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광물 쓰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현대자동차·배터리 3사, 미국에 FEOC 유예 제안
현대차·배터리 업계 "중국 중심 공급망, 당장은 못 바꾼다" IRA 혜택 뺏길 위기, FEOC 규제 완화 요청 담은 의견서 제출 주요국 대비 유달리 높은 핵심 광물 대중 의존도가 '족쇄'
국내 완성차·배터리 기업이 미국 정부에 ‘중국산 광물’ 사용에 대한 일시적인 용인을 요청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관보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미국 정부의 FEOC(해외우려집단) 규정 대상인 중국이 흑연의 100%를 생산하고 합성 흑연 69%를 정제·공급한다”며 미국 정부에 FEOC 유예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만약 미국의 FEOC가 계획대로 실행돼 중국산 광물 사용이 금지될 경우 이들 기업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수혜 대상에서 꼼짝없이 밀려나게 된다.
“FEOC 유예·완화해 달라” 의견서 제출
미국 FEOC 규정안에 따르면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2025년부터 FEOC에서 핵심 광물을 조달할 수 없다. FEOC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정부의 소유·통제·관할에 있거나, 해당 국가의 지시를 받는 기업을 뜻한다. 2025년 이후 미국에서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원재료를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내에서 조달해야 한다. 사실상 모든 중국 기업을 공급망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문제는 중국이 흑연, 니켈, 리튬 등 대다수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의 중심축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국가의 전기차 기업은 중국산 광물을 활발하게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곧 2025년 급작스럽게 FEOC 규정이 시행될 경우 대다수 기업이 보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에 현대차는 의견문을 통해 FEOC 규정에 ‘최소 허용 기준’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전기차 배터리 4대 소재의 핵심 광물인 니켈, 코발트, 흑연과 핵심 광물 총가치의 10% 미만을 차지하는 ‘저가치 소재’를 규정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외로도 의견서에는 △한시적으로 원산지와 무관하게 배터리와 배터리 부품을 제조할 수 있는 명단을 도입하고 △FEOC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배터리 소재 명단을 고지해 달라는 요청 등이 담겼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와 한국배터리산업협회도 FEOC 유예 조치를 제안하고 나섰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의견서에는 △흑연 등 일부 핵심 광물에 대한 FEOC 규정을 2년 유예하거나 △총가치의 10% 미만을 차지하는 저가치 광물을 FEOC 규정에서 제외해 달라는 요청 등이 포함됐다. SK온은 “인조 흑연은 (공급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 이외 흑연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최소 3~4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핵심 광물의 FEOC 규정 적용을 2025년 1월 1일에서 2027년 1월 1일로 2년 유예해줄 것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대중국 의존도 특히 높다
이들 기업이 의견서까지 내며 미국의 ‘중국 견제’를 막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중국산 광물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의 중국산 광물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현대차는 중국 내 5위 리튬 업체인 성신리튬에너지와 올해 1월 1일부터 2027년 12월 31일까지 4년간 수산화리튬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리튬은 전기차용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원료 중 하나로, 가공을 통해 수산화리튬으로 전환한 뒤 배터리 양극재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지난 18일에는 또 다른 중국 리튬 업체 간펑리튬과도 수산화리튬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성신리튬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올해부터 4년간이다. 간펑리튬 측은 “본 계약은 현대차와 서로 윈-윈하는 입장에서 체결됐으며, 현재 리튬 시장 상황이 충분히 고려된 계약”이라며 “이번 계약 체결로 간펑리튬의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배터리 핵심 광물 대중 의존도는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도 특히 높은 편이다. 2022년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이차전지 핵심 광물 8대 품목의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차전지 8대 핵심 광물 수입액 중 대중 수입 비중은 2010년 35.6%에서 2020년 58.7%로 10년 사이 23%p나 급증했다. 이는 일본 41%, 독일 14.6%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중국의 영향력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현재, 미국의 요구에 맞춰 당장 공급망을 손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