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기름값 담합 혐의’ SK이노베이션,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5천만 달러에 합의, 최대 14조 규모 손해배상 집단소송에도 영향 미칠 듯
SK이노베이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가격 담합 분쟁 합의
캘리포니아 주민들과의 집단소송에 대한 부담 작용 가능성도
美 법조계 "SK이노 측 합의 중 유죄 인정 여부가 집단소송에도 영향 줄 것"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휘발유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된 SK에너지의 미국 자회사 SK에너지 아메리카가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약 700억원에 합의했다. 이는 미국에서 상품 거래업체가 시세 조작으로 법적 처분을 받은 가장 최근의 사례다.
SK이노베이션, 굳이 소송 들어갈 것 없다 판단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이날 휘발유 가격 담합 혐의를 받아 온 SK에너지 아메리카, 네덜란드 석유거래 업체 비톨(Vitol)과 5.000만 달러(약 692억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SK에너지 아메리카와 비톨은 2015년 캘리포니아 토런스 소재 엑손모빌 정유공장 폭발 사고 당시, 공급망 일시 붕괴에 따른 시장 혼란을 이용해 총 1,000만 갤런(3,785만 리터) 이상의 휘발유 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로 2020년 주정부에 의해 기소됐다. 당시 엑손모빌 정유공장은 캘리포니아주 전체 휘발유의 10% 이상을 공급해 왔는데, 캘리포니아 법무부는 SK에너지와 비톨이 엑손모빌 공장의 폭발 상황을 이용해 약 1억5,000만 달러(약 2,088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봤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법무부 장관이었던 하비에르 베세라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송을 제기하며 “SK에너지와 비톨이 캘리포니아의 독점 금지법을 위반하고 불공정 관행에 가담해 주 내 정유 가격을 올렸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유죄를 인정한 것이 아니고, 미국 소송 환경 등을 고려한 경영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소송은 한국 대비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소송이 이어지면 경영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그룹의 석유화학 사업부문 중간 지주회사로, SK에너지의 100% 모회사다.
미국 현지의 법률 전문가들도 “미국에서 기업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최대한 빨리 합의에 도달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유사한 사례로 벌금 처분을 받았던 일본이나 독일 기업들의 금액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양측이 사실관계를 법정에서 다투기보다 빠른 합의에 이른 것으로 평가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 집단소송까지 확대
일각에서는 같은 사건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과의 집단소송을 감안해 빠른 합의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소장을 제출한 2020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에너지위원회(CEC) 조사에서 휘발유값 인상으로 운전자들이 갤런(약 3.78리터) 당 평균 30센트(약 400원) 이상을 지급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유류세 등을 고려하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약 5년간 운전자들이 116억 달러(약 14조원)를 추가로 지불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같은 사건으로 주 정부와의 소송에 이어 운전자들의 집단소송으로까지 사건이 확대되자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도 이중 소송에 따른 부담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불공정 금지법인 카트라이트법(Cartwright act)과 주 경쟁법(State competition act)을 근거로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합의문에도 이번 5,000만 달러의 합의금 중 3,750만 달러를 카트라이트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 1,250만 달러를 주 경쟁법 위반에 대해 배정한다고 기록돼 있다. 주 정부와의 소송에서 주민 손해가 확인될 경우, 집단소송이 거액의 배상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주 정부와의 소송을 길게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집단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과 비톨 측은 지난 2022년 8월 재클린 스콧 콜리(Jacqueline Scott Corley)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판사와의 면담에서 원고의 소송 제기 자격을 문제 삼아 소송 무효화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SK에너지 아메리카 변호인인 존 플레이포스(John Playforth)는 소비자들이 SK와 비톨에서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상 요구가 ‘부당 이익 요구’라고 반박했으나, 캘리포니아 주민 측 변호인인 사만다 스타인은 소비자의 제품 구매 위치와 관계 없이 유가 정보 서비스(OPIS) 벤치마크를 조작한 것만으로 반경쟁적(Anti-competitve)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맞받았다.
미국 재판 전문 매거진 코트하우스 뉴스 서비스(Courthouse News Service)에 따르면, 본 집단소송은 현재도 진행 중으로 콜리 판사는 집단소송 요건 문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법조계 관계자들은 주 정부와의 합의가 SK이노베이션 측의 유죄 인정인지 여부와 범위가 집단소송의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합의문에 카트라이트법 위반 사항에 대한 합의금 3,750만 달러가 2015년 2월부터 11월까지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 거주민들 중 기름을 구매했던 사실이 있는 개인들에게 배포돼야 한다고 명시된 만큼, 집단소송에 대한 합의까지 포함됐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앞서 2018년 SK에너지는 주한미군에 유류 제품을 공급하다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미국 법무부와 벌금 및 배상금 1,400억원에 합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