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전쟁에 방산업계 냉전 이후 최대 규모 인력 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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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동·아시아, 전쟁·패권 다툼에 '지정학적 긴장감' 고조
미국, 유럽뿐 아니라 한국, 일본까지 주요국 국방 예산 확대
무기 수요 증가로 방산업체 10곳은 전체 인력의 10% 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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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 세계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방산업체들이 인력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각국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면서 무기 주문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방산 업계가 채용하는 인력 규모는 냉전 종식 이후 최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냉전 이후 방위산업 ‘최절정기

17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방위·항공우주 기업 20곳의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해만 수만 명을 채용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중 10곳은 전체 인력의 약 10%에 해당하는 3만7,000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채용 직급은 인턴 및 신입부터 경력 임원직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사이버보안 전문가, 용접공 등의 수요가 많다.

기업별로 보면 록히드 마틴, 노스럽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의 주요 방산 기업들은 약 6,000명을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리아 방산업체 레오나르도는 현재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즈,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함께 새 전투기 제작을 위한 ‘3국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며 올해 말까지 6,000명의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BAE시스템즈도 글로벌 전투 항공 프로그램 등을 수행하기 위해 채용인원을 확대할 전망이다.

방산업체들이 인력을 늘리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 정부가 국방 예산을 늘리면서 수십 년간 저조했던 무기 주문량이 갑자기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주요국의 디지털 기술 경쟁이 심화하면서 방산업체들이 기존 인력만으로는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유럽 항공우주·방위산업협회(ASD) 얀 파이 사무총장은 최근의 무기 수요 급증을 두고 “냉전 종식 이후 방산 분야에서 단기간에 가장 높은 주문량 증가를 기록한 시기”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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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 마틴의 전투기 T-50 골든 이글/사진=록히드 마틴

군비 지출 늘린 러시아, 독일 제치고 유럽 1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가 전시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방산업체만 호황을 누린 것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전쟁으로 인한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쟁으로 인해 GDP가 반등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에 이어 올해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을 앞서는 수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러시아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5조5,000억 달러(약 7,600조원)로, 5조3,100억 달러(약 7,300조원)를 기록한 독일보다 높았다. 순위로는 세계 5위, 유럽 1위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거시경제 분석 및 단기 예측 센터(CAMAC)는 “지난 2022~2023년 러시아의 산업 생산량 증가분 중 60~65%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덕분”이라고 추산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이미 러시아가 군비 지출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는 ‘군사 케인스주의’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올해 러시아 국방비는 연방정부 총예산 36조6,600억 루블(약 607조원)의 3분의 1인 수준인 10조4,000억 루블(약 172조원)에 달한다. 이는 침공 전 마지막 해인 2021년과 비교해 세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 2022~2023년 전쟁 관련 재정 부양책에 투입된 재정은 GDP의 10%에 해당한다.

전 세계 국방 예산 2.2조 달러로 ‘사상 최대’

러시아뿐만 아니라 주요국 정부 대부분 국방 예산을 늘리고 있다. 올해 2월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가 발간한 ‘세계 군사력 균형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이 지출한 국방비는 2조2,000억 달러(약 3,00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나라별로 보면 전 세계 국방비의 과반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 지출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를 합치면 전 세계 국방비의 70%가 넘는다.

이어 세계 최대 방산시장을 보유한 미국이 국방비 9,000억 달러(약 1,200조원)로 집행해 전 세계 예산의 40.5%를 차지했다. 미국을 제외한 NATO 회원국의 국방비는 전 세계 예산의 17.3%로 집계됐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비중은 각각 10%, 4.8%로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 위협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유럽의 경우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국방비를 늘리는 국가들이 급증했다. 실제로 NATO의 국방비 목표인 ‘GDP의 2%’를 달성한 유럽 동맹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이 있었던 2014년 2개국에서 2022년 8개국, 지난해 10개국으로 증가했다. NATO에 따르면 올해는 23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에는 북한의 도발이 고조됨에 따라 한국과 일본도 국방 지출을 늘리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4∼2028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4년간 국방예산은 총 348조7,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2022년 11월 공개한 국방계획에서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2027년까지 GDP의 2% 수준으로 방위비를 늘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스티안 기게리히 IISS 사무총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전 세계 국방예산의 증가를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의 분쟁, 이란의 반미 저항 세력 결집 등으로 인해 냉전 이후 새로운 세력 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토머스-듀렐 영 전 미국 해군대학원 유럽 민군관계센터(CCMR) 프로그램 매니저도 “의심할 여지 없이 전 세계적으로 국방 예산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많은 서방 국가가 냉전 이후 군대의 현대화 필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장 끝나더라도 군용 장비에 대한 수요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