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조원 펀드 조성해 콘텐츠 집중 투자’ 청사진, 시기도 방법도 아쉽단 반응

160X600_GIAI_AIDSNote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전체회의
“세제 확대 등으로 국내 제작사 경쟁력 강화”
정책 일관성 부재, 업계 현실 미반영엔 비판도
minister_opm_20240314
한덕수 국무총리(왼쪽에서 세 번째)가 3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위원회 전체외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국무총리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국내 시장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제작비 세액 공제 혜택을 확대하고, 1조원(약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OTT 사업자를 지원하는 등 국내 콘텐츠의 지식재산권(IP)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존 방송사업자에게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하는 등 종합 대책을 추진한다.

정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그간 정부의 미디어 활성화 방안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점과 함께 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나의 장르 된 K-콘텐츠, 세계 경쟁력 강화 시급”

이번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제작사 규모별로 3~10% 차등 적용하는 영상 콘텐츠 제작비에 대한 세액 공제를 최대 15%로 확대한다. 또 제작비의 국내 지출 비율이 80%를 넘을 때는 최대 15%를 추가하는 추가 공제를 신설한다. 이에 따라 영상 콘텐츠 제작비에 따른 세액 공제는 최대 30%까지 확대된다. 정부는 전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인기작의 IP가 해외 OTT에 귀속돼 우리 시장이 잠식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 이번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8년까지 총 1조원대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집중 투자를 위한 움직임에도 나선다. 우수한 콘텐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해당 콘텐츠의 핵심 IP를 우리 기업이 보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설명이다. 그간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글로벌 OTT에 IP를 넘기고, 제작만 도맡아 하는 경우가 주를 이뤘다. 작품 제작에 수반되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OTT의 재정 지원이 필수로 여겨졌고, 이를 위해서는 IP에 대한 권한을 주장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공개돼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플랫폼에 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이익을 안겼지만, 이를 제작한 ㈜싸이런픽처스가 보장받은 수익은 제작비 253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오징어 게임>의 사례는 이후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양질의 IP 확보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내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LG 등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스마트TV에 국내 OTT 콘텐츠를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 광고 시청 후 무료 콘텐츠 시청) 형태로 제공한다. K-미디어 콘텐츠 전용 채널을 구축해 글로벌 시청자와의 접점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성장 한계에 직면한 기존 유료 방송인 IPTV와 케이블 방송에 대한 규제도 완화한다. 먼저 유료 방송 사업자가 7년마다 주기적으로 받아야 했던 재허가 및 재승인제를 폐지한다. 기업의 관련 업무 부담을 줄이고, 사업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다. 현행 최대 5년인 지상파와 종편, 보도채널의 승인 유효기간은 7년으로 확대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기업이 중장기적 전략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 총리는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한류의 원천이자, 국민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치는 산업”이라고 강조하며 “글로벌 초경쟁 시대 대한민국 재도약을 위한 핵심 산업으로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K-콘텐츠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이제 전 세계에서 환영받는 하나의 장르가 된 만큼 우리 미디어 산업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의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 OTT 옥죄기-낮은 지원금에 적자 탈피 ‘먼 길’

이에 업계에서는 미디어 시장 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산업 기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대부분 정책이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광고 기반 구독 모델의 연이은 출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상황이 돼서야 지원책을 내놓는 것은 너무 늦은 조치인 데다가, 최근 정부의 규제가 국내 미디어 기업들을 옥죄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의 일관성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내 미디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압박으로는 지난달 중순 발표된 ‘디지털 바우처’ 사업 추진을 꼽을 수 있다. 해당 사업은 5,000여 명의 전국 기초생활수급자에게 통신 요금 납부와 OTT 구독료 같은 디지털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디지털 비용을 경감시켜 가계 부담을 낮추려는 뜻에서 이같은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부가 디지털 바우처 사업을 위해 국내 OTT 업체들에만 참여를 요청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OTT 업체 관계자는 “넷플릭스나 디즈니+같은 글로벌 공룡들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은커녕 부담만 키우는 꼴”이라고 정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실제로 현재 국내 OTT들은 깊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티빙의 2022년 기준 영업손실은 1,192억원에 달하며, 같은 기간 웨이브 또한 1,21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ott_mcst_202403014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에서 네 번째)이 2월 2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국내 주요 OTT 5개 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 촬영에 응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의 정부 지원금도 비판의 대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월 28일 티빙과 웨이브, 쿠팡플레이, 왓챠, LGU+ 모바일TV 등 국내 5개 OTT 사업자와 ‘콘텐츠 산업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제작사와 플랫폼이 IP를 공동 보유하는 콘텐츠에 대해 작품당 최대 30억원의 제작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최대 화제작으로 꼽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의 제작비가 회당 34억원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지원이 업계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힘을 얻는다.

한국 제작사 등에 업고 제2 전성기 노리는 넷플릭스

이런 시장 악화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나섰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백악관 블레어하우스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향후 4년간 한국에 25억 달러(약 3조3,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 할리우드를 비롯한 주요 콘텐츠 생산 기지와 비교해 저렴한 제작비는 물론 우수한 창작자와 제작자가 포진해 있어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장 한계에 직면한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경쟁력 강화 카드로 꺼내든 셈이다. 이는 국내 미디어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이나 생존에 먹구름이 짙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제작사와 OTT 등 플랫폼의 역할을 재설정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국내 콘텐츠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시장 입성에 도전하는 케이엔터홀딩스가 대표적 사례다. 7개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가 모여 설립한 케이엔터홀딩스는 나스닥 입성을 통해 자금력을 키우고, 현재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한 국내 제작사의 투자 비율을 확대해 글로벌 OTT와의 협업에서 협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콘텐츠당 제작비가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만큼 시장 확대를 위한 해외 OTT와의 동행은 필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제작사도 해외 OTT와의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케이엔터홀딩스의 주장이다. 이영재 케이엔터홀딩스 대표는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제작사들은 글로벌 OTT와 투자 계약에서 소극적인 게 사실”이라고 짚으며 “제작비의 30~40%를 대고 원천 IP를 공동 보유하는 방식의 계약으로 국내 제작사의 주도권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