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글로벌 빅테크의 놀이터? 유해정보 안 잡는 해외 사업자와 ‘규제 역차별’에 울상 짓는 국내 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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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유해정보 시정 요구에도, 해외 사업자는 '나몰라라'
기준 차이 극복하려면 전문인력 필요하지만, 정작 예산은 삭감 수순
역차별에 플랫폼법까지? 울분 터뜨리는 국내 사업자들, "규제 천국 어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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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사이 ‘규제 역차별’에 대한 울분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불법 유해정보를 사실상 방치하는 해외 사업자에 의해 국내 사업자의 시장 장악력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해외 사업자 플랫폼엔 가짜뉴스, 음란물 등이 만연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국제법과 국내법 사이 간극이 있는 데다 해외 사업자가 자율규제기구에 가입하지 않고 있어 자율시정 권고 수준의 대책 외엔 방법이 없단 것이다. 그러나 만발하는 규제 아래 국내 사업자의 고통이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규제 방식을 재고할 필요는 있단 목소리가 높다.

유해정보 관리 격차 심화, “국내-해외 차이 극심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작년 8개월간 불법 유해정보라 판단하고 시정을 요구한 건수가 X(옛 트위터)에 1만292건, 구글에 6,814건, 네이버에 120건, 카카오에 7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플랫폼과 해외 플랫폼 사이의 불법 유해정보 스케일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자율규제기구 참여 여부와 관련이 깊다. 국내 사업자들의 경우 자율규제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을 통해 신고뿐 아니라 자체적인 필터링을 강화해 시정조치 건수를 크게 줄인 반면, 서버와 본사를 해외에 둔 구글, 메타 같은 해외 거대플랫폼업체들은 이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 특히 구글은 지난 2018년 국정감사 당시 가입을 검토하겠다 밝혔음에도 여전히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해외 SNS 사업자의 자체 시정 조치를 유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상 해외 사업자가 행동을 취해줄 때까지 목 빼놓고 기다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단 의미다. 실제 정부의 대책도 해외 플랫폼 사업자가 알아서 자정 활동을 하라는 권고가 전부다. 매년 방심위 차원에서 자율규제 기조를 바탕으로 불법 유해정보 유통 방지를 위한 국제 공조를 시행하고 있긴 하나 이마저도 미봉책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자율규제 기조가 밑바탕인 만큼 자율규제를 요청한들 해외 사업자가 시행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당장 2020년에도 방심위가 구글·페이스북·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 등 5대 해외사업자에 불법·유해정보 8,288건의 자율규제를 요청했음에도 삭제·차단하지 않은 불법 정보가 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역차별 볼멘소리↑, 정부는 “방법이 없다”

이 같은 구멍으로 인해 해외 플랫폼만 시장 영향력을 크게 늘려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놀이터가 된 셈이다. 불법 유해정보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녔다. 유튜브만 살펴봐도 정적인 뉴스기사 등 콘텐츠보단 사건사고 관련 뉴스, 범죄자 신상 공개 채널, 나아가 가짜뉴스, 음란물 등을 유포하는 채널에 조회수가 쏠리는 경향이 짙다. 불법 유해정보를 철저히 차단하는 국내 사업자보다 이를 암암리에 묵인하는 듯한 뉘앙스를 내뿜는 해외 사업자가 시장 장악에 유리함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 규제가 오히려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암초’로 작용하고 있단 볼멘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거듭 쏟아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가 해외 사업자를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없는 건 국제법과 국내법의 유해정보 기준 자체가 다른 탓이 크다. 지난 2020년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콘텐츠의 유해성 기준을 놓고 유튜브와 방심위가 갈등을 빚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방심위는 5.18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접속 차단을 요청했으나, 유튜브는 정보에 대한 유해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접속 차단 조치가 이뤄진 건 국제협력단이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유튜버에 대한 대법원 유죄 판결문이 나오고 난 이후다. 도박과 포르노에 대한 시정 요청도 한계가 있었다. 명백하게 불법적인 데 대해선 국가 차원에서 시정을 요청하면 되지만, 한국에서 민원이 제기되는 콘텐츠가 해당 국가에 불법이 아닐 경우엔 조치가 사실상 어렵다. 포르노그래피가 산업화된 국가들과 국내의 성범죄물 기준이 다른 점도 발목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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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성 기준 차이 극복 필수지만, “여력 안 돼”

결국 콘텐츠 유해성 기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전문 인력 충원이 필수적인 상황이지만, 막상 방심위는 여력이 채 되지 않는단 입장이다. 실제 방심위의 불법 음란물·성매매 정보 규제 관련 예산 및 인력은 오히려 축소되는 추세다. 관련 예산은 2019년 10억4,706만원에서 지난해 8억7,996만원으로 약 16%가 삭감됐고, 방심위에서 관련 분야의 모니터링 및 시정 조치를 진행하는 8개 부서 내 직원은 2019년 100명에서 2021년부터 72명으로 축소돼 쭉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법을 표준 기준으로 삼자니 이 또한 문제가 적지 않다. 강력한 규제 아래 통제 상태에 놓여 있던 불법 유해정보가 한순간 풀림으로써 사회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해외 사업자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플랫폼법’ 제정을 타진하는 모양새다. 사전에 소수의 핵심 플랫폼 사업자를 ‘시장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지정하고 플랫폼 시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위반행위를 금지하겠단 취지지만, 국내 기업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해외 사업자에 전혀 손을 대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안이 시행되면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만 강화되는 사태가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디지털경제연합은 “법안을 제정하더라도 해외 플랫폼은 지금처럼 그물망을 자유자재로 빠져나갈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 이런 사전 규제는 국내 사업자에 사약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잖아도 ‘규제 천국’이라 불리는 한국에 규제만 더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단 힐난도 쏟아진다. 사회의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의 입장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부 또한 거듭된 규제의 초점이 온전히 ‘자국민 보호’에 맞춰져 있는지, 때로 규제가 ‘기업 흔들기’의 명분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