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 위기’ 석유화학업계, LG화학-롯데케미칼의 출구전략은 NCC 부문 통합?
합종연횡 본격화한 석유화학업계, 업계 1·2위 LG·롯데도 통합 타진
통합 목적은 효율성 제고? 일각선 "불편한 동거될 수도" 지적도
실적 기대치 '뚝뚝' 떨어지는데, "기회만 있다면 합작 가능성 높을 듯"
국내 석유화학업계 2위 업체인 롯데케미칼이 1위 LG화학에 범용 나프타분해설비(NCC) 부문 통합을 제안하고 나섰다.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산업이 공멸 위기를 맞으면서 업체 간 합종연횡을 본격화한 것이다. 다만 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앞서 통합을 이뤘다가 ‘불편한 동거’라는 선례만 남기고 분할 타진에 나선 여천 NCC 꼴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LG화학-롯데케미칼 사생결단? ‘합종연횡’ 이루나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각사의 석유화학 일부 사업을 합치는 내용의 초기 단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협상은 범용 NCC 부문을 한 곳이 인수하거나 합작사(JV)를 세우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힘을 합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놓고 실무진 차원에서 모색해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사인 양사가 머리를 맞대고 나선 건 석유화학업계 자체가 공멸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원인은 중국이다. 당초 중국은 국내 기업이 생산한 석유화학제품의 최대 수요처였으나, 지난 2019년부터 범용 제품의 완전 자급화에 성공하면서 경쟁자로 돌변했다.
실제로 중국의 에틸렌 생산 능력이 세계 1위로 올라서면서 한국의 석유화학제품 중국 수출량은 2019년 1,801만t에서 지난해 1,470만t으로 18.4% 급감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석유화학제품 전체 수출량도 2019년 3,797만t에서 지난해 3,677만t으로 줄었다. 수출국 다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음에도 중국의 부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것이다.
이에 양사는 석유화학 사업부를 통합하는 등 합종연횡을 이룸으로써 경쟁적인 과잉 투자를 자제하고 정유사에서 나프타 등 원료를 도입할 때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는 등 효율성을 제고하겠단 방침이다. 양사의 긴밀한 협력 아래 각사 해외법인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긍정평가되는 지점이다. 업계에선 롯데케미칼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에탄크래커(ECC) 설비에서 생산한 에틸렌을 LG화학이 먼저 공급받아 미국 시장 내 고부가가치 제품 점유율을 늘리는 식의 협력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구조조정 작업도 착수했지만, “매각 여부 불확실”
양사는 각자 슬림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중국의 영향으로 부가가치가 낮아진 사업을 점진적으로 정리해 효율화를 이루겠단 방침이다.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2조원(약 14억5,000만 달러)을 투입해 증설한 여수 NCC 2공장을 가동 2년여 만에 시장에 내놨다. 석유화학사업을 자회사로 분할한 뒤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PC)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롯데케미칼도 해외 진출의 상징이던 LC타이탄의 매각을 추진 중에 있다. LC타이탄은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에틸렌,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면서 롯데케미칼의 해외 전진기지 역할을 해온 알짜회사였지만, 2022년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면서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다만 문제는 이들의 슬림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 여부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LG화학은 앞서 지난해 여수 NCC를 매각하기 위해 몇몇 업체와 접촉한 바 있으나 매각가를 합의하지 못해 불발됐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NCC는 시설 투자비만 3조원이 들었다”며 “중국의 자급력 확대 이슈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업체는 사실상 없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의 LC타이탄도 원하는 값을 받기는 어려우리란 전망이 많다. ‘지는 해’로 치부되는 석유화학 산업계에 큰돈을 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통합에도 우려 섞인 목소리, “여천NCC 꼴 날 수도”
일각에선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합종연횡 또한 불안한 지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작했다가 결국 분할을 타진하기 시작한 여천NCC의 사례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보유한 여수의 나프타분해설비(NCC)를 50:50의 비율로 합쳐 세운 합작사로, 나프타를 분해해 석유화학제품의 쌀로 통하는 기초 원료 에틸렌을 비롯한 화학제품을 생산해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등에 납품해 왔다.
여천NCC의 실적은 건재했다.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의 2017~2021년 연평균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3,387억원(약 39억 달러), 5,567억원에 달했고, 벌어들인 이익의 상당액을 모회사에 배당하고 있었다. 동기간 여천NCC의 누적 배당금은 총 2조700억원에 이르렀으며, 평균 연봉도 1억1,200만원에 달하는 등 관계자들 사이에선 ‘신의 직장’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여천NCC가 찢어지기 시작한 건, 합작을 이룬 두 회사가 ‘불편한 동거’를 이어온 탓이 크다. 실제 지난 2007년 인사권을 두고 DL그룹 측 임직원과 한화그룹 측 임직원들은 물리적 충돌을 겪은 바 있다. 해당 갈등이 봉합된 후에도 양사의 마찰은 이어졌고, 결국 여천NCC 폭발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계가 상당 부분 틀어졌다. 지난 2021년 여천NCC 공장에서 시험가동 중이던 열교환기가 폭발하면서 근로자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사고 수습 과정에서 한화그룹과 DL그룹은 여천NCC를 분할해 관리하는 게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업계에선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합작이 이뤄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의 부진이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석유화학업체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수치)는 손익분기점으로 꼽히는 300달러 선을 밑돌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월평균 에틸렌스프레드는 t당 186달러에 그쳤는데, 이는 지난 2월 평균(t당 226.5달러)보다 악화한 수준이다. 유가 상승으로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서 업황도 덩달아 나빠진 것이다. 여기에 차후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 여파로 유가가 더 오르면 스프레드가 떨어져 수익성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1분기 실적 기대치도 낮아지는 추세다. 에프앤가이드에 의하면 LG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7.9% 줄어든 1,524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3개월 전 영업이익 예상치(5,343억원)에 비해 71% 넘게 쪼그라든 수치다. 이런 가운데 증권가는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이 1분기에 각각 1,086억원, 1,003억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다 보니 한계사업 정리에 박차를 가해야 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입장에서, 기회만 있다면 통합 노선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리란 전망이 업계를 중심으로 거듭 나오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