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 새 女스타트업 투자 유치 최저치, ‘유리천장’ 갈수록 심화
수십년 전부터 여성 석·박사 비중 과반 넘어, 남성 추월 스타트업 시장에서는 여전히 여성 고학력자 창업 어려워 STEM 분야 전공자 수 적고 커뮤니티·네트워크도 취약
미국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여성의 학력이 남성을 추월했다. 미 교육부 산하 교육통계센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석사학위 취득자 중 여성의 비중은 65%며 박사학위 취득자는 58%로 절반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시장에서 여성 창업자의 석·박사 비율은 남성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북미 지역 테크기업의 여성 창업자 중 석·박사학위 소지자 비중은 36%인 반면 남성은 41%로 집계됐다.
전공·어드바이저·네트워크 등 남녀 간 격차 원인
스타트업 시장에서 창업자의 성별에 따라 나타나는 학력 격차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애초에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의 여성 전공자 수가 적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미 국립과학재단(NS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TEM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여성은 전체 졸업생의 26%로 조사됐다. 둘째, 여성은 STEM 분야에서 소수 집단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박사학위를 가진 우수한 인벤터 어드바이저와 교류할 기회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특허 등록, 실용기술 개발 등의 노하우를 접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셋째, 여성 기업가와 여성 투자자들 간의 네트워크도 활성화돼 있지 않다. 창업을 위해서는 동종 업계의 최신 동향과 정보를 공유하고 때론 현안을 논의하면서 서로를 독려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매우 중요한데, 여성의 경우 이러한 네트워크가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창업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저하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석·박사학위 소지자 중 여성의 수가 과반을 차지함에도 테크기업 창업과 관련한 분야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비중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국립과학재단 산하 국립과학공학통계센터(NCSES)에 따르면 2020년 기준 STEM 분야 박사과정 수료생 중 여성의 비중은 각각 로보틱스 14.6%, 컴퓨터 사이언스 19.5%, 생물물리학 24.6%로 나타났다. 비(非) STEM 분야 중 스타트업 창업과 관련이 있는 경영학 전공에서도 여성의 비중이 크지 않다. 2022년 기준 미국의 상위 56개 MBA 과정 재학생 중 여성의 비중은 41% 수준으로 이들은 MBA 과정에서 제공하는 기업가적 강좌와 동문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타트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여성들이 기술이나 비즈니스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한다고 하더라도 스타트업을 창업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올해 발표된 MIT 슬론경영대학원과 코펜하겐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대학원생들이 재학 중에 특허를 출원하는 등 발명가가 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학생의 경우 우수한 인벤터 어드바이저와 매칭되기 어려운 데다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그들이 개발한 혁신 기술들이 남학생에 비해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VC) ‘피어(Pear)’의 파트너이자 STEM을 전공한 여성 창업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비비안 호(Vivien Ho)는 “멘토 네트워크와 창업자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성은 여성 기업가가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자신감을 갖는 데 있어 주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전공생들은 STEM 분야의 석·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기업가 네트워크와 커뮤니티의 조력 없이는 ‘내가 과연 창업가가 될 수 있을까’라며 무력하게 생각하기 쉽다”며 “하지만 여성 창업자와 투자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나도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투자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 존재
스타트업이 성공적으로 출범하기 위해서는 투자 유치가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창업자들은 자금 조달 초기 단계에 투자자를 방문해 자신의 아이디어와 사업 계획을 설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여성 창업자들은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피치북에 따르면 여성 창업자와의 투자 미팅에서 성차별적인 질문을 하고 이어지고 있으며, 투자자들이 남성 창업자에게는 성장 요인에 대해 질문하는 반면 여성 창업자에게는 리스크 요인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여성 창업자의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회사 경영에 지장이 발생하지는 않는지를 묻는 사례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여성 창업자, 비즈니스 멘토, 투자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투자자 면담에서 발생하는 성별 격차의 원인과 현황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첫째, 실제 여성 창업자는 남성에 비해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문제 제기와 보류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성들은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기본적인 기술이나 경영 지식을 이해하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받았으며 때로는 애초에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고 단정해버리기도 했다. 공동창업의 경우에도 남성 창업자에게만 기술 관련 질문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둘째, 여성은 투자자의 부정적인 지적에도 이를 합리적인 피드백으로 수용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평에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과감한 예측과 가정을 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종종 과장되게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성에 비해 적극적인 경영자의 모습으로 비춰져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셋째, 많은 투자자들이 남성인 탓에 여성 스타트업이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마케팅하는 재화에 대한 친숙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BCG에 따르면 VC 기업의 파트너 중 92%가 남성으로 이들은 미용, 육아 등 여성이 친숙한 분야와 관련해 아이디어의 필요성, 잠재적인 가치를 이해하는 데 제한이 있다.
성별 등 보이는 것만으로 사업 가치 평가해선 안 돼
이같은 투자 유치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여성 스타트업은 남성 창업자만큼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북미지역 여성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금은 14억 달러(약 1조8,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4.8%나 급감하며 최근 5년 새 최저치를 기록했다. 거래 건수도 437건으로 전체 투자의 6.7%에 그쳤다.
이에 반해 여성이 남성과 함께 창업할 경우 투자금이 크게 늘어났다. 여성과 남성이 공동창업한 스타트업의 상반기 투자금은 241억 달러(약 31조원)로 여성 스타트업보다 17배 이상 많았다. 거래 건수도 1,531건으로 여성 스타트업의 4배를 상회했다. 남성 창업자가 혼자 설립한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BCG에 따르면 여성이 홀로 창업하거나 남녀가 공동창업한 스타트업의 평균 투자금은 남성 스타트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라이징 아메리카 펀드(Rising America Funds)의 파트너 로린 펜들턴(Lorine Pendleton)은 “투자자들은 자신과 성별, 전공이 같은 사람들에게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성별 등 보이는 것만으로 사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대한 결함”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다만 최근에는 여성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스타트업의 자금 공백은 개선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펜들턴도 최근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분야에 중점을 둔 VC 125 벤처스(125 Ventures)를 설립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