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에 26조 지원 띄운 정부, 각국 대규모 보조금 사이 ‘간접 지원’ 효용 있을까
반도체 산업 지원 총 26조원, K칩스법 기한도 연장 수순
소부장 지원 강화에 기대 나오지만, 일각선 '직접 지원' 필요하단 지적도
법인세 부담률 높은 한국 반도체 대기업들, SK는 27.8%·삼성은 18.3%
전 세계적으로 첨단산업 자국 유치 전쟁이 격화한 가운데 우리 정부도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을 내놨다. 주요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주는 대신 우대 대출과 인프라·인력 양성을 통해 반도체 산업 약점을 보강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선 정책 지원을 공식화했다는 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시장 일각에선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여타 강대국들이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직접 지원을 이어가는 와중 간접 지원만으론 한계가 명확하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26조원 지원 공식화, 한국도 ‘반도체 전쟁’ 참전하나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2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주재해 “반도체는 국가 총력전이 전개되는 분야”라며 “금융, 인프라, R&D는 물론 중소·중견기업 지원까지 아우르는 26조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공장 신축, 라인 증설과 같은 설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다 보니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는데, 신설되는 산업은행 지원프로그램으로 이런 어려움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날 정부가 밝힌 26조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은 18조1,000억원 이상의 금융·펀드 지원과 2조5,000억원 이상의 반도체 클러스터 도로·용수·전력 인프라 지원, 5조원 이상의 연구개발(R&D)·인력 양성 지원으로 구성됐다. 금융·펀드 지원 가운데 17조원은 반도체 설비 투자 기업에 대한 산업은행의 저리 대출 용도로 쓰일 예정이며, 인프라 투자액은 정부(국고 지원)와 공공기관이 분담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1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해 유망 팹리스와 소부장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한편 미리팹 등 기업들이 공동 이용할 수 있는 연구 인프라를 신속 확충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올해 일몰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에 대해선 기한 연장을 공식화했다. K칩스법은 반도체·2차전지·전기차 같은 국가전략기술에 시설 투자하면 15~25%의 세금을 돌려주는 제도로, 올해 투자 증가분에 10%p 한시 공제율을 더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까지 합치면 공제율은 최대 25~35%까지 높아진다.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을 통해 법안 기한을 총 3년 연장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세액공제는 R&D와 설비 투자금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환급해 주는 것으로 보조금이나 다를 바 없다”며 “기한을 연장해 기업이 R&D와 설비투자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업계는 환영 목소리, “소부장 지원 의미 클 것”
정부의 본격적인 지원 정책에 업계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간접적인 금융지원을 전개하면서 각국의 보조금 전쟁에 맞설 토대가 마련됐다는 시선에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 지원과 투자세액공제 연장으로 속도감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 준공을 위한 여건이 조성됐다”며 “주요국들이 반도체 산업을 놓고 지원 경쟁을 펼치고 있는 만큼 속도감 있는 이행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부장 기업들의 호응이 좋다. 이번 반도체 지원 정책 공식화로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급한 ’10조원 이상의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에도 활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지난 10일 경기 화성에서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소부장 기업, 팹리스, 제조시설 등 반도체 전 분야의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10조원가량의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진행 중이던 5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에 지원책을 더 추가하겠단 건데, 정황상 이번 17조원 반도체 설비 투자 기업 저리 대출이 이것으로 보인다. 당초 계획에서 7조원이 추가된 셈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반도체 생태계 펀드 조성을 강조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자금 조달 여력이 충분치 않은 대부분의 소부장 기업에 있어 정부 차원의 생태계 조성은 기업 생명력과도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R&D에 5조원가량이 투입되는 것 또한 소부장 기업 성장에 젖줄로 작용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일각선 비판 목소리도, “간접 지원만으론 한계 뚜렷해”
다만 일각에선 부정적 의견도 나온다. 결국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이 대규모 보조금 지급책을 앞다퉈 꺼내 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출 위주의 간접 지원만 시사한 이번 정책은 아쉽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의 경우 2022년 반도체법(칩스법)을 통해 마련한 총 390억 달러(약 53조원)의 보조금을 삼성전자·인텔·TSMC 등에 지원하고 있고, 일본 정부는 4조 엔(약 35조원)을 배정해 자국 라피더스와 대만 TSMC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직접 지원 방식 대비 효용이 적은 간접 지원만으로 공장 유치 경쟁에서 파이를 나눠 갖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반도체 대기업에 대한 무관심이 정책에 노출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한정된 재원으로 소부장 업체를 중심으로 대책을 짜다 보니 실질적으로 한국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대해선 지원이 부족해졌단 것이다. 그나마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반도체 대기업에도 어느 정도 효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긴 하나, 법인세 부담률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단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인텔(10.8%)·TSMC(10.5%)와 비교하면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세금 부담은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18~2022년 평균 법인세 부담률(법인세 비용÷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은 27.8%로 집계됐고, 같은 기간 삼성전자도 18.3%로 20%에 육박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책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거듭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