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사피온 합병 기습 발표, SKT 국내 AI 반도체 사업 철수 준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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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비율 합병 띄운 리벨리온-사피온, 합병 법인 최대 주주는 SKT 전망
재정 악화에 SK온 살리기 나선 SK그룹, AI 반도체 사업은 철수?
합병 걸림돌 여전, 통합법인 출범 후 AI 칩 공급망 재편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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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이하 사피온)이 갑작스러운 합병 추진 소식을 들고 나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AI 반도체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하겠다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리벨리온-사피온 2:1 합병비율 초안 발표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주주간담회에서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2:1의 합병비율 초안을 발표했다. 이는 최근 투자 라운드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를 기반으로 산출한 잠정 결과다. 리벨리온은 올 초 시리즈 B 투자 유치 당시 기업가치로 약 8,000억원을 평가받았다. 이미 발행됐거나 발행 예정 스톡옵션을 포함한 기업가치는 약 1조원가량이다. 사피온은 지난해 투자 유치 때 기업가치 약 4,000억원을 인정받았다. 스톡옵션까지 포함한 기업가치는 최대 5,000억원이다. 이 같은 기업가치를 기반으로 리벨리온과 사피온 간 합병 비율은 대략 2:1 수준에서 미세 조정이 있을 거란 게 중론이다.

해당 합병비율 초안을 따를 경우 합병 법인의 최대 주주는 SK텔레콤이 될 전망이다. 앞서 KT는 리벨리온에, SK텔레콤은 사피온에 직접 투자한 바 있다. 현재 SK텔레콤은 사피온의 지분 62.5%를 보유해 최대 주주에, KT는 리벨리온의 지분 약 13%를 보유해 2대 주주에 자리하고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합병 법인의 최대 주주와 사피온의 최대 주주로서의 역할은 그 성격이 다르다. VC(벤처캐피탈)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최대 주주에 오르는 경우와 최대 주주로서 회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건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사피온 경영진들이 투자금을 원활히 유치하지 못하면서 최대 주주인 SK텔레콤은 별수 없이 회사에 자금을 지급해 왔다”며 “반면 리벨리온 경영진들은 비교적 외부 자금을 잘 조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누적 투자금은 각각 2,800억원, 600억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합병 이후 SK텔레콤 입장에선 최대 주주에 올라도 자금 지원 부담이 덜한 구조를 확보한 셈이다.

SKT AI 반도체 사업 정리 수순?

다만 이와 별개로 시장에선 이번 합병 결정이 지나치게 기습적으로 진행됐단 지적이 나온다. 실제 양사 간 합병은 리벨리온 기존 투자자들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가 먼저 나올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피온 측은 지난 4월 최대 2,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시리즈 B)에 나설 당시부터 인수합병 등 투트랙 전략을 검토해 왔다. 리벨리온과의 합병 가능성 자체는 이 시기부터 언급돼 왔지만, 6월 합병 협의가 시작된 건 예상보다 너무 빠르단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SK그룹이 내부적으로 국내 AI 반도체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국내 AI 반도체 산업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글로벌 빅테크와 AI 반도체를 선도하는 엔비디아 등 기업들에 비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AI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지속적인 자금 동원이 필수적인데, 재정 악화 상황에서 SK온 살리기에 여력을 집중하고 있는 SK그룹 입장에서 이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기술특례상장이 엄격해진 상황에서 AI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미진하다 보니 사업성이 높지 않다 판단했을 가능성도 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리벨리온은 160억원, 사피온은 25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두 기업은 향후에도 차세대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확실치 않은 미래 수익만 기대하기엔 SK텔레콤 측에서 위험요소가 크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국내 AI 반도체 기업의 성장 폭도 제한적이라고 봤을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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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법인 출범까지 ‘첩첩산중’

문제는 통합법인 출범 및 PMI(합병 후 통합) 등 과정이 순탄치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단 점이다. 우선 리벨리온 상장 추진 일정이 크게 밀려 부담이 늘었다. 사피온은 미국 법인인 만큼 현지 규제 등에 따라 합병 작업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리벨리온이 상장 주관사 선정 절차를 그대로 진행한다 해도 합병 법인이 상장을 추진할지, 리벨리온 상장 주관사 지위가 합병 법인에도 승계될지 등에 대해 정해진 게 현시점엔 없다. PMI에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양사 합병 이후 남을 주요 주주가 통신업계 주요 숙적으로 꼽히는 KT와 SK텔레콤이란 점도 문제다. 이렇다 보니 향후 사내이사 등 이사회 구성을 두고 두 진영 간 파벌 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 섞인 관측이 업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다.

AI 칩 공급망 재편 역시 어려움이 크다. 사피온과 리벨리온이 구축해 온 칩 공급망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리벨리온은 삼성전자와 협업하며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기반으로 차세대 칩을 개발해 온 반면, 사피온은 SK하이닉스 HBM을 기반으로 AI 반도체를 준비해 왔다. 기반 시스템 자체가 다르단 의미다.

더군다나 파운드리는 칩 개발 단계부터 고객사 팹리스(반도체 설계) 맞춤형으로 공정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한다. 이때 팹리스는 AI 반도체 설계도를 파운드리에 넘기는데, SK하이닉스 HBM을 기반으로 한 AI 반도체 제조를 삼성 파운드리에서 맡을 가능성은 낮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 관계를 고려하면 양사의 통합법인이 ‘고래 사이 새우’로 전락할 여지가 있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