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예산 삭감에 ‘기업 R&D’도 위축, “연구비 줄이고 인력 채용에도 소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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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투자 지수 97.1, 채용 지수 93.3으로 전년보다 축소
기업들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향후 연구활동에 부정적 영향 미쳐”
정부, 올해 국방기술 R&D 등 관련 지원은 늘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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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주요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와 인력 채용이 전년 대비 모두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기계, 정보통신, 소재, 건설 등 전 산업 분야에서 대내외 경영환경이 이전보다 악화될 것을 우려한 조치다. 최근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기업들의 연구활동 전망에도 악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R&D 비효율 개선을 위해 예산을 삭감한다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500개 기업 R&D 투자 전망 조사 결과 발표

3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가 연구소 보유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2024년도 R&D 투자와 연구인력 채용 지수(RSI·R&D Sentiment Index)’를 조사한 결과, R&D 투자 지수는 97.1, 채용 지수는 93.3으로 나타났다. RSI 지수는 투자 증액 여부와 연구원 채용 의사를 각각 작년 지수 100을 기준으로 비교 조사한 수치로, 100 이상이면 전년보다 증가, 100 미만이면 감소를 뜻한다.

그간 R&D 투자는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으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감소했다가 2022년 반등 이후 지난해 재차 감소세로 돌아섰다. 기업들이 R&D 투자를 줄이는 이유로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56.5%)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자금 확보 어려움, 사업 규모 축소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R&D 투자 증가를 전망한 기업들은 기존 사업 추진 확대(35.8%)와 경영자의 강력한 R&D 투자 의지(33.2%), R&D 자금 확보 기회 확대(11.7%) 등을 핵심 사유로 꼽았다.

연구 인력 채용 전망치의 경우 모든 산업에서 전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기계(93.6), 정보통신(90.9), 소재(90.2) 등 지난해 증가했던 분야에서 축소 전망이 두드러졌으며, 건설(87.0) 분야에서 R&D 투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또한 연구 인력 채용 전망과 관련해선 기업 규모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 대·중견기업은 R&D 투자와 인력 채용 모두 줄일 계획인 반면, 중소기업은 인력 채용은 줄어들지만 R&D 투자는 전년 대비 확대될 전망이라고 답했다.

정부 R&D 예산 삭감이 산업계에 미친 영향

기업들은 최근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해서도 ‘기업 연구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52.2%)이라고 답했다. 기술 발전에 가장 필요한 정부 정책으로 꼽혀 온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확대 등의 지원책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되려 축소했다는 것이다.

기업들과 과학기술계의 아우성은 지난해 8월 정부가 2024년 예산안에서 R&D 총예산안을 전년(31조1,000억원)보다 16.6% 낮춘 25조9,000억원으로 책정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예산 사용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낡은 관행을 걷어내기 위해 R&D 예산을 삭감했다고 밝혔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5년간 R&D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하며 R&D 관리 과정에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경쟁력 없는 사업에 관행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비효율이 존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 삭감이 R&D 비효율 개선에 적절한 방안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R&D 사업 평가에서 우수 평가를 받은 사업 23개 가운데 21개의 예산이 최대 507억원 삭감됐기 때문이다. 평가가 저조한 사업군의 예산만 삭감된 것이 아니기에 예산 편성 기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일괄 삭감이라는 대응이 당초 정부가 밝힌 R&D 예산 계획과는 모순된다는 점도 업계가 반발하는 이유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노조위원장은 “과기부가 당초 마련했던 2024년 국가 R&D 예산안은 약 5% 증액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 직후 불과 두 달 새 R&D 예산의 16.6%가 삭감됐다”며 “예산이 어떻게 깎였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뜬금없이 ‘이권 카르텔’이라는 모호한 말로 정책의 정당성을 부여하니 산업계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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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 연구원에서 열린 대덕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올해 기초연구 예산은 늘어, 모든 분야 예산 줄어든 것은 아니야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따라 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비중은 약 3%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연구를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주요 연구과제를 위한 비용에서 3,000억원의 예산이 삭감될 예정이며, 대학에 지원되는 연구비 역시 대폭 삭감이 예고된 상태다.

다만 과학기술계의 우려처럼 모든 분야에서 예산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과기부는 2일 혁신적 연구 활성화를 위해 올해 기초연구 사업에 2조1,179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전년 대비 687억원 늘어난 규모로, 소규모의 순수 이론 및 개념연구를 지원하는 ‘창의연구 유형’과 특정 해외 기관과 상호 지원을 통해 사전 합의된 분야의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글로벌 매칭형’ 사업을 통해 지원될 예정이다.

또 정부는 올해 국방기술 R&D에 대한 평가체계를 개정하며 관련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됨에 따라 방산기업들이 특정 연구개발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수행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향후 사업참여 제한과 사업비 환수 등 제재 처분을 면할 수 있게 됐다. 개정안은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다음 주 공포하면 3개월 이후 시행될 예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과제 위주로만 연구를 추진하게 했던 기존 결과 중심의 평가체계로 인해 도전적 연구개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면서 “보다 완화된 평가체계가 도입될 경우 국방 R&D 분야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