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판 생산 ‘앱솔릭스’ 미국서 보조금 7,500만 달러 받는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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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조금 받는 앱솔릭스, 유리기판 경쟁력 강화하나
AI 반도체 중요도↑, "2030년 전후로 업계 전반에 유리기판 채용될 듯"
국내 경쟁력 높지만 "선두 기업은 여전히 인텔, 보조금에 안도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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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C 자회사 앱솔릭스(Absolics)가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반도체 칩 제조사를 제외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가운데 미 정부 보조금을 받는 첫 사례다. SKC는 이번 보조금 수령을 계기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의 게임체인저가 될 유리기판 사업에 한층 속도를 낼 계획이다.

미 정부, 앱솔릭스에 보조금 7,500만 달러 지급

23일(현지 시각) 미 상무부는 칩스법(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반도체 생산 지원금으로 반도체 패키징용 유리기판 생산 업체 앱솔릭스에 7,500만 달러(약 1,015억원)를 제공하는 예비조건각서(PMT)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총투자비 3억 달러(약 4,100억원)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지급 대상은 연간생산능력 1만2,000㎡의 조지아주 코빙턴 유리기판 제1공장이다. 앱솔릭스는 보조금 수령 이후 연산 7만2,000㎡ 규모의 제2공장 건설도 추진할 예정이다. 2공장에 투입될 투자금은 총 4억 달러 이상이다.

앱솔릭스가 소부장 업체 중 최초로 미 정부 보조금을 수령한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에선 의미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유리기판이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만한 게임체인저임을 미국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셈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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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C가 개발한 반도체 패키지용 유리기판을 적용한 모습/사진=SKC

AI 시대 본격화에 유리기판도 ‘주목’

유리기판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부터다. 업계에 따르면 AI 성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는 연산과 추론을 담당하는 고성능 반도체다. 한층 빠르고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더욱 고도화된 AI 반도체 칩이 필요해졌단 의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반도체 칩 집적화와 미세공정 고도화 기술에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업계가 찾아낸 새로운 ‘길’ 중 하나가 바로 플라스틱기판 대신 유리기판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리기판은 기존 실리콘과 유기 소재의 한계를 전반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 실리콘 소재는 배선 밀도가 높고 전기적 성능이 우수하지만 제한된 웨이퍼 크기, 복잡한 공정, 높은 제조 비용 등 단점이 있다. 유기 소재의 경우 공정이 단순하고 제조 비용이 실리콘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낮은 배선 밀도, 높은 열팽창 계수로 인한 뒤틀림 및 변형 등이 발목을 잡는다.

반면 유리기판은 실리콘보다 낮은 제조원가, 유기보다 뛰어난 내열성과 절연성, 높은 평탄도와 기계적 강도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 AI 반도체의 대면적화에 적합해 많은 칩을 탑재해도 변형 우려가 적다는 강점도 있다. 또 상호연결밀도가 10배가량 개선돼 고주파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고 데이터 처리 및 전력 소비효율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이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같은 수동 소자를 기판 내부에 심을 수 있어 기판 규모 축소에 유리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기와 유리기판의 거칠기 수치는 각각 400~600nm, 10nm 수준으로 최대 6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 소재의 취성과 높은 생산비용, 다층 배선 구조 구현의 어려움 등 단점이 있긴 하나 단점 대비 강점의 효용이 더 클 것이란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앱솔릭스 경쟁력 높지만, “선두 기업 인텔 주시해야”

시장에선 2030년 전후로 인텔, 엔비디아, AMD 등 고성능컴퓨팅(HPC) 업체들의 유리기판 채용이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 유기 소재 기판이 2.5D·3D 패키징을 통한 트랜지스터 수 확장세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리기판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건 역시 앱솔릭스다. 앱솔릭스는 지난 2021년 HPC용 유리기판 시제품을 선보인 바 있으며, 지난해 하반기엔 패키징 테스트 장비 분야 선두 기업인 ISC와 미국 반도체 패키징 분야 스타트업 칩플레에 연이은 지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전략적 투자를 통한 사업 기반 및 경쟁력 강화를 이루겠단 취지다.

삼성도 유리기판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그룹의 반도체 기판 개발사 삼성전기는 지난 1월 세계가전박람회 CES 2024에서 유리기판 실물을 공개하며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2026년 유리기판 양산을 목표로 생산개시 계획에 착수, 유리기판 출시를 위해 그룹계열사와의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최근엔 독일 LPKF와 LPKF 코리아, 켐트로닉스 등 제조 장비 회사들과 유리기판 제조 공급망 구축을 위한 기술 협약을 추진하기도 했다. 유리기판 사업에 있어 국내 기업의 시장 선점이 기대되는 지점이다.

다만 해외에서도 관련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만큼 방심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 인텔은 10년 넘게 유리기판 대체 노력을 지속해 오면서 유리기판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에 대규모 생산설비 팹을 구축하고 지난해 9월 업계 최초로 유리기판 패키징 기술을 선보인 바도 있다. 인텔은 2030년까지 단일 패키지에 1조 개의 트랜지스터를 수용하는 유리기판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상태며, 한편으론 HPC 및 AI 반도체용 유리기판 출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앱솔릭스가 미국 정부 보조금 지원에 매몰되기만 해선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