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사업팀 해체한 삼성, 휴머노이드 ‘선택과 집중’ 나섰지만 “인력 부족 등 과제 여전”
DX 부문 로봇사업팀 전격 해체, 기술력 부족에 사업 전략 전환 꾀하나
삼성의 시선은 '휴머노이드'로, "시장 규모 확대 등 사업 전망도 좋아"
인력 풀 좁은 한국, 생성형 AI 탑재 등 과업 산재한 삼성 "이대로 괜찮을까"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차세대 로봇 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첫 웨어러블 로봇인 봇핏을 개발한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의 로봇사업팀을 해체하고 연구개발(R&D) 인력을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로 배치해 로봇 분야 선행 개발의 시너지를 노리는 전략적 변화를 결정한 것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해 포석을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 로봇사업팀 해체, 휴머노이드에 역량 집중하나
1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DX 부문의 조직개편을 통해 로봇사업팀을 해체했다. 로봇사업팀은 2021년 12월 태스크포스(TF)에서 팀으로 격상돼 삼성전자의 첫 상용 로봇 시장 진출을 이끌었으나, 2년 6개월 만에 150여 명의 로봇사업팀 구성원들은 기존 부서로 복귀하거나 전경훈 CTO(삼성리서치장) 산하의 TF로 재배치됐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봇핏의 개발과 양산을 위한 작업이 끝난 만큼, 향후 로봇 사업 역량을 위한 조직개편”이라며 “R&D 인력은 CTO 산하 TF로 재배치해 삼성리서치 로봇 연구팀과 시너지를 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봇핏은 2020년 ‘젬스 힙(GEMS-Hip)’으로 처음 공개된 로봇으로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보행을 돕는 기능을 제공한다.
업계에선 봇핏의 본격 판매를 앞두고 로봇사업팀이 해체된 데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제품 업데이트 등 사후 처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까지 모두 기존 업무로 복귀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 내부에선 5년을 공들인 봇핏의 기술력이 예상보다 더디자 전담팀을 유지하는 데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기술력 부족이 가시화한 만큼 로봇사업팀을 해체한 뒤 다른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더 용이할 수 있단 것이다. 삼성전자의 봇핏은 제품 완성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출시일이 거듭 밀리는 등 기술적 부진을 여러 차례 표출한 바 있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협동로봇 전문기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전략적 지분투자를 확대하는 것과 관련성이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현재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14.83%를 확보한 2대 주주인데, 여기에 콜옵션을 통해 지분율을 59.94%까지 높일 수 있는 권리까지 보유하고 있다. 로봇사업팀 해체 이후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조기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삼성전자가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한 포석을 둔 것이라 보는 시선도 많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이어 올해 1월 투자 전문 자회사 삼성넥스트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1X테크놀로지스에 투자했다”며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이을 신성장 동력으로 로봇을 지목한 만큼 로봇에서도 초격차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용 회장도 휴머노이드에 ‘관심’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로봇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이미 지난해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을 중장기 목표로 잡고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겠단 언급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통해 거듭 나온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 내부 인사에 따르면 이 회장은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검토 지시를 내렸다. 지난해 5월엔 미국 출장 중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만나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의지를 강력히 표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현재 사람의 눈에 가까운 초고화소 이미지센서, 사람의 오감(미각·후각·청각·시각·촉각)을 감지하고 구현할 수 있는 센서 등의 개발을 추진 중에 있다”고 전했다.
폭발적 성장세 보이는 휴머노이드 산업, 하지만
삼성전자의 휴머노이드 집중 전략은 유효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휴머노이드 시장 성장세가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3월 보고서를 발간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35년 380억 달러(약 52조원)에 달하고 로봇 출하량은 14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골드만삭스가 발표했던 보고서 대비 시장 규모는 6배, 출하량은 4배 증가한 수준이다. 로봇 제조 비용도 40%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면서 수익성이 보다 빠르게 달성될 것이라 내다보기도 했다.
골드만삭스가 추정치를 대폭 수정한 건 대형언어모델(LLM) 도입의 영향이 크다. 로봇공학에 LLM 도입이 본격화하면 엔지니어가 모든 것을 로봇에 코딩할 필요 없이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 것이다. 고정밀 기어와 액추에이터 등 로봇 부품 가격이 저렴해졌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했다.
업계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제작 비용은 지난해 대당 5만~25만 달러(약 6,700만~3억4,000만원)대로 예측됐으나, 올해는 3만~15만 달러(약 4,000만~2억원) 정도로 낮아졌다. 당초 분석가들은 제작 비용이 연간 15~2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40%나 줄어든 셈이다. 이로 인해 기존 예상보다 공장용 휴머노이드는 1년, 소비자용 휴머노이드는 2~4년 빨리 보급될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흐름에 발맞춰 역량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봇핏에서부터 기술력 부족을 표출했던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역량 강화를 온전히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은 탓이다. 애초 삼성전자가 목표로 했던 휴머노이드가 서빙이나 보행 보조 기능을 가진 단순한 형태라는 점도 불안 요소다. 최근 휴머노이드 산업에 진출하고 있는 테슬라·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테크 기업들은 챗GPT 등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생성형 AI를 인간형 로봇에 탑재한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는 추세다.
결국 삼성전자가 휴머노이드 산업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선 전략 변경 및 생성형 AI 탑재 기술 모색 등 다각적인 과업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한국 특유의 좁은 인력 풀이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