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테크 기업 고용 시장 양극화와 개발자, 데이터 과학자 구분
WSJ, 미국 테크 기업들 AI 인재 채용 줄여, A급 인재만 채용
단순 지식 뿐만 아니라 응용력, 협업 능력까지, 팔방미인 따져가며 채용
국내도 늦었지만 개발자와 AI전문가 구분하기 시작해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테크 기업들이 AI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예전처럼 AI개발자 채용을 대규모로 진행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부 A급 인재를 제외하면 해고 압박이 심하고, 재교육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부터 줄기차게 주장했던대로, 진작부터 이렇게 됐었어야 했는데, 투자금과 정부 지원금이 넘쳐났던 덕분에 시장의 교정 작업이 좀 늦어졌다고 본다. IT업계의 개발자라는 직군과 데이터 과학자, 혹은 AI 연구자(Researcher)로 불리는 직군 사이에는 아이돌과 판소리 급의 격차가 있다는 것이 조금씩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테크 혹한기, 개발 의존도 낮추는 기업들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국내 주요 IT기업들이 개발 인원을 계속 축소하고 있는 덕분인지 요즘은 더 이상 개발자들이 뻣뻣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고, 실제로 개발자 중에서도 구직자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회사 내 마지막 개발자를 내보내고 1년 사이에 회사 내의 서비스는 완전히 개발 의존도를 0으로 낮췄고, 다른 스타트업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 인도 개발팀을 외주로 채용해서 업무를 맡기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개발자 의존도를 완전히 0으로 만들었다.
당시 회사에 데리고 있던 개발자들은 코딩을 모르는데 어떻게 데이터 과학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들을 하곤 했는데, 학자들이 쓰는 LaTeX 플랫폼이 수학적인 문서 작업을 모조리 코딩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과, 연구자들이 데이터의 구조에 맞게 수식을 뜯어고쳐서 해결하는 것을 보고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코딩과 데이터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코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감을 잡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인원 자체도 크게 감소했고, 개발자와 데이터 과학자가 완전히 다른 직군이라는 것을 모르면 오히려 놀림감이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해듣는다. 기업들도 데이터 과학자 선발 방식을 변경했고, ‘코딩 테스트’라고 불리던 기계적인 코드 작업 대신 통계학 지식을 코딩 작업으로 검증하는 것으로 대체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됐다.
글로벌 수준에 걸맞는 AI전문가, 데이터 과학자 수요만 증가세
쿠팡처럼 글로벌 수준의 고급 인재들을 채용하는 기업들은 쿠팡이츠가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의 기업들과 배달 수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격 책정 시스템 구축을 위해 미국 모 대학의 IS(정보 시스템) 전공 교수를 데리고 왔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개발자들을 데리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 달리, 쿠팡은 이 분야에서도 미국 아마존을 따라 고급 수학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 구축에 나선 것이다. 당장은 담당자 몇 명이 교체된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수학적 역량 차이는 1~2년 안에 시스템의 차이로 나타나고, 결국 쿠팡이츠가 배달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 싸움에서 크게 유리한 고지를 조성하게 될 것이다. 아마존이 그렇게 미국 주요 도시 배달 서비스를 장악하기도 했다.
WSJ의 최근 보도가 없더라도 주변에서 A급 인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데이터 과학 및 AI업계 인력들이 대규모 해고(Layoff)되는 사례는 심심찮게 들린다. 모 자율주행 기술 개발 기업에 있던 가까운 지인은 자율주행 팀이 해체되고 난 다음에 센서 데이터 처리 대신 공장 자동화 시스템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으로 이직했다. 급여는 절반으로 깎였지만,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답변했었고, 단체 채팅방의 다른 지인들도 ‘겨울이 왔다(Winter has come)’면서 지금은 타협해야하는 시기라는 평을 쓰기도 했다. 다들 지난 몇 년간이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줬던 시기라는데 대체로 공감하는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미국 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Nvidia)의 주요 AI칩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지만, 정작 채용에는 매우 인색한 모습이다. 미국 정부의 지원금도 줄었고, 넘쳐나던 벤처 투자금도 잘 보이지 않는데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AI 기술직군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어느 수준 이상이면 일단은 뽑는다는 철학으로 채용에 임했으나, 금융 경색 등으로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각종 조건을 다 갖추지 않은 인재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면접장에서 요구하는 수학적 이해도의 깊이도 깊어졌고, ‘대화되는 기술자’에 대한 요구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졌다는 평가도 자주 나온다.
지식은 기본, 응용력도 따지는 시대
WSJ에 따르면 “개발자 고용 시장은 불균형 상태로, 생성형 AI 관련 지식이나 대규모언어모델(LLM)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특정 유형의 1급 AI 인재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정작 이 같은 기술을 가진 직원은 충분하지 않다”며 “지난 몇 년간 해고된 수천 명의 다른 직원들은 AI 교육 과정을 수강하고 이력서에 ‘AI’ 유행어를 추가하며 점점 혼잡해지는 고용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드인은 지난해 12월 기준 자신의 링크드인 프로필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관련 직무 기술을 추가하는 이용자 수는 전년 대비 142배나 폭증했다고 밝혔다. 링크드인 채용 게시글에서 AI를 언급하는 경우 AI와 관련되지 않은 채용 공고에 비해 17%나 더 많은 입사 지원서를 받는다는 조사도 함께 공개됐다.
그러나 그간 개발자, AI전문가를 채용해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은, 단순히 기술적인 지식을 넘어서 문제 해결 능력, 혹은 민첩한 학습능력이 없으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때문인지 글로벌 기업들 채용 과정을 보면 예전보다 질문-답변(Q&A)을 통해 검증 가능한 사고 속도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기술적인 한계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극복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이야기도 늘었다.
항상 시험 문제를 만들 때마다 배운 내용을 응용해서 풀 수 있는 구조를 교묘하게 숨겨놓고, 그걸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내서 작은 단계들을 하나하나 극복하도록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을 쓰는데, 기업들의 채용이 점점 더 내가 지향하는 교육 방식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이쪽 시장도 이제 꽤나 성숙한 시장이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시장이 또 어떻게 진화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큰 틀에서 A급 인재가 아니면 퇴출되는 경쟁적인 시장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산업도 고급화 됐고, 원하는 인재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