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프로, 생각보다 잘 팔리네” XR 시장 본격 선점 나선 애플, 삼성·LG도 ‘추격전’
애플 신제품 '비전 프로' 사전 주문량, 3일 만에 16만~18만 대 예상 밖 흥행에 차기작까지 주목, 가격 장벽 낮춘 신제품 나오나 초기 시장 바닥 다지는 애플, 삼성·LG도 본격적으로 '도전장'
애플의 MR(혼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의 사전 판매량이 시장 예상치를 넘어섰다. 애플 전문 분석가 대만의 궈밍치 TF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기준 비전 프로 사전 판매량은 16만~18만 대에 육박한다. 초기 판매 물량이 10만 대 이하일 것이라는 업계 예상치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애플’의 브랜드 저력을 입증한 것이다. 애플을 필두로 XR(확장현실) 기기 초기 시장 형성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업계는 차후 펼쳐질 시장 경쟁 양상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상보다 더 팔렸다, 비전 프로 초기 성적표 ‘양호’
비전 프로는 2014년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애플의 주요 신제품이다. 업계에서는 비전 프로 출시 이전부터 꾸준히 조기 물량 소진 전망이 제기돼 왔다. 비전 프로의 최초 생산 물량이 8만 대 이하로 제한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다. 애플 브랜드 팬층의 수요, 얼리어답터(남들보다 신제품을 빨리 구매해서 사용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테스트 수요 등이 제한된 물량에 몰리며 금세 제품이 동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후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애플의 2024년 비전 프로 판매량이 약 40만 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궈밍치 TF증권 연구원은 비전 프로의 초기 수요가 6만~8만 대에 그칠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은 사전 구매 오픈 3일 만에 궈밍치 연구원의 전망치를 가볍게 뛰어넘은 것은 물론, USB 전망치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을 팔아치웠다. 1년 단위의 전망치를 수일 만에 위협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비전 프로의 예상 밖 흥행 소식이 전해지자 애플의 주가는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22일(현지시간)에는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 자리를 되찾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애플의 주가는 전날 대비 1.22% 오른 193.89달러, 시가총액은 2조9,979억원에 달했다. 반면 1위 자리를 뺏긴 MS의 주가는 전날 대비 0.54%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2조9,470억 달러에 머물렀다.
활주 준비하는 애플, 차세대 비전 프로 청사진은?
예상외의 성적표를 받아 든 애플은 XR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시장조사업체 옴니아는 애플이 2027년 RGB 올레도스(OLEDoS, 작은 화면에 초고해상도를 구현하는 마이크로 디스플레이 기술 중 하나)를 적용한 비전 프로를 출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최근 출시된 비전 프로의 올레도스는 화이트(W)-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컬러 필터(CF)를 적용하는 ‘ WOLED+CF’ 방식을 사용한다. 반면 옴니아가 언급한 RGB 올레도스는 같은 층에 증착한 RGB 서브 픽셀에서 빛과 색을 모두 구현하는 방식이다.
RGB 올레도스는 WOLED+CF 올레도스 대비 휘도(밝기)에서 강점을 보인다. WOLED+CF 방식을 적용한 기기의 경우, WOLED에서 나온 백색광이 RGB 컬러 필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휘도가 저하를 겪게 된다. 반면 RGB 올레도스는 RGB 서브 픽셀이 모든 빛과 색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별도의 컬러 필터가 필요하지 않다. 옴니아는 차후 XR 시장 전반의 수요가 RGB 올레도스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이 차후 가격 장벽을 낮추기 위해 차세대 비전 프로의 ‘보급형’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IT 전문 매체 나인투파이브맥은 “애플이 오는 2025년에 출시할 비전 프로2의 제조 비용(BOM)을 50%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이 비전 프로2 보급형 모델의 가격대를 메타의 VR 기기 ‘메타 퀘스트 프로’와 유사한 수준인 1,000달러(약 128만원)까지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블룸버그통신이 2세대 비전 프로의 가격대가 1,500~2,500달러(약 193만원~322만원) 사이에서 형성될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애플이 가격 인하를 위해 비전 프로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아이사이트'(EyeSight)’를 삭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아이사이트란 비전 프로 사용자에게 타인이 다가오면 기기 밖으로 사용자의 눈을 노출해 주는 기능이다.
“보고만 있을쏘냐” 삼성·LG도 XR 사업 본격화
애플의 비전 프로가 관련 시장 개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가운데, 국내 기업들 역시 XR 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의 대표 경쟁 주자로는 XR 기기 시장 본격 진출을 선언한 LG전자가 꼽힌다. LG전자는 수년 전부터 사업 연구개발(R&D)과 미래 사업의 주요 기술 육성을 맡는 최고전략책임자(CSO) 산하에 XR 조직을 개설, 사업화 논의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 HE(Home Entertainment)사업본부는 최근 XR 디바이스 상품 기획 전문가와 XR 디바이스 사업 개발 및 영업 전문가 채용을 시작했다. LG전자가 XR 관련 인력을 공개 모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차후 LG가 MR 헤드셋 위주에 중점을 둔 애플과는 다른 노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실린다. B2B(기업간거래) 분야에서는 AR(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에, B2C(기업소비자간거래) 분야에서는 게임 위주 기기 출시에 무게를 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2014년 기어VR, 2018년 오디세이 플러스 등 VR 기기를 두 차례 출시했으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로 시장에서 물러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전자가 XR 기기 시장에 불어든 새로운 ‘봄바람’을 틈타 다시 한번 XR 기기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글·퀄컴과의 협업을 무기 삼아 시장에 재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삼성 XR 기기의 구체적인 개발 현황, 출시 계획 등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드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XR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1억 달러에서 2028년 1,115억 달러(약 149조1,312억 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XR 헤드셋 출하량도 2021년 1,100만 대에서 2025년 1억5,000만 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초기 시장 기반을 다지고 나선 가운데, IT 시장 경쟁의 ‘승기’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