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팹리스도 ‘HBM’ 장착, AI반도체로 엔비디아 뒤쫓는다? “판매망 격차 한계 여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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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노리는 국내 팹리스들, HBM 장착한 AI반도체 속속 출시
글로벌 시장 성과 기대감에도, 일각선 "결국 성과 못 내지 않았나"
"판매망 등 한계 명확, 정부 지원보다 업계 차원 노력 선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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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탑재한 하이엔드급 AI반도체를 잇따라 선보인다. 엔비디아의 AI반도체와 견줄 수 있는 하이엔드급 제품을 통해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에 진입하겠단 목표다. 다만 이에 대해선 회의적 의견도 적지 않다. K-팹리스의 성과가 부각되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단 이유에서다. 정부 지원을 강조하는 업계에도 비판적 시선이 감지된다. 정부 지원이 없었던 게 아니었던 만큼 업계 차원에서 먼저 막힌 길을 뚫어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HBM 가져온 K-팹리스, 엔비디아 뒤따르나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퓨리오사AI는 오는 5월 SK하이닉스의 HBM3를 탑재한 신형 AI반도체 ‘레니게이드’를 발표한다. 국내 AI반도체 중 HBM을 탑재한 건 해당 제품이 처음으로, 이를 통해 1.5TB/s의 대역폭(bandwidth)과 150W의 소비전력을 자랑한다. 이는 엔비디아의 H100PCle나 구글의 TPUv5e 등 하이엔드급 AI반도체와 유사한 성능과 효율이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측에서 HBM 공급 부족 상황에도 적극적으로 HBM을 공급해 줬다”며 “HBM을 탑재한 신형 레니게이드를 초거대 AI를 구동하는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에게 공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벨리온도 연내 HBM을 탑재한 신형 반도체 ‘리벨’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차세대 HBM3E를 탑재하는 제품으로,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생산뿐 아니라 개발 전과정을 함께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리벨-쿼드코어’에는 4.8TB/s의 대역폭을 달성하는 게 리벨리온의 최종 목표다. 사피온 역시 HBM을 탑재한 AI반도체 ‘X430’을 개발 중이다. HBM 분야 1위 기업인 SK하이닉스가 모기업으로 있는 만큼 최신형 HBM반도체와 설계가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피온은 이르면 내년 X430을 선보일 계획이다.

AI반도체에 탑재되는 HBM은 초거대 AI를 구동하는 데 핵심적인 반도체다. 매개변수가 수천억 개에 달하는 LLM(거대언어모델)이나 문자·영상·음성 등 여러 유형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멀티모달AI 등을 빠르게 구동하기 위해서는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병목현상을 줄이는 HBM이 필수적이다. 엔비디아 역시 하이엔드급 AI반도체에 SK하이닉스 등의 HBM을 공급받아 탑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초거대 AI 모델을 빠르고 높은 전력효율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HBM과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AI반도체 설계 기술이 필요하다”며 “엔비디아의 하이엔드 반도체 성능에 SK하이닉스의 HBM이 역할을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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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높지만, 일각선 회의론도

업계에선 국내에서 HBM이 탑재된 AI반도체가 양산되면 글로벌 시장 내 공급성과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팹리스들이 개발하는 AI반도체는 기본적으로 엔비디아 반도체보다 높은 전력 효율과 가격 경쟁력을 전제로 설계된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엔비디아 이상의 전력·가격 효율성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HBM 수요가 늚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도 분주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부터 고객사 확대를 통해 HBM3의 판매를 본격화하기 시작했고, 올 상반기엔 HBM 전체에서 HBM3의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 19일 “초고성능 AI용 메모리 신제품인 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공급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하며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을 알렸다.

다만 K-팹리스가 엔비디아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의견도 적지 않다. K-팹리스의 질주가 이전부터 이어져 왔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7월에도 국내 팹리스의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당시 이혁재 대한전자공학회 회장 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향후 AI 시장에서 상당 부분을 점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점유율이 90% 상당으로 사실상 독점을 하고 있지만 아직 발열과 전력 소모가 크다는 등 단점이 있고, 퓨리오사AI와 딥엑스, 모빌런트 등 우리나라 팹리스의 기술 수준이 상당 부분 올라왔다는 근거에서였다. 그는 “이들 팹리스가 곧 전체 AI 시장의 30~40%를 점유할 것이라고 본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시점에 살펴보면, K-팹리스의 위치는 여전히 출발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술 격차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판매망 측면에서 적잖은 차이가 있는 탓이다. 당장 매출 지표만 봐도 엔비디아의 산은 높기만 하다. 엔비디아의 지난해 2분기 매출은 135억1,000만 달러(약 18조원), 영억이익은 68억 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은 101%, 영업이익은 1,263% 증가한 수치다. 직전 분기 대비로만 봐도 각각 88%, 218% 급증했다.

반면 K-팹리스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최근 위탁생산(파운드리)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팹리스 분야가 상대적 소외를 받은 영향이다. 반도체 업계가 팹리스 생태계를 살펴보려 시도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결국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향방의 바람에 갈대처럼 누워버리고 마는 것이 K-팹리스 업계의 현주소다.

‘정부 지원’ 강조하는 업계, 하지만

이렇다 보니 엔비디아의 독주를 K-팹리스가 막아서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상술했듯 이미 국내에서도 기를 제대로 못 펴는 상황인 K-팹리스가 글로벌 공급망을 제대로 뚫어낼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한국 점유율이 3%, 팹리스는 1%에 불과하다는 점도 불안감을 더한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 팹리스 기업들의 생존은 대기업 납품에 달렸다”며 “해외 진출 등 외부 활로 개척은 사실상 쉽지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에 인재가 몰리고 정부 지원도 실적을 내는 기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렇다 보니 어느 정도 성과를 내더라도 단기적 성과에 머무는 게 대체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팹리스 업계는 정부 차원의 지원을 거듭 요청하는 모양새다. 지금은 다소 부진할지 몰라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팹리스 업계가 살아나면 이 자체가 국가를 부양할 미래 먹거리로 성장할 수 있단 논거다. 이와 관련해 김용석 반도체공학회 부회장 겸 성균관대학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내 팹리스 기업을 육성하려면 팹리스 기업이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고객사에 해당되는 세트업체와 정부가 함께 나서서 전략적인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특히 혁신 칩을 개발하는 정부과제에서 성과를 못 내더라도 실패를 용인해 주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성장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정부 지원은 이전부터도 적잖이 이어져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팹리스 기업 육성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반도체 R&D를 강화해 반도체 수출액을 2027년 1,700억 달러까지 늘리겠단 구상을 밝혔으며, 지난 2021년엔 ‘글로벌 K-팹리스 육성을 위한 시스템반도체 기술혁신 지원 방안’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도 팹리스와 소부장 기업의 확장을 뒷받침하는 계획이 정부 차원에서 나왔고, 지난 1월엔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매출 상위 50위 팹리스 기업을 10개까지 육성하겠다”며 관련 육성책도 쏟아졌다. 숱한 지원에도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리지 못한 건 정부 지원만으론 한계가 명확하단 방증이다. 결국 업계 차원의 한계돌파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