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었는데 쓸모가 없다? 혁신 난관 부딪힌 애플 ‘비전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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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초기 수요에 기대 샀던 비전 프로, 실제 사용해 보니 '애매'
콘텐츠 부족으로 실제 활용도 낮아, '공간 컴퓨팅' 매력 어필 실패
스마트폰도 출시 초기에는 외면받았다? 애플 차후 행보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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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애플

애플이 2014년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신제품 MR(혼합현실)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가 시장의 혹평에 휩싸였다. 출시 직후 시장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초기 생태계 형성 및 콘텐츠 확보에 차질을 빚으며 이렇다 할 ‘매력’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애플이 비전 프로의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을 통한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차후 비전 프로가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생태계 형성’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콘텐츠 부족 어쩌나, ‘알맹이’ 없는 비전 프로

IT 업계 초유의 관심사였던 ‘비전 프로’의 베일이 벗겨진 이후, 시장 곳곳에서는 생생한 ‘사용 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상도와 편의성에 대한 호평도 일부 제기됐으나, 대부분의 후기에서는 1세대 기기 특유의 투박함에 대한 ‘실망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특히 무게·발열·배터리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 불편함을 겪었다는 후기가 많았다. 선으로 연결된 외부 배터리 팩의 지속 시간, 무게 등이 사용자 경험을 해친다는 평가다.

비전 프로의 ‘활용도 부족’ 역시 중요한 문제로 거론됐다. 당초 애플이 비전OS(visionOS)에 100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앱)을 탑재할 것이라 공언한 것과 달리, 실제 제공되는 앱은 600개에 그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비전 프로가 아직 3,500달러(약 460만원)를 기꺼이 지불할 만큼 ‘유용한’ 기기는 아니라는 혹평을 내놓고 있다. 비전 프로를 통해 컴퓨팅 디바이스의 혁신을 견인하겠다는 애플의 야심 찬 계획에 막대한 제동이 걸린 셈이다.

차후 추가적인 콘텐츠 확보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유튜브(구글) 측은 비전 프로 전용 앱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글로벌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 등도 비전 프로용 앱을 따로 제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상태다. 빅테크 경쟁사인 애플의 ‘자체 생태계’ 확장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비전 프로의 콘텐츠 경험을 강조하던 애플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악재다.

IT 업계 미래 먹거리 ‘공간 컴퓨팅’

하지만 비전 프로의 미래 전망이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통해 제시한 ‘공간 컴퓨팅’ 개념이 IT 업계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공간 컴퓨팅을 ‘디지털 콘텐츠를 물리적 공간과 매끄럽게 혼합하는 기술’로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기술인 셈이다. 현실 세계에 3차원 디지털 콘텐츠를 겹쳐 보이게 하는 AR(증강현실)·MR 기술, 현실 속의 특정 공간이나 사물을 가상 공간에 본떠 구현하는 디지털트윈(Digital Twin) 기술 등이 공간 컴퓨팅의 범주에 포함된다.

차후 공간 컴퓨팅은 현실의 ‘일상’과 밀접한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비전 프로 사용자는 핵심 기능 AirPlay2(에어플레이2)의 가상 디스플레이 기능을 활용, 어디서든 가상의 Mac(맥) 디스플레이를 띄우고 비전OS 앱을 사용할 수 있다. 맥으로 작업을 하는 동시에 사진, 메모, 파일 등 비전OS 앱을 별도의 화면으로 이용하며 업무 효율을 제고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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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애플

애플이 비전 프로의 ‘주 무기’로 내세운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역시 공간 컴퓨팅이 활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공간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모니터·스크린의 ‘사각형’ 경계를 벗어나 보다 생생하고 실감 나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신들은 공간 오디오 기술, 화면 해상도 등 비전 프로의 콘텐츠 시청 경험에 대한 극찬을 쏟아내고 있다. 아직 탑재 콘텐츠와 활용도는 부족하지만, 콘텐츠 감상의 기반이 되는 애플의 기술력 자체는 괄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비전 프로, 스마트폰처럼 ‘시장 혁신’ 부를까

문제는 공간 컴퓨팅 보편화의 장벽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비전 프로가 본격적인 시장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간 컴퓨팅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매력적인 자체 생태계를 조성, 기술적 혁신을 넘어 사용자의 ‘경험’ 역시 혁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애플은 이 같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추가 콘텐츠·앱을 마련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아직 뚜렷한 ‘빛’을 보지는 못한 상태다.

비전 프로가 시장에서 좀처럼 맥을 추지 못하자, 일부 전문가들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의 상황을 연상하고 있다. 현시점 스마트폰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기지만, 출시 당시까지만 해도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오늘날의 앱스토어(앱 장터)와 같은 자체 인프라가 부족했고, 사용자 역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 시장의 빈약한 생태계가 근본적인 ‘성장 장벽’으로 작용한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차 ‘스마트폰만을 위한’ 각종 인프라가 갖춰졌고, 이용자 수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누구나 당연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낯설기만 했던 첨단 기기가 세계인의 일상을 바꾼 대표적인 전례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비전 프로가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본다. 그 무엇도 준비되지 않은 ‘무’의 시장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