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리밸런싱 마지막 단추, ‘두산로보-밥캣’, 합병 비율 논란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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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캐시카우 밥캣 '에너빌리티'에서 '로보틱스'로 이동
에너빌·밥캣 주주 반발 "합병 비율 조항 악용해 주주가치 훼손"
SK온 살리기에 방점, SK그룹의 SK이노-E&S 합병도 과제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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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였던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밑으로 옮긴 뒤 상장폐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논란에 휩싸였다.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두산밥캣이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것에 두산밥캣 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알짜 자회사를 내줘야 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역시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재편, ‘주가 기준 합병 비율’ 도마에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우선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법인과 신설법인(투자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분할비율 1대 0.24)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시키기로 했다. 사업법인은 그대로 두산에너빌리티에 남아 원래 하던 사업을 하고, 신설법인은 두산밥캣 지분 46%를 품고 두산로보틱스와 합쳐지는 구조다.

이번 재편에서 가장 핵심은 ‘두산에너빌리티 산하의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넘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 등이 보유한 두산밥캣의 나머지 지분 54%는 향후 두산로보틱스가 발행할 신주와 교환되며 밥캣은 오는 11월 상장폐지된다. 두산이 이처럼 여러 단계에 걸친 시나리오를 설계한 데는 각 기업의 다른 상황으로 인해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거래를 완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큰 요인은 실적이다. 한 쪽은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지만, 다른 쪽은 여전히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가능성만을 제시한 상태기 때문이다.

재편에 따라 결과적으로 두산밥캣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두산로보틱스 63주를 받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합병비율 적정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두산밥캣이 지난해 매출 9조8,000억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내며 사실상 그룹의 이익 대부분을 책임진 데 반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이 530억원에 불과한 데다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적자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개편안이 발표된 11일 기준 두 회사의 시가총액이 5조원대 초반으로 비슷했고 주당 기준가는 로보틱스가 8만114원, 밥캣이 5만612원이었던 만큼, 로보틱스 1주의 가치가 밥캣 0.63주의 가치와 비슷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양사의 시총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0.87배와 12.6배로 격차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순자산이 아닌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다 보니, 몸값이 저평가된 밥캣의 주주들은 로보틱스 주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9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총회가 분수령

물론 이번 두산의 합병 비율 산정은 적법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현재 주권상장법인의 합병 시 합병비율 산정을 위한 합병가액은 자본시장법 상의 상장회사 합병가액 결정 방식에 의거한다. 합병을 위한 이사회 결의일과 합병계약을 체결한 날 중 앞서는 날의 전일을 기산일로 한 다음 △최근 1개월간 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최근일의 종가를 산술평균한 가액을 기준으로 30%(계열회사 간 합병의 경우 10%)의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하는 식이다.

다만 주주들은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른 상장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두산그룹이 악용했다는 입장이다. 주가는 고평가·저평가를 반복하는데, 존속회사의 기업가치가 높은 시점에 합병을 결정함으로써 소멸회사 주주 이익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포럼)도 12일 논평을 통해 이번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으로 두산밥캣의 일반주주들이 날벼락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결국 이번 사태의 원인이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하며 “이런 방식은 오로지 한국에만 있다”고 꼬집었다.

그간 합병 사례 대부분이 계열사 간 합병인 국내 자본시장에서 사실상 계열사의 의사결정권을 지닌 지배주주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과 주식교환이 이뤄지면서 일반주주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 역시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포럼은 두산이 이번 재편을 통해 밸류업에 찬물을 끼얹었고, 법과 제도가 이를 방조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두산그룹 입장에서도 쉽게 물러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2020년 당시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가면서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 두산솔루스, 두산건설, 모트롤 등 계열사를 순차적으로 매각하며 사업을 재편했다. 그러던 두산이 올해 들어 두 번째 회사채 발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체질 개선에 성공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현금흐름이 좋은 시점에서 선제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두산밥캣은 구조조정 당시에도 매각하지 않고 핵심 계열사로 키우려고 했던 회사인 데다 지금은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두산이 이번 재편을 두고 계열사의 밸류업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현금 흐름 개선 등 재무적인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재편 성공 시 두산밥캣에 대한 그룹사의 실질 지배력이 13.8%에서 42%로 확대되면서 배당 수익 등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업계는 오는 9월 25일로 예정된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주총회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개편안에 반대하는 주주는 9월 10일부터 24일까지 반대의견을 접수할 수 있으며 오는 29일까지 주식을 갖고 있어야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 막힐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규모는 밥캣 1조5,000억원, 에너빌리티 6,000억원, 로보틱스 5,000억원이다. 각 사 주주들이 주식매청구권을 해당 규모 이상 행사하면 분할·합병 계획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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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결의 앞둔 SK이노베이션-SK E&S도 잡음

두산의 이 같은 흐름은 최근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SK그룹에서도 포착된다. SK그룹 역시 오는 17일 이사회를 열고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결의를 앞두고 있어서다. SK그룹은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해 에너지 사업 시너지는 물론,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자금난 해소를 노리고 있다. SK그룹의 캐시카우로 손꼽히는 SK E&S는 지난해 매출(11조1,672억원), 영업이익 1조3,317억원으로, SK이노베이션(매출 77조2,885억원, 1조9,039억원)보다 수익성 면에서 뛰어난 만큼 합병 시 SK E&S의 자금력으로 2021년 출범 이후 10개 분기 연속 적자인 SK온에 수혈할 여력이 생긴다. SK온은 지난해 영업손실액만 5,818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SK의 경우 두산과 달리 셈법이 더 복잡해질 공산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장법인인 SK이노베이션은 기준시가로 합병가액을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기준시가가 자산가치에 못 미치면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택할 수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의 최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약 0.5로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상태기 때문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자본총계는 30조원이 넘어가지만, 시가총액은 최근 10조원 초반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자산가치가 아닌 기준시가로 합병가액을 정할 경우 지주사인 SK㈜의 통합법인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된다. 이는 주주들 입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불공정 합병’을 주장하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문제는 주주들의 반대가 합병의 주된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는 사실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모두 SK㈜가 각각 지분 36.22%, 90%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각 사 주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한 비상장사인 SK E&S는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설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KKR은 2021년부터 두 번에 걸쳐 3조원이 넘는 자금을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통해 SK E&S에 투자했다.

비상장 회사의 경우 자본시장법 176조의5에 의거해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한 가액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한다. 자산가치를 1, 수익가치를 1.5로 두고 가중평균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SK E&S는 RCPS로 인해 순자산에 3조원을 더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더욱 높게 책정받게 된다. 아직 산정방식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SK㈜ 등 SK E&S의 주주들이 RCPS를 자본으로 반영하지 않을 때 보 다 더 많은 합병신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점은 확실하다. 반대로 SK이노베이션의 기존 주주들은 SK이노베이션 지분이 그만큼 희석될 수 있다. 다만 RCPS는 만기 때 투자금 상환이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인 만큼, 만약 KKR을 설득하지 못하고 합병을 강행하면 오는 2026년 KKR이 원금 등 3조3,000여억원에 대한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부채 부담을 줄이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합병 의미가 퇴색하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