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VC들의 무능이 낳은 벤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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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창업 급감, 이유는 VC들이 초기 기업 투자를 할 줄 몰라서
VC들이 '테마주 단톡방' 수준으로 투자한다는 맹비난 대다수
기술 평가 역량 갖춘 해외 VC들 찾아갈 수 있는 인력 아니면 벤처하지 말아야 한단 분위기 팽배
능력 부족한 인력들 모인 VC업계에 대규모 모태펀드 투입된 것이 근본적 원인이란 지적도

“VC들 수준이 테마주 단톡방 같아요”

지난 2019년 IT 스타트업에 투자하다 바이오 투자로 갈아탔다는 모 금융지주 산하 벤처투자사(VC) 상무대우 A씨를 만났던 IT 스타트업 대표 B씨의 불만이다. B씨는 당시 투자라운드를 돌며 만났던 20개 남짓의 VC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기술적 이해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AI 전문가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며 기가 찼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듣고 A씨를 만나 B씨와의 미팅에 대한 질문을 하니 “모르는 이야기만 하더라”며 “어디서 인증받은 이야기를 해줘야 우리도 알아먹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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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들 수준이 테마주 단톡방 같아요”

스타트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는 투자를 받는 공식이 있다. 언론사들에 인터뷰 기사를 적게는 2-3개, 많게는 5개 이상 뿌리고, 해외 기관이나 국내 대기업과의 기술 제휴, 기술 개발 제휴, 매출 협약 등을 진행 중이라는 기사도 몇 차례 뿌린 다음, 해외의 유명 스타트업 대상 행사에 참석했던 사실이나 외국인이 관심을 보인 사실을 기사화해서 뿌려야 VC들이 투자를 진행한다는 공식이다.

누적 투자금이 쌓이고, ‘VC들의 수준’을 인지하게 된 노련한 스타트업 대표들이라면 위의 과정을 통해 VC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익숙할 수 있지만, 창업 초기 투자금 없이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에게는 언감생심 같은 이야기다. B대표도 이같은 공식에 관해 듣고는 “그건 사기 아닌가요?”라는 반문을 먼저 제기했다.

실제로 토스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형 스타트업들의 공통점은 해외에서 기술력, 영업력에 대한 믿음으로 투자가 진행된 곳들이지, 국내에서 ‘단톡방 수준’인 VC들을 설득한 사례는 희귀하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는 한국 VC들을 피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것으로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토스의 LG유플러스 PG결제 모듈 사업부분 인수전에 함께 뛰어들었던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이 대표의 당시 발언을 언급하면서 “S대 출신, 해외 유학파 출신 대표들 사이에서 한국 VC들의 무능력에 대한 불만을 넘어 확신이 팽배하다”고 짚기도 했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한국 VC들이 전문성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눈치’ 혹은 ‘소문’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전형적인 비전문가의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모 금융지주 산하 VC의 A상무도 학부 전공은 CPU(중앙처리장치) 설계 관련 공학이었고, 대전 K대학에서 직장인 대상 MBA 과정을 거친 것이 전문성의 전부다. IT 기업들의 AI 혁신을 위한 수학적, 통계학적 역량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눈치로 투자했던 일부 스타트업들의 가치가 뛰면서 상무대우로 승진했고, 이어 시장의 ‘테마’가 바이오 주식들로 옮겨가자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산업군을 바꾼 것이다.

증권사 리서치 팀 수준도 안 되는 VC들이 망친 벤처업계

전직 IB(투자은행) 출신의 모 스타트업 대표 C씨의 불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소 투자 전문 훈련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평가 기준을 증권사 리서치 팀에 맞춘다는 C씨는 “회사 돈으로 투자하는 VC가 투자 안 하고 보고서만 쓰는 리서치 수준보다 낮으면 그 투자의 신뢰도는 어디서 검증 받을 수 있나?”는 반문을 내놓는다.

실제로 증권업계 리서치 경력직들 사이에서도 소문 듣고 술 자리나 돌아다니는 VC들이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고, 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투자를 집행할 수 있도록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막대한 금액의 모태펀드가 조성된 것에 대한 비난이 오랜 기간 공유됐다. 외국계 증권사를 거쳐 국내 증권가 리서치로 옮긴 뒤 올해의 스타 애널리스트 상을 받은 적이 있는 D씨도 “담당 섹터(산업군)를 바꾸게 되면 공부해서 보고서 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시장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데 1~2년씩 걸리는 경우가 흔한데, VC의 경우 담당 섹터를 바꾼 그 다음날부터 바이오 섹터 전문 VC가 되는 걸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답했다.

최근 벤처 기업을 도전하는 청년들이 급감한 것도 VC들이 기업 역량을 판단하지 못하는 탓에 초기 투자 대신 후기 투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 분들은 ‘몰라서 미안한데’나 ‘몰라서 투자할 수가 없어요’라는 표현을 대놓고 쓰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10억, 100억의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권한을 내준 시장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던 B대표도 “대기업도 인력 잘못 뽑으면 팀이 망하고 결국 해체되지 않느냐”며 “VC업계도 기준 이하 인력들이 흘러들어왔다가 호황기에 운 좋게 돈 좀 벌었다는 이유로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사라졌고, 시장도 망가진 상황”이라고 따가운 비판을 내놨다. 이어 기술력은 전무하지만 그런 VC들을 ‘역이용’하려고 돈으로 ‘해외 인증’을 받은 몇몇 스타트업 대표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사건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C대표 역시 “열정과 꿈으로 창업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이 ‘무능’한 VC들을 설득하려고 해외 기관에 막대한 홍보성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것부터가 이미 왜곡된 관행”이라며 “VC의 역량 부족이 투자 실패, 위축과 더불어 벤처업계 겨울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벤처 겨울 해법은 VC 시장에 고급 인력 수혈부터

B대표와 C대표는 초기 투자일수록 한국에서 투자를 받는 것이 아닌, 해외에서 기술을 볼 줄 아는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는 앞서 지적한 대로 언론사들에 홍보비를 주면서 기사를 뿌리고, 유명 언론사 기사일수록 VC들의 시선을 끄는 수준에서 조잡한 검증이 이뤄지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만들어 내는 상품의 기술적 역량, 시장 침투 가능성, 투자 포트폴리오 내의 다른 기업과 연계 가능성 등을 철저하게 고려해서 투자가 이뤄지는 만큼, 훨씬 더 고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어 해외 투자를 받고 나면 해외 VC들이 높은 기업가치로 연이어 글로벌 투자자를 연결해 주기 때문에, 한국의 무능한 VC들을 피할 수 있다는 따가운 비판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밸류업 정책을 내놔도 이미 개인투자자 상당수가 ‘서학개미’로 돌아선 이유 역시 기술력도 없으면서 주가 부양을 위해 뿌리던 국내 기업들의 거짓 홍보에 지쳤기 때문인 만큼, 같은 수준으로 스타트업 대표들의 시간만 뺏는 국내 VC들에게 시간을 뺏길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VC업계가 사업 초기의 기술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학 전공이기만 하면 기술을 볼 줄 알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력을 채용했던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기술의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인력들에게 투자 결정을 맡겨 놓은 탓에 ‘테마주 단톡방’처럼 소문 듣고 주식을 사고팔던 80년대 여의도 객장 수준으로 국내 VC업계가 운영됐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기술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전문 VC들에게 모태펀드가 집중되는 건전한 시장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청년들이 앞다퉈 벤처 사업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