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제한·판관비 감축·보수 삭감, 대기업들 줄줄이 ‘긴축 경영 체제’ 돌입
불필요한 비용 줄여라, 허리띠 바짝 졸라매는 대기업들
법카 한도 줄이고 보수 깎고, '3고'에 비상경영체제 전환
고삐 조였던 디즈니, 순익 전망치 상회 성공 "긴축효과"
최근 고금리, 고환율, 고유가로 대변되는 3고(高)의 파고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회삿돈을 사용한 골프 금지령부터 해외 전시회 불참, 임원 보수 한도 축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 불확실성의 대비 태세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골프는 개인 돈으로” 법인카드 골프 금지령
25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최근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 비용으로 치는 골프를 사실상 금지했다. 업무상 꼭 필요하다는 명백한 사유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회삿돈이 아닌 개인 돈으로 골프를 치라는 것이다. 아울러 임원들의 법인카드 사용도 최소화하도록 했다.
지난해 469억원(연결기준)의 영업손실을 내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는 올해 들어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비용 축소 및 수익성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정비용을 낮추기 위해 창사 31년 만에 전사적인 희망퇴직까지 실시했지만, 상당수가 회사를 떠날 것이란 예측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마트 측은 당초 수백명 규모가 신청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 신청자수는 수십명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다른 방식의 비용 절감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24년 만에 토요 사장단 회의를 부활시킨 SK도 골프를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SK텔레콤의 경우 올해 사업 환경이 악화할 것을 감안해 비용 절감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마트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골프를 치는 것까지 막지는 않지만, 회사 비용으로 골프를 치는 일은 최소화하라는 방침이다. 한때 ‘No 멀리건(No mulligan), No 일파만파’라는 이른바 ‘SKT 골프룰’을 만들 정도로 골프에 진심이었던 SK텔레콤에선 이례적인 조치라는 평이다. 실제 재작년까지만 해도 SKT 임원들의 골프 수준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명했다.
이어 SK 일부 계열사는 임원의 법인카드 한도를 대폭 축소하기도 했으며, 적자가 지속 중인 SK온의 경우 임원들도 출장 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사업이나 지분 매각 등 구조조정도 임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SK 주요 계열사들은 연초부터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재점검 작업에 착수한 상태로 오는 6월 확대경영회의를 통해 사업 재편 방향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역시 계열사 임직원들의 골프와 해외 출장 등을 제한하고 나섰다. 롯데지주는 지난달 18일 계열사에 ‘근무 기본 가이드라인 준수’라는 내용의 통지문을 통해 “경영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불요불급한 비용 집행을 지양해 달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임원들의 주중 골프 금지 ▲주말 포함 해외 출장 삼가 ▲협력사와 관계 해치는 행동 자제 ▲협력 관계 유지 명목으로 과도 친목·사교활동 요구 금지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원 보수 삭감에 해외 전시회 불참까지, ‘긴축 경영’ 확산
일부 대기업의 경우 임직원 보수·성과급 삭감이나 해외전시회 불참 등의 경상비 축소를 통해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LG그룹은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이사 보수 한도를 줄이며 비용 절감에 나섰다. 지주사인 ㈜LG는 지난해 180억원에서 올해 170억원으로, LG전자는 90억원에서 80억원, LG화학은 80억원에서 70억원으로, LG생활건강은 80억원에서 60억원으로 각각 이사 보수총액 한도를 줄였다. 사측은 “전년 대비 연결 손익 감소 등에 따른 경영 성과와의 연계성, 국내외 경기 회복 둔화 등 경영 환경, 주주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HD현대도 권오갑 회장과 정기선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 5명을 유지하면서 보수 총액 한도를 지난해 34억원에서 올해 27억원으로 축소했고 LS그룹의 지주사인 ㈜LS 역시 올해 초 긴축 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명노현 LS 대표이사 부회장은 올 초 주재한 사장단 회의에서 “경제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해서 긴장감을 가지고 예산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화그룹은 최근 계열사 간의 스몰딜을 통해 사업별 개편에 착수한 가운데 지주사 격인 ㈜한화의 모멘텀 부분이 지난달 참가하려던 미국 배터리 전시회 ‘인터내셔널 배터리 세미나&이그지빗 2024’에 최종 불참하는 방식으로 비용 줄이기에 나섰다. 앞서 한화그룹은 지난 2월 내부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판매·관리비(판관비)도 기존 계획 대비 30% 삭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한화는 지난해 참가했던 미국 ‘더 배터리 쇼 USA’, ‘더 배터리쇼 유럽’ 참가도 보류를 결정해 사실상 불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성과급을 축소 지급하면서 회사와 직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사례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 예로, 지난해 직원 성과급으로 전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평균 기본급의 362%를 공지한 게 발단이 됐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 직원 1,700여 명은 익명 모금을 통해 지난 2월부터 약 두 달간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 한 달 새 직원 7,000여 명이 노동조합에 대거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삼성전자의 ‘노조 리스크’ 역시 DS(반도체)부문의 지난해 초과이익성과급(OPI) 지급률이 연봉의 0%로 책정된 데서 비롯됐다.
긴축 경영 효과 톡톡, 디즈니 ‘어닝 서프라이즈’ 기록
한편 이같은 긴축 경영은 실제 수익성 개선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앞서 디즈니는 직원 감축과 콘텐츠 축소 등 광범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한 바 있다. 그 일환으로 디즈니는 지난해 2월부터 세 차례의 정리해고 작업을 통해 7,000여 명의 직원을 감축했다. 이는 전 세계 디즈니 직원의 3.6%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자사 OTT인 디즈니플러스와 훌루에서 30개 이상의 영화와 TV 시리즈 등을 삭제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디즈니가 삭제한 콘텐츠의 가치는 약 20억 달러(약 2조7,500억원) 분량으로 추산된다. 이를 통해 저작권료 지급 규모를 축소한 디즈니는 세금 절감 효과도 함께 거둔 것으로 파악된다.
디즈니가 콘텐츠를 삭제하면서까지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은 지난 몇 년간 경영 악화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디즈니플러스의 경우 구조조정 이전인 2022년 4분기 11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지난해 5월에는 6억5,900만 달러(약 9,0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왔다.
턴어라운드를 위해 택한 디즈니의 구조조정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워치에 따르면 디즈니는 지난해 4분기(2024 회계연도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1.22달러의 조정 주당순이익을 거두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이는 월스트리트 전망치인 0.99달러를 웃돈 수치다.
매출은 235억5,000만 달러(약 32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235억1,000만 달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놀이공원, 호텔, 캐릭터 상품 등을 포함하는 ‘경험’ 사업 매출이 전년보다 7% 늘어난 91억3,000만 달러(약 12조5,600억원)로 집계됐고, 디즈니플러스와 훌루 등 스트리밍 서비스 매출도 15% 증가한 55억4,600만 달러(약 7조6,30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액에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뺀 영업이익 역시 38억7,600만 달러(약 5조3,300억원)로 전년 대비 27%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