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重 이어 한화오션도 미국 MRO 자격 획득, 20조원 시장 노린다
MRO에 뛰어든 한화오션, 북미 시장 교두보 마련
전체 군함 수주 예산 절반 이상 차지하는 MRO 사업
글로벌 MRO 시장 2029년 88조원 규모 확대 전망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에 이어 미 해군 함정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유지보수) 사업에 본격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MRO는 국방 무기체계 가동과 성능 유지를 위한 필수 산업으로 방산 업계 입장에선 중요 먹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특수선 분야 라이벌인 양사가 국제적으로 함정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연 20조원 규모 미국 MRO 시장 진출도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화오션, 미국과 MSRA 체결
22일 한화오션은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MSRA(Master Ship Repair Agreement·함정정비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MSRA는 미 함정의 유지보수와 정비를 위한 미국 정부와 일반 조선업체 간의 협약으로, 미 해군 함정 정비에 관한 품질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인증이다. 미 해군의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 MSRA를 획득한 기업은 미 해군의 다양한 함정 정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이번 협약으로 한화오션은 향후 5년간 미국 해군이 규정한 함정에 대한 MRO 사업 입찰에 공식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한화오션이 보유한 함정 기술력과 정비 역량을 세계적 시장에서 입증한 것으로, 미 해군과의 협력 강화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는 주요 성과가 될 전망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인수한 미국의 필리(Philly) 조선소를 미국 함정시장 진출과 함정 MRO 수행을 위한 사업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여기에 이번 MSRA 획득으로 세계 최대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확고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는 평가다. 주목할 만한 점은 통상적으로 1년 이상 걸리던 MSRA 인증에 필요한 기간을 7개월로 단축했다는 점이다. 한화오션은 올해 1월 MSRA를 신청했고, 지난 4월 말 거제사업장 실사를 거쳐 최근 최종적으로 협약 체결에 성공했다.
현대HD重, 일본 기업도 MRO 시장 참전
미국 함정 MRO 자격을 획득한 기업은 한화오션 만이 아니다. 앞서 HD현대중공업도 이달 초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MSRA를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MRO 시장을 넘어 이미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과 남미 등 권역별 MRO 시장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미 해군 함정 MRO의 성공적 수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미국 군 당국의 신뢰를 구축, 향후 미 정부가 발주하는 △함정 △특수목적선 △관공선 등 신조(新造) 사업으로도 외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HD현대는 최근 판교 글로벌R&D센터에 ‘함정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함정기술연구소는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의 함정기술센터를 확대 개편한 조직으로, HD한국조선해양 내 미래기술연구원의 산하에 있다.
일본도 미국 MRO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미쓰비시조선, 가와사키중공업 등 일본 조선업계는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보다 먼저 미국에서 군함의 MRO 업무를 확보한 바 있다. 미 행정부가 의회와 협의해 90일 이하의 유지 보수의 경우 일본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승인하면서다.
정상회담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의 군함 및 항공기를 일본의 상업용 시설에서 공동 유지하는 사례를 명시하기도 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사실상 무기 수출을 금지해 왔지만 아베 신조 정권 당시 살상 무기를 제외한 방위 장비 수출을 일부 허용한 이후, 일본 방위성의 주도로 본격적인 수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함정 MRO 시장, 5년 후 88조원 규모로 성장
한국과 일본 조선업계가 미국 함정 MRO 시장에 주목하는 데는 미국 단일 시장의 압도적인 규모가 자리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은 올해 577억6,000만 달러(약 80조2,000억원)에서 2029년 636억2,000만 달러(약 88조3,400억원)에 도달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중국 해군과의 경쟁에서 위협을 느끼고 있는 미국 MRO 시장은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실제로 80조원 규모의 시장에서 미국 해군 함정 MRO 시장의 규모만 연간 20조원으로 세계 시장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중국 해군이 군함을 빠른 속도로 늘리면서 군사력을 끌어올리는 상황인데, 미국 조선·방산 업체들은 중국에 비해 생산 속도나 비용 측면에서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법(Jones Act)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내에서 건조된 선박만으로 상품 운반이 가능하지만, 중국과 군사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동맹국에 문호를 여는 방향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MRO 물량의 일부를 해외에서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지자, 국내 기업들은 물론 해외 기업들까지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미국 법령은 타 국가에 전진 배치된 함대에 대해서는 MRO를 모항이나 작전지역 인근 함정정비협약을 체결한 조선소에 맡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는 첨단 기술력을 무기로 방산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방산산업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분석한다. 토머스-듀렐 영(Thomas-Durell Young) 전 미국 해군대학원 유럽 민군관계센터(CCMR) 프로그램 매니저는 “30여 년 전 (냉전이 끝나면서) 서방 국가의 (무기) 과잉 생산능력 유지를 위한 재정 지원이 중단되고, 무기 수요도 크게 감소했다”며 “이러한 상황은 2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바뀌었지만(무기 수요가 늘었지만), 서방 국가들은 무기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산 정책 변경에 소극적이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 결과 판매자와 구매자 간 관계가 뒤집어졌고, 판매자가 가격과 판매 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위치에 서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밖에 최근 방산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재래식 무기가 아니라 신기술을 사용한 새로운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이 비전통적 무기 업체들에도 열렸다는 것”이라며 “드론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