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부진에 덩달아 추락한 VC, 책임론 물결에 업계는 울상? “정부 자금줄 축소가 핵심 문제”
찬바람 부는 벤처투자업계, AC 부진도 가시화 자금줄 대폭 줄인 정부, AC 모태펀드 출자도 '없는 셈' 부담 가중에 VC 전환까지, AC 제자리 찾으려면
벤처투자 혹한기가 장기화하면서 자금줄이 막힌 벤처투자업계에 찬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벤처캐피탈(VC)과 액셀러레이터(AC)들이 펀드 결성 단계에서부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VC와 AC 사이 ‘이중고’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올 상반기 투자시장도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확실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하락세 걷는 벤처시장, “AC 부진 영향 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벤처투자 시장은 유동성 확대 등 영향으로 이례적인 호조를 보이던 2021년과 2022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세를 걷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지난해 3분기 국내 벤처투자 및 펀드결성 동향을 보면, 당시 벤처펀드 누적 결성액은 8조4,482억원(약 63억 달러)이었다. 2022년 같은 기간 누적 결성액이 12조7,236억원(약 96억 달러)이었음을 고려하면 4조원 이상 줄어든 셈이다. 누적 투자액 역시 동기간을 기준으로 25%가량 감소했다.
전망도 어둡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스타트업 투자 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스타트업 총투자 건수는 96건으로 2022년 같은 달보다 15건 줄었다. 총투자액 또한 2,949억원(약 2억 달러)으로 1,7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업계에선 AC의 부진이 VC 타격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국내 AC는 한창 VC 호재가 이어지던 지난 2020년에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바 있다. 중기부에 따르면 2020년 당시 투자 실적이 전혀 없는 AC는 110여 개사에 달한다. 현행법상 AC는 등록 후 3년 내 초기창업기업에 투자할 의무가 있음에도 ‘유령 AC’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AC “벤처펀드 조성 어려워, 정부 지원 미흡”
반면 AC 업계에선 국내 시장 환경상 벤처펀드 조성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당초 그간 AC가 전용 출자와 일반 출자를 통해 조성한 펀드의 규모는 2020년 1,290억원, 2021년 1,697억원, 2022년 2,039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자금 지원을 대폭 줄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모태펀드 1, 2차 정시 출자에선 AC가 결성한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 배정이 일절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100억원, 2022년 214억원(수시 출자 포함)가량이 출자된 데 반해, 지난해부턴 모태펀드의 절대 규모가 감소하면서 AC에 대한 별도 출자도 자연스레 편성되지 않은 것이다. 자금이 줄어드니 벤처펀드 조성 및 스타트업 육성·보육 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기 힘들어졌다는 게 업계 측의 주장이다.
AC에 대한 지원 시스템도 미흡하다. 이에 한 AC 업계 관계자는 “AC의 중요성에 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은 줄기만 한다”며 “VC를 지원하면서도 AC에 대한 지원을 백안시하는 제살 깎아먹기식의 기울어진 지원 방책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AC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점차 줄어드는 모양새다. 2022년도와 2023년도 유형별 AC 현황을 보면 AC 수 자체는 2022년도 대비 2023년에 46개사나 증가했지만, 막상 정부 지원을 받는 팁스(TIPS) 운영사는 49개사에서 43개사로 줄었다. 업계가 12% 성장하는 동안 정부 지원은 12% 줄어든 셈이다. 상술한 모태펀드 출자 자금 감소도 이와 맥이 비슷하다.
AC 업계 고통 가중, 일부는 VC 전환 도모하기도
지원 감소가 이어지다 보니 업계의 고통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특히 중소형 AC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투자 혹한기로 민간의 출자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데다 금융기관의 소규모 벤처펀드 수탁 거부도 여전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악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모태펀드 출자까지 감소하면 펀드 결성이 어려워지고 AC 생태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성과만으로 비교해선 VC들에 비해 AC의 경쟁력이 높지 않을 수 있다”며 “그러나 투자 혹한기에도 창업 열기가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창업 생태계의 초기 스타트업 보육·육성 관련 투자 재원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부담을 이기지 못한 AC들은 점차 VC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VC를 겸영하는 AC의 투자 의무 비율이 40%에서 20%로 낮아진 김에 재빨리 넘어가겠단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AC로 활동하던 소풍벤처스는 지난 2월 이미 VC 신규 등록을 마쳤다. 앞서선 퓨처플레이가 AC 최초로 VC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이후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자회사 에트리홀딩스도 VC 등록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AC 본연의 역할이 위축될 우려가 커졌지만, AC 입장에서도 당장 살길을 뚫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업계에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AC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