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아이콘은 옛말, 안방서도 좁아지는 점유율에 ‘테슬라 천하’ 흔들린다
현대기아차·포드 등 맹추격에 쫓기는 테슬라, 미국 입지 휘청
중국 업체와의 경쟁서 밀린 지 오래, 글로벌 순위도 中에 내줘
제한적인 제품 라인업 및 전기차 시장 의존이 실적 부진 원인
전기차 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던 테슬라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달 중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안방인 미국에서조차 점유율 하락세가 가파른 모양새다. 테슬라의 신제품 출시 주기가 늦어지면서 두 가지 모델에만 의존하고 있는 사이 최첨단 기술을 무기로 내세운 경쟁 업체들의 맹추격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지 않은 홈그라운드, 과반 점유율 깨질 수도
27일(현지시간) 자동차 판매 데이터 제공업체 마크라인스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2개월 동안 테슬라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61만8,000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경쟁사의 전기차 판매량 총합은 59만7,000대를 기록했다. 테슬라는 지난 6년간 미국 전기차 판매량의 과반을 차지해 왔으나 그 격차가 급격히 좁혀진 모습이다. 지난 2022년 6월만 해도 테슬라의 판매량(47만 대)은 타 제조업체 판매량 합계(17만2,000대)의 2.7배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다음 주 6월 판매량이 나오면 지금의 격차마저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6월 집계에는 경쟁 업체들의 인기 신모델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10대 주요 전기차 제조업체 중 6개사는 판매량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대기아차와 포드의 판매량이 각각 56%, 86% 급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 테슬라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고, 판매량은 13% 급감하는 등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현대도 꽤 잘하고 있다” 여유만만하던 테슬라
테슬라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처음 왕좌를 차지한 건 9년 전이다. 테슬라는 2015년 모델S를 내놓으며 단숨에 미국 시장 1위에 올라섰다. 2018년 모델3가 출시된 이후에는 나머지 업체들의 출고량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판매했다. 2년 전까지도 테슬라의 점유율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75.8%로 1위를 굳건히 지켰고, 그 아래를 현대차(9%)와 폭스바겐(4.6%), 포드(4.5%)가 힘겹게 뒤쫓는 모양새였다. 이를 두고 당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2위를 차지한 현대차를 격려라도 하듯 “현대차도 꽤 잘하고 있다(Hyundai is doing pretty well)”는 트윗을 남기며 여유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년 새 상황이 급변하면서 타 업체들과의 격차가 꾸준히 좁혀지는 양상이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테슬라 주가에도 전반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테슬라 주가는 올해 들어 26%가량 내려앉은 상태다. 시가총액도 올해 3분의 1로 급락하며 5,500억 달러(약 757조원)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2021년 시총(1조2,000억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로 인해 머스크 CEO 역시 세계 최대 부자 타이틀을 내려놓고, 세계 부자 3위로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됐다.
2분기 실적 전망도 어둡다. 시장조사기관 팩트셋(FactSet)이 집계한 월가 컨센서스(전망치)에서 테슬라의 2분기 인도량은 약 44만 대로 추정됐다. 이는 전년 동기의 46만6,000대보다 2만6,000대 감소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개별 전문가들이 업데이트한 가장 최근 추정치에 비해 너무 높게 나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은행 RBC 캐피털마켓의 톰 나라얀 애널리스트는 25일(현지시간) 테슬라의 2분기 인도량 예상치를 기존 43만3,000대에서 41만 대로 하향 조정했다. 나라얀은 최신 데이터를 살펴본 후 전망치를 내려잡았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다수의 애널리스트들이 테슬라의 실적 전망치를 낮췄다.
중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도 7.5%로 주저앉아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의 입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야디(BYD) 등 중국 내 전기차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린 탓에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역시 줄어든 지 오래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테슬라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작년 1분기 10.5%에서 올해 1분기 7.5%로 감소했다.
이에 테슬라는 모델Y(SUV) 가격을 출시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내리고 모델3(세단) 구매자에게는 무이자 할부 혜택을 제공하는 등 현지 수요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럼에도 판매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중국 신에너지차(NEV) 시장에서 테슬라의 6월 첫째 주 판매량은 1만2,000대로, 전주인 5월 다섯째 주(1만5,200대)와 비교하면 21% 하락한 수치다.
설상가상으로 수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중국 시장과 유럽연합(EU) 국가 등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데, 최근 유럽에서도 힘을 잃고 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EAMA)에 의하면 테슬라는 지난 4월 EU 비회원국인 영국을 포함해 유럽 전역에서 신차 1만3,951대를 판매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한 것으로 작년 1월 이후 15개월 만에 유럽 내에서 기록한 가장 낮은 판매 실적이다.
지난달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량이 15%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테슬라의 실적 부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유럽 경제 대국이자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의 경우 전체 전기차 판매량이 0.2% 감소 정도의 보합세를 보인 데 반해 테슬라 실적은 무려 32%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EU가 최근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8%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높아진 상태다.
경쟁사들 새 라인업 발표할 때 테슬라는 구형 모델 고수
테슬라의 입지가 좁아진 주원인으로는 소수 제품군에 집중된 사업모델이 지목된다. 당초 머스크는 모델 라인을 간소하게 구축하는 전략을 통해 비용 절감과 공급망 안정 등으로 생산의 효율성을 증대시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요의 한계에 부딪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테슬라가 출시한 차종은 승용차 5종에 전기트럭 1종을 포함한 6종으로, 이 중 전체 판매량의 97%를 모델Y와 모델3에 의존하고 있는데, 두 모델이 각각 3년, 6년 전에 출시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시장 수요를 계속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하이랜드와 주니퍼라는 코드명으로 새로운 버전을 개발하고 있지만, 이조차 언제 출시될지 불투명하다.
테슬라가 신제품 출시에 주춤한 사이 현대기아차, 포드, 도요타 등 글로벌 제조 업체를 비롯해 BYD와 리샹(리오토), 샤오펑(엑스펑),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은 첨단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전기차 라인업을 발표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로 꼽히는 BYD는 해치백 스타일과 고급 SUV,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모델을 1만 달러(약 1,370만원) 미만의 가격에 판매하면서 중국 시장 1위는 물론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도 3위를 차지하며 테슬라(4위)를 앞질렀다.
부진의 또 다른 요인으로는 전기차에만 편중된 테슬라식 사업구조가 꼽힌다. 전기차 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는 탓에 업황이 악화될 경우 피해를 완화할 방안이 타사에 비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 수소차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통해 시장 둔화에 대응하고 있으나 테슬라는 전기차 라인밖에 없어 최근과 같은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현상 앞에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