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품 넘어 국내 식음료 브랜드까지? 알리익스프레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삼킬까
"이젠 생수까지 판다" 알리익스프레스에 국내 생수 '빅3' 입점 점차 국내 영향력 키워가는 알리익스프레스, 투자 확대에도 박차 알리익스프레스 '폭풍' 휩쓸 토종 이커머스, 새로운 경쟁 시작된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는 국내 브랜드 전문관 ‘K-베뉴(K-Venue)’를 론칭, 국산 브랜드의 인기 상품을 대거 확보·판매하며 덩치를 불려가고 있다. 단순히 ‘직구’ 수요를 흡수하는 것을 넘어 본격적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침투, 기존 이커머스 사업자들과의 경쟁에 박차를 가하는 양상이다.
알리익스프레스, 국내 생수 ‘빅3’ 안았다
현재 알리익스프레스는 K-베뉴 입점 업체의 판매 수수료를 일시적으로 면제해주고 있다. 부담 없이 판매 채널을 확장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미끼’를 내걸고, 입점 업체를 확보하며 국내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LG생활건강 △애경 △깨끗한나라 △유한킴벌리 등 다수의 국내 브랜드가 이미 K-베뉴 내에서 상품을 판매 중이다. 이달 들어서는 △롯데칠성음료 △제주삼다수 △백산수 등 국내 인기 생수 브랜드가 줄줄이 K-베뉴에 입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롯데칠성음료는 K-베뉴에서 △칠성사이다 제로 △생수 아이시스 △펩시콜라 등 자사 음료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제주삼다수의 소매 판권을 보유 중인 광동제약 역시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내에 공식몰을 론칭했다. 알리익스프레스가 단순 직구 플랫폼을 넘어 국내 식음료 브랜드의 정식 판매 채널로 떠오른 것이다. 단 농심 백산수(생수)의 경우, 농심 본사의 직영몰이 아닌 농심의 공식 대리점 업체가 입점했다.
시장은 생수 시장 내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한 소위 ‘빅3’ 브랜드의 입점 릴레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제주삼다수의 2020년 기준 생수 시장 점유율은 자그마치 40.6%에 달한다. 롯데칠성음료 아이시스의 점유율은 13.8%, 농심 백산수의 점유율은 8.6% 수준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고 있는 생수 브랜드들과의 협력을 통해 약점이었던 식음료 부문 경쟁력을 보강할 수 있게 됐다.
알리익스프레스 구매액·이용자 ‘폭증’
한편 알리익스프레스는 초저가 상품과 무료배송을 무기로 국내 시장 내 점유율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해외 직구 금액은 6조7,567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6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 중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을 통한 중국발 직구액은 3조2,873억원으로 전년 대비 121.2% 폭증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온라인 쇼핑 수요가 저렴한 알리익스프레스 상품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용자 수 역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는 2023년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가장 많이 늘어난 쇼핑 앱 2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1월 227만 명에 그쳤던 알리익스프레스 이용자 수는 12월 496만 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1위를 차지한 앱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함께 한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테무’였다. 반면 같은 기간 △쿠팡(2,759만 명→2,728만 명), 11번가(862만 명→744만 명), 티몬(357만 명 → 321만 명) 등 주요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의 MAU는 오히려 감소 추이를 보였다.
한편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시장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품 우려 해소, 배송 기간 단축 등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서비스 고도화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 2022년 11월 한국 전용 고객센터를 마련해 최대 2주에 달하던 배송 기간을 3∼5일까지 단축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 시장 내 마케팅·물류 분야에 1,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이 같은 대규모 투자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올해 내로 한국 물류 센터를 확보, 토종 이커머스 기업과 유사한 ‘주문 즉시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알리익스프레스가 부른 시장 지각변동
알리익스프레스의 고속 성장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의 최대 강점인 ‘공산품’ 시장을 중심으로 판도 변화가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패션·의류 분야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국내 온라인 패션몰에서 접할 수 있는 중국산 ‘보세 의류’ 상품을 반값 이하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복잡한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중국에서 직접 상품을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저렴한 의류를 구매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한국 소비자의 패션 상품 수요를 확인한 알리익스프레스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패션 전문 카테고리인 ‘A.패션관’을 론칭하고, 각종 할인 이벤트가 진행된 지난해 가을·겨울에 의류 상품을 약 50만 개까지 늘리며 고객 수요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산 의류를 저렴하게 사입해 마진을 붙여 판매하던 국내 패션 오픈마켓 셀러들이 순식간에 입지를 잃게 된 셈이다. 이는 비단 패션 분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공산품 오픈마켓 전반이 기존의 수익 구조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온라인 쇼핑 시장의 근본적인 구조 자체가 변화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쿠팡을 중심으로 한 이커머스 업계 역시 본격적인 위기를 맞이했다. 국내 기업의 역량으로는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효율적인 제조 인프라, 자본력을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가 국내 브랜드를 끌어들이며 ‘식음료’ 분야의 한계를 넘어설 경우, 대다수 이커머스 플랫폼은 경쟁력을 잃고 휘청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토종 기업들의 전쟁터였던 이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경쟁의 ‘폭풍’이 불어닥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