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NA EUV로 차세대 경쟁력 갖추자” ASML, 삼성전자와 R&D 협력 위해 한국 상륙
동탄2신도시에 R&D 지원 시설 신설하는 ASML
'하이NA EUV' 중심으로 협력 관계 구축 예정
삼성전자, 2nm 이하 최첨단 공정 경쟁력 강화 기대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 한국에 연구개발(R&D) 시설을 건립,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본격화한다. 삼성전자는 차후 ASML과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부문 협력을 강화하며 본격적으로 2nm(나노미터) 미만 첨단 파운드리 공정 경쟁력을 갖춰나갈 예정이다.
ASML, 화성시에 1조원 투자
경기도 화성시는 4일 ASML이 차세대 극자외선 노광장비(High NA EUV, 이하 하이NA EUV)를 활용한 삼성전자의 초미세 반도체 제조 공정 R&D 지원 시설을 동탄2신도시 내에 건립한다고 밝혔다. ASML은 1조원을 들여 반도체 장비 부품 제조 센터와 엔지니어 트레이닝 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을 계기로 양사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따른 조치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방한 중인 프랭크 헤임스케르크 ASML 대외총괄부사장과 4일 화성시청에서 간담회를 갖고 “1조원이 투입되는 ‘ASML-삼성전자 연구지원시설’ 건립 부지로 화성시를 선택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면서 “화성에서 추진하는 ASML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각종 인허가부터 밀착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헤임스케르크 부사장은 “화성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ASML 화성 뉴 캠퍼스’ 조성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감사드린다”며 “삼성전자는 ASML의 중요 고객사인 만큼 이번 연구 지원 시설 건립을 통해 양사 간의 기술 동맹을 돈독히 하겠다”고 답했다.
EUV 협력으로 ‘2나노 경쟁력’ 갖춘다
삼성전자는 이번 기술 동맹을 통해 ASML과 EUV 장비 협력을 강화, 첨단 반도체 시장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EUV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미세 회로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로, 한 대당 가격만 4,000억원~6,000억원에 달하며 1년에 만들 수 있는 수가 40대 내외로 제한돼 있다. EUV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이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도 통하는 이유다.
그간 삼성전자는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 밀려 EUV 장비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외신에 따르면 TSMC가 현재 보유한 EUV 장비는 100대에 달하며, 내년까지 65대를 추가로 구매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EUV 장비가 40~50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ASML의 협력을 계기로 이 같은 경쟁 구도가 뒤집힐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삼성전자가 ASML의 하이NA EUV 장비에 대한 기술적 우선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TSMC, 미국 인텔 등과 2나노 공정 기술 선점을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증권사 UBS의 보고서에 따르면 TSMC는 내년 설비 투자에 들이는 금액을 370억 달러(약 51조3,000억원)까지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2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 도입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2025년에 2나노 미세 공정을, 인텔은 18A(1.8나노급) 공정을 각각 도입하며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이NA EUV는 2나노 이하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의 필수재로 꼽힌다”며 “삼성전자가 ASML과의 협력을 통해 유의미한 연구 성과를 낼 경우, 2나노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첨단 공정 수율 개선 가능성
이런 가운데 하이NA EUV와 관련한 삼성과 ASML 간 연구가 원활히 진척될 경우, 삼성전자의 3나노 등 초미세 공정 수율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는 초미세 공정에서 TSMC가 60~70%, 삼성전자가 40%를 밑도는 수준의 수율을 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앞서 삼성전자는 수율 격차를 좁히기 위해 업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초미세 반도체 공정기술의 일종) 기술을 도입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수율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업체의 공정 기술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첨단 EUV 장비를 투입한다고 바로 수율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체 공정을 통해 장비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제대로 된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ASML과 삼성은 이번 R&D 센터 신설을 통해 하이NA EUV를 위한 공정 기술을 공동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가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차후 분명한 수율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경계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사장)은 지난해 12월 ASML과의 MOU 체결 이후 “이번 협약은 경기도 동탄에 공동 연구소를 짓고 하이NA EUV를 들여와 ASML 엔지니어와 삼성의 엔지니어들이 같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며 “장비를 빨리 들여온다는 관점보다는 공동 연구를 통해 삼성이 하이NA EUV를 더 잘 쓸 수 있는 협력 관계를 맺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ASML과의 기술 공동 개발을 통해 하이NA EUV 활용도를 끌어올리고, 본격적으로 첨단 공정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