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에어비앤비? 해외 사업자 제재 나선 공정위, ‘역차별’ 해소·온플법 재가동 노리나
에어비앤비에 과태료 50만원, 해외 사업자에 힘 못 쓰던 공정위의 '변화' 국내 역차별 논란에 동력 잃었던 온플법, 공정위가 다시 포석 까나 시장선 여전히 '우려 목소리', "강력 제재 걸 만한 역량부터 키워야"
연락처 등을 기재하지 않고 영업한 호스트(집을 빌려주는 사람)를 사실상 방치한 에어비앤비아일랜드(이하 에어비앤비)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게 됐다. 플랫폼에 직접적인 소비자 보호책임을 묻지 않는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과태료 50만원 선에 그치긴 했으나, 시장에선 공정위가 그간 소극적이던 해외 사업자 제재를 본격화하기 전 신호탄을 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공정위 해외 사업자 ‘에어비앤비’에 제재 가했다
11일 공정위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을 어긴 에어비앤비에 향후 행위 금지명령 및 이행 명령,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에어비앤비는 게스트(숙박 희망자)와 호스트 간 서비스 거래를 중개하는 글로벌 숙박 공유 플랫폼 사업자로 현재 게스트가 호스트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사업자번호 등 신원 정보를 알기 위해선 호스트의 사업자 등록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에어비앤비 측이 호스트가 개인 계정과 사업자 계정 중 임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이다. 결국 수백 건의 후기가 있거나 호텔 상품을 판매하는 등 사업자임이 비교적 명백한 호스트라도 개인 계정으로 가입했다면 소비자가 사업자 정보를 알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사업자 계정으로 등록한 호스트의 신원 정보 등록을 자율에 맡긴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화번호를 따로 기재하지 않고 영업해도 에어비앤비가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에어비앤비는 사업자 등록증을 받는 등 호스트 신원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에어비앤비는 호스트가 어떤 신원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가이드를 주지 않았다”며 “사업자 계정 등록과 관련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고지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에어비앤비 등 통신판매 중개업자는 판매자(이 경우 호스트)의 신원 정보를 확인해 소비자에게 반드시 알릴 의무가 있다.
다만 공정위가 에어비앤비에 가한 제재가 철퇴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과태료 50만원 정도는 에어비앤비의 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현행 전자상거래법이 거래 중개자인 플랫폼에는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 직접적인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가 다소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약한 수위에도 시장은 “웬일”, 공정위가 달라졌다?
그러나 약한 수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공정위의 에어비앤비 제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간 해외 사업자에 ‘쥐약’ 수준의 약한 모습을 보여 온 공정위가 해외 플랫폼에 목소리를 높인 건 상당한 진전이라는 시선이다. 실제 공정위는 국내 사업자에 대해선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도 해외 사업자는 사실상 방목하는 식의 운영을 이어와 역차별 논란의 중심이 돼 왔다. 지난해 말께 급격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남용행위 방지를 위한 법률안’, 통칭 온플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온플법은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본떠 만든 정책이지만 규제 수위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DMA는 글로벌 플랫폼기업을 ‘게이트키퍼’로 규정하고 이들의 핵심 서비스를 사전적으로 강력히 규제하는 방식을 골자로 하는데, 이를 두고 국내 시장에서 “해외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 모두를 게이트키퍼로 규정해도 실질적으론 국내 기업만 규제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쏟아진 것이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도 ‘연차보고서’에서 “플랫폼 규제가 강화하면 구글·애플·아마존 등 글로벌 초거대 플랫폼기업은 실질적으로 규율이 적용되지 않고 국내 토종 플랫폼에만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며 “법령상 해외기업에 같은 규율을 적용해도 국내 사무소가 없는 경우 현실적으로 조사나 처분이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은 법적으로 명확한 사항만 최소한으로 소극적으로 준수하는 반해 국내기업들은 여론이나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여전한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이처럼 공정위의 해외 사업자 제재에 대한 신뢰가 확연히 떨어진 건 제도적 한계와 현실적 한계가 겹친 영향이다. 우선 제도적으로 해외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의 영향권 자체가 다르기에 국내법을 무작정 들이밀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공정위가 범국가적 조직으로 뛰어오르거나 국제법을 기본 골자로 가져오지 않는 이상 해결이 요원한 문제다. 제재 압박에 해외 국가와의 마찰 우려가 커질 수 있단 점은 현실적 한계다. 실제 온플법만 해도 구글·메타 등이 법의 영향권에 들어오자 미국 차원의 우려 목소리가 수차례 전달된 바 있다. 공정위가 해외 사업자 제재를 타진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깨 펴기 시작한 공정위, 온플법 시동 거나
다만 최근 들어선 공정위도 조금씩 해외 사업자 제재에 어깨를 펴는 모양새다. 실제 공정위는 이번 에어비앤비 제재 이외에도 미국·중국 등 다수의 다국적 플랫폼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이다. 공정위는 최근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자사의 시장지배력을 남용,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구글은 광고주와 게시자를 연계하는 광고 거래소인 ‘애드 익스체인지(AdX)’와 광고 구매 도구인 ‘구글 애즈’를 통해 광고 판매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여기서 구글은 신규 경쟁자의 진입을 막거나 자사 플랫폼 이용을 강제하는 등 행위를 벌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국민 일상생활에 깊게 침투한 음원 스트리밍 및 동영상 광고 분야를 눈여겨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엔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의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심사 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보내기도 했다. 플랫폼상에서 판매되고 있는 의류 등이 배송되지 않는 이른바 ‘먹튀’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또 최근엔 중국의 대표적 이커머스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해당 플랫폼 이용자들로부터 짝퉁 피해 민원이 속출한 까닭이다. 나아가 중국 플랫폼인 테무 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테무의 경우 국내에 법인을 두지 않은 만큼 서면조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그간 통상 마찰 등 문제로 동력을 잃었던 공정위가 재차 날개를 펴자, 국적 불문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이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장의 분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이 특별강연에서 “플랫폼의 독점화 피해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관련 규제 입법을 통해 엄중하게 제재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와 관련이 깊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온플법 도입을 위한 명분 쌓기 겸 해외 플랫폼 때리기에 나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역차별 우려를 해소함으로써 온플법 추진의 포석을 깔겠단 의도일 수 있단 주장이다.
다만 공정위의 해외 사업자 제재가 역차별 우려를 완전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현행법상 해외 사업자를 강력히 규제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딴죽걸기 식 제재만 이어가며 ‘살살 때리기’를 감행하는 공정위의 모습은 오히려 국내 사업자의 반발심만 불러올 수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해외 사업자 제재를 구체화할 심산이라면 이를 위한 사전 역량 강화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