 OTT, “넷플릭스發 출연료 경쟁이 주요 원인”
유명 배우 회당 출연료 기본 1억원, 기형적 제작 환경에 적자 폭 늘어 압도적 자금으로 '찍어 누르는' 넷플릭스, 국내 업체는 "따라갈 수밖에" 독자적 생태계 마련 필요하단 목소리 높지만, "경쟁력 저하는 피해 갈 수 없을 듯"
제작비 급등으로 위기에 빠진 토종 OTT 업체들이 주연급 배우 출연료가 과도하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의 경우 회당 출연료가 기본 1억원을 넘긴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기형적 구조가 형성된 원인으로는 글로벌 OTT가 지목됐다. 글로벌 OTT가 압도적인 제작비를 바탕으로 콘텐츠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하면서 국내 제작 환경이 왜곡되기 시작했단 것이다.
“배우 출연료 ‘고공행진’, 적자 폭 감당 힘들어”
19일 업계에 따르면 OTT 내 영화, 드라마 등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최근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 가수 김재중은 한 일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과 일본은 제작비부터 스태프 단가까지 모두 다르다”며 “드라마도, 영화도, 예능도, 광고도 모두 기본 가격이 높은데, 한국이 일본의 9배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유명 배우와 탤런트의 출연료 급등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과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연기자 임금제도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억대급’이었다.
공개된 자료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은 인물은 SBS <법쩐>의 주인공 이선균으로, 그의 회당 출연료는 2억원에 달했다. 총 12부작에 출연했으니 총 24억원을 받은 셈이다. 반면 단역 연기자는 회당 10만원 선의 출연료를 지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SBS의 <천원짜리 변호사> 주연배우 남궁민도 회당 1억6,000만원을 받았지만, 단역은 15만원 선의 출연료를 받았다. 주연과 단역 간의 출연료 격차는 무려 733배였다. MBC <금수저>는 주연이 7,000만원, 단역이 10만원으로 700배의 격차를 보였다. 업계에서 “유명 배우들이 회당 출연료를 5억원 불렀다”, “출연료에 지분을 더해 10억원 정도를 요구했다”, “해외에서 관심받는 젊은 남자 배우는 부르는 대로 출연료가 올라간다” 등 증언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티빙·웨이브 등 국내 OTT 업체의 콘텐츠 제작 원가가 넷플릭스 대비 70배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위원인 성동규 중앙대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 약 2억3,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넷플릭스와 국내 가입자 300만 명(추산)을 가진 웨이브가 50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콘텐츠를 제작한다 가정하면 구독자 1인당 제작비는 각각 217원, 1만6,667원이다. 이는 77배 수준에 달한다. 이에 티빙·웨이브 등 국내 대표 OTT 업체들은 “한 해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수백억원을 투입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며 곡소리를 내고 있다. 제작 편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한탄도 쏟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OTT의 경우 넷플릭스에 비해 훨씬 큰 제작 원가를 떠안고 있어 가입자 증가세에도 적자 폭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OTT업체들이 적자 폭이 너무 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결국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룡 OTT 침투, 국내 생태계는 ‘고사’ 직전
국내 배우들의 출연료가 급등하게 된 건 미디어 환경이 점차 글로벌 OTT 공룡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넷플릭스에 의해 배우들의 몸값이 뛰었단 의미다. 이는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이 글로벌 OTT에 종속된 탓도 크다. 노동렬 성신여대 교수는 논문 ‘드라마 시장의 오징어 게임-글로벌 OTT 생태계로 인한 인센티브 발생 체계의 변화를 중심으로’에서 “방송산업 플레이어들이 상승한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다시 핸디캡 과잉 경쟁을 감수하는 생존 경쟁에 함몰되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OTT가 기존 국내 드라마 제작비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제작비를 지급하고 새로운 시장의 표준을 제시하면서 드라마 제작 경쟁에서 편성 사업자가 탈락하고 <오징어 게임>과 같은 제작 경쟁만 남았단 것이다.
실제 OTT 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사업자들은 국내 사업자 대비 더 높은 규모의 제작비를 쏟아붓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 교수에 따르면 국내 방송사업자들과 국내 OTT들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회당 10억~15억원을 사용할 때 글로벌 OTT 사업자들은 25억원 이상을 쏟아붓는다. 이에 더해 작가료 7억원, 주인공 1인 출연료로 10억원 이상까지도 거뜬히 투자한다. 노 교수는 “드라마 제작비 규모가 내수시장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하고 단일가격구조로 가동되는 요소비용의 상승 폭이 커지면서 드라마 제작 경쟁에서 국내 편성사업자는 탈락했다”며 “일본 한류와 중국 한류가 유지될 때까지만 해도 IP를 확보한 편성사업자가 제작비를 통제하면서 가치평가 게임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글로벌 OTT 한류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같은 스타라 해도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 드라마를 할 때와 OTT 작품을 할 때 출연료가 다른 경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기형적 구조에서 기인한다. 업계에 따르면 올 초 종영한 한 인기 드라마에서 편당 1억원 중반대의 출연료를 받았던 한 남자 배우는 최근 OTT 행이 유력한 작품을 논의하며 3억원의 편당 출연료를 불렀다. 순식간에 몸값이 두 배로 뛴 것이다. 배우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 후속작에 출연하면서 받을 회당 출연료가 10억원에 이를 것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넷플릭스 내에서 한시적으로 출연료가 오른다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한 번 오른 출연료는 다시 떨어지기 힘들다. 지상파 및 케이블 채널의 사정을 모르지 않더라도, 굳이 같은 일을 한다면 값을 더 받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일 터다. 결국 넷플릭스발 출연료 증가가 토종 OTT 및 지상파의 제작 환경을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해외 서비스의 침투에 국내 업계 몸집에 걸맞지 않는 과도한 ‘옷’이 디폴트값으로 설정되면서 시장이 고사하고 있다. 공룡 OTT와 토종 OTT 간의 종속 관계를 끊어내고 독자적인 생태계 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나, 어떤 방향으로든 경쟁력 저하의 늪에선 탈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