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시(SLUSH) 2023’ 컨퍼런스, 내년 시장 회복 전망
'지속 가능한 기업 구축' 주제, 단기적인 시각보다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 봐야 2024년 시장 회복 전망, VC들 AI 인프라 구축 스타트업에 관심 예상 다만 오픈AI 같은 사태 예방 위한 기업가 윤리 및 투자자들 주의도 필요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 최대 스타트업 컨퍼런스 ‘슬러시(SLUSH) 2023’ 참가자들은 스타트업이 뉴노멀(New Normal) 생태계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약 13,000명이 참가했으며, 그중 3,000명은 투자자, 5,000명은 스타트업 운영자·창업자들로 파악됐다.
2024년, AI 주도로 시장 반등 전망
올해 주제는 ‘지속 가능한 기업 구축’으로, 스타트업들이 저조한 벤처투자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단기적인 초과 성장보다는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올해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2024년에는 시장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날 JP 모건의 영국 및 아일랜드 혁신 경제 책임자인 로쉬 위자야라트나(Rosh Wijayarathna)는 “최근에 좋은 소식이 더 많이 있었는데, 이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매크로 환경이 더 나아지고 있다. LP(출자자) 들은 더 많은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VC들의 자산 배분 필요성도 더 많아졌다. 후속 투자 유치 시 이전 투자 라운드의 가치보다 낮게 평가받는 다운 라운드가 있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운턴(경기 하락기)에서의 투자가 더 나은 펀드 수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내년 낙관론을 점치는 또 다른 이유다. 제너럴 캐탈리스트(General Catalyst)의 파트너인 줄리엣 배일린(Juliet Bailin)은 새로운 기업 설립의 물결을 예상하면서 “현재의 평가 하락이 인수합병 대상기업 주요 입직원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지급하는 높은 급여 혹은 인센티브 등을 의미하는 일명 ‘황금수갑(특별우대조치)’을 제거할 것”이라며 “이에 감사원들은 직원들이 기업가 정신을 시도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날 또 다른 주요 의제는 AI(인공지능)로, 수십 개의 패널에서 AI가 세상을 어떻게 혁신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뤘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인터컴(Intercom)의 공동 창업자인 데스 트레이너(Des Traynor)는 AI를 “소프트웨어 산업의 대전환”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AI가 2024년에 VC 투자의 최우선 투자 섹터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일각에서는 AI산업에 필요한 필수 기반산업이 더 관심을 받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와 관련해 아펙스 벤처스(Apex Ventures)의 창립 파트너인 안드레아스 리글러(Andreas Riegler)는 “투자자들이 AI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스타트업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VC들이 AI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반 산업을 살펴볼 것으로 생각한다”며 “광산업이 발달한 시기에 곡괭이와 삽을 팔던 사람들이 돈을 벌었듯이 AI산업에서도 최종적으로 돈을 벌게 하는 것은 그러한 산업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AI 하이프 사이클, 창업가 윤리 및 기업 사기 분별 위한 명확한 기준 필요
이번 슬러시 컨퍼런스에서는 오픈AI의 CEO 샘 알트만(Sam Altman)의 갑작스런 해고와 재고용의 진실에 대한 음모론도 난무했다. 대표적인 음모론으로는 챗GPT가 ‘감성’을 갖춰 창조자에 대한 반란을 주도했다거나, 터미네이터가 회사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과거로 여행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음모론은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오픈AI 사건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우려를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컴파스 VC(Kompas VC)의 파트너인 세바스천 펙(Sebastian Peck)은 “AI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며 그것을 어떻게, 누가 제어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며 “오픈AI의 이슈는 기업 거버넌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할 때 투자자와 창업자가 어떤 책임을 지느냐다”라고 지적했다.
컨퍼런스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초기 창업자들을 위한 기업 윤리 교육 및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단체인 ‘Ethics in Entrepreneurship’의 공동 창립자이자 테라노스(Theranos)의 내부고발자였던 에리카 청(Erika Cheung)의 담화였다. 담화 내용은 최근 FTX 소송이 끝난 시점에서 다시 불거진 창업가의 윤리와 스타트업 사기에 관한 것이었다. 청은 “많은 기업 스캔들이 측정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엄청난 압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이지 않은 일정, 침묵의 문화, 신격화된 창업자와 같은 공통된 특성에서 비롯된다”며 “현재 AI를 둘러싼 혼란이 미래에 스캔들을 낳는 데 적절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사람들은 AI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에 흥분해 눈이 멀 수 있다”며 “스타트업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꿈을 판다는 것이고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만, 당신이 구축하는 것은 무엇인지, 누구와 협력하는지, 그리고 당신의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사기의 영역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을 명확하게 그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총 100곳의 스타트업이 참가한 이번 슬러시 피칭(Pitching) 대회의 우승자는 독일 베를린 기반의 페어카도(Faircado)가 선정됐다. 페어카도는 모든 중고 상품을 집계·비교해 시간은 물론 비용 및 이산화탄소를 절약하는 지속 가능한 쇼핑 어시스턴트(Assistant) 서비스를 제공한다. 페어카도는 엑셀(Accel), 제너럴 캐탈리스트, 노스존(Northzone),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Lightspeed Venture Partners) 및 NEA(Nuclear Energy Agency)로부터 각각 백만 유로(약 15억원)의 상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