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업계, ‘큰 손’ 中 불황에 재고 쌓이자 공개 할인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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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지방시·베르사체 등, 최대 50% 할인
전년 대비 할인율·할인 품목·할인 기간 모두 늘어
韓, 고물가에 중고 매매·할인점·아울렛 매출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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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명품 시장의 최대 소비국 중 하나인 중국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명품 브랜드들이 악성 재고 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이에 발렌시아가, 지방시 등 일부 명품 브랜드는 공개 할인에 나서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최대 50% 할인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명품 시장의 성장세 둔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글로벌 명품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中 시장 소비 위축, 명품 브랜드 판매량 감소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일부 명품 브랜드가 중국의 대표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Tmall)’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가격 할인에 나섰다”며 “소비 감소로 인한 재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티몰에서는 발렌시아가의 대표 상품인 아워글라스 핸드백이 1,947달러(약 268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브랜드의 공식 웹사이트와 주요 럭셔리 플랫폼과 비교해 35% 할인된 가격으로 발렌시아가는 올해 들어 3개월째 40% 수준의 할인을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들은 중국 시장에 의존해 매출 증대와 실적 개선을 이뤄왔지만 최근 중국 중산층의 소비 수요가 위축되면서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이에 발렌시아가 외에도 베르사체, 지방시, 버버리 등도 티몰을 비롯한 중국 내 쇼핑 플랫폼에서 판매가격을 절반 이상 인하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할인 폭이 10%p 이상 커지고 할인 기간도 길어졌다. 할인 제품 수도 지난해에는 몇 개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수백 개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은 “일반적으로 명품 브랜드는 자사 아울렛이나 비공개 세일을 통해 재고를 소진해 왔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이런 공개 할인 행사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며 “그만큼 명품 브랜드가 판매 부진으로 곤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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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팩토리 스토어’와 현대백화점 ‘오프웍스’/사진=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韓, 중고 거래·아울렛 등 명품 소비 패턴 변화

한국에서는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명품 중고 거래가 주요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국내 대표 중고 명품 플랫폼인 ‘구구스’의 거래액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구구스의 1분기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한 624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다. 브랜드별로 롤렉스의 판매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1% 늘었고, 에르메스는 21%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의류가 24%, 주얼리가 38% 성장했다.

할인점이나 아울렛을 찾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대형 백화점을 중심으로 ‘오프 프라이스(Off-Price)’ 매장이 확대되고 있다. 오프 프라이스 매장은 미국에서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유통 채널의 한 형태로 기업이 브랜드의 재고 상품을 직접 사들인 후 최초 판매가의 최대 80%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들어 ‘팩토리 스토어’ 매장을 늘렸으며 현대백화점도 자사의 오프 프라이스 매장 ‘오프 웍스’를 확장하고 있다.

오프 프라이스 매장과 백화점의 중간 형태인 아울렛은 오프 프라이스 매장보다 할인율은 낮지만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명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서울 근교에 위치한 교외형 아울렛은 주말 가족 나들이로 즐길 수 있어 많은 소비자가 찾고 있다. 지난해 전국 33개 아울렛의 매출은 8조6,604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같은 기간 70개 백화점의 매출 증가율 1.7%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보복소비 트렌드 끝나, 명품시장 성장세 둔화

사실 명품업계는 팬데믹 기간 중 기대 이상 선전을 하며 호황을 누렸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 활동으로부터 격리돼 집에만 머물면서 여가 비용 등을 고가의 명품, 가전·가구를 구입하는 데 썼기 때문이다. 여기에 2020~2022년 기간 중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기조와 이로 인한 시장의 유동성 공급으로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경제 대국 소비자들의 보복소비가 호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보복소비 트렌드는 엔데믹이 시작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글로벌 명품 시장의 2023년도 매출은 3,620억 유로(약 536조원)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2021년과 2022년 성장률이 각각 전년 대비 31.8%, 20.3%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둔화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명품 시장에도 저성장 기조가 확산하면서 소비 시장 역시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까지 글로벌 명품 시장의 성장세를 견인했던 중국의 소비 시장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경제 성장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기업의 연쇄 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기업의 부진으로 청년 실업률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품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던 2030세대의 소비력마저 감소하면서 광군제 매출 수치도 2년 연속 줄어들었다. 여기에 맥킨지 등 여러 기관들이 중국의 소비자 지출 증가율이 더욱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글로벌 명품 업계의 위기감이 본격화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