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정부 지원 미비로 생존의 기로에 선 헬스케어업계, 최대 주주 변경 사례도 잦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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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주주 변경 공시한 헬스케어 업체 29곳, 전체 중 23%가량
규제 당국 승인 못 받는 업체들, 건강보험 급여화 실패에 발목 잡히기도
정부의 모호한 평가 기준도 문제, "사실상 정부가 혁신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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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주주가 손바뀜하거나 최대 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는 헬스케어 기업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경영난을 겪다가 보유 주식을 무상감자·매각하고 대표직을 내려놓는 사례가 잦아진 것이다.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신기술·신제품이 제때 출시되지 못하고 있단 점도 문제다. 사실상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단 의미다.

최대 주주 손바뀜 잦은 헬스케어업계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최대 주주 변경을 공시한 기업 수는 126곳에 달했다. 이 중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등 헬스케어 기업(화장품업종 제외)은 29곳, 비율로는 23%로 집계됐다. 중장기 사업을 뒷받침할 만한 수익원(캐시카우)을 마련하지 못한 탓에 자금 리스크를 그대로 덮어쓴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헬릭스미스다. 헬릭스미스는 창업주 김선영 교수가 1996년 서울대학교 학내 벤처 1호로 출범한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연구전문기업으로, 지난 2005년 코스닥 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임상시험 실패 및 연구개발 자금 조달 문제가 잇따르며 경영난이 발생했고, 결국 2022년 12월 카나리오바이오엠을 최대 주주로 맞이한 뒤 지난해 바이오솔루션으로 또다시 최대 주주를 변경했다.

지난 2018년 기술성 특례로 상장된 파멥신도 지난 23일 최대 주주가 타이어뱅크에서 김정규 대표로 바뀌었다. 2016년 당시 파멥신의 최대 주주는 글로벌 바이오벤처 투자사 오비메드의 카두세스 아시아(보통주 지분율 11.95%)였고 주요 주주는 노바티스바이오벤처스(10.45%), 창업자 유진산 전 대표(9.94%) 등이었으나, 현재 이들은 모두 빠진 상태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의 가치이자 정체성이기도 한 창업자가 경영권을 넘기고 사업을 내려놓는다는 건 현실에 한계를 느껴 탈출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임플란트 전문 업체 솔고바이오메디칼 역시 최근 최대 주주가 변경됐다. 최초 김서곤 솔고바이오메디칼 창업자가 최대 주주였다가 지난 2021년 김일 전 대표로, 지난 6월 말 주식회사 MDS테크로 최대 주주가 바뀌었다. 이 시기 1주당 액면금액 500원인 보통주 10주를 보통주 1주로 무상 병합하는 방식의 감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의료기기 업체 경영난 두드러져

최근에는 디지털 치료제(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의 최대 주주 변경 양상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라이프시맨틱스는 오는 9월 4일 최대 주주가 송승재 대표이사에서 우주항공용소재 전문기업인 스피어코리아로 변경될 예정이다.

당초 라이프시맨틱스는 지난 2021년 3월 사업모델 특례상장을 통해 디지털 치료제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 입성에 성공할 정도로 유망한 기업이었다. 상장 당시 라이프시맨틱스는 디지털 치료제들을 ‘레드필’ 브랜드로 개발, 임상시험을 추진했고, 이후 ‘레드필 숨튼’이란 이름의 세계 최초의 호흡 재활 디지털 치료제로 한국 및 미국 인허가를 노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임상시험에 실패하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라이프시맨틱스의 최대 주주가 손바뀜하게 된 배경이다.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고도 실패한 헬스케어 업체들도 있다. 페어테라퓨틱스는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디지털 치료제로서 최초로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했지만 결국 파산했다. 베터 테라퓨틱스도 세계 첫 2형 당뇨병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해 FDA 승인을 받았지만, 지난 4월부터 청산 수순을 밟고 있다. 두 기업 모두 미국 공보험 메디케어 급여화에 실패한 점이 패인으로 평가된다.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못한 탓에 치료제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단 의미다.

닥터나우, 굿닥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도 빛을 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받았던 ‘한시적 허용’ 수혜가 박탈되면서 초진의 경우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하도록 변경된 탓이다. 규정 전환 이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재진 중심으로 운영해선 플랫폼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실제 원격의료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99%는 초진 환자다. 

의대 정원 증원이 이슈화하면서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자 의료기기 업체들도 경영난에 빠졌다.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기기 업체의 매출이 30%가량 감소했다. 병원의 외래수술 자체가 축소하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납품 대금 지급 시기가 연장되는 등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대금 지급 기한 연장을 요청해 오는 곳이 많은 상황”이라며 “여신 기간이 길어질 경우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최대한 거절하고 있지만, 여건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료 대란이 길어지면서 의료기기 기업들이 도산 직전에 몰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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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료제 ‘솜즈’/사진=에임메드

늑장 대응 일삼는 정부, 지원체계 마련도 더뎌

이처럼 헬스케어 산업계 전반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보니, 시장에선 정부 차원의 지원체계 마련이 더딘 게 근본적인 원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적 생태계라는 ‘뿌리’가 없는 탓에 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단 것이다.

실제 정부의 모호한 평가 기준에 헬스케어 업체가 피해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 앞서 지난해 헬스케어 업체 참케어는 세계 최초로 손목 커프형 24시간 혈압감시기 개발에 성공했다. 커프와 측정기를 일체화한 기술을 통해 팔뚝에 커프를, 허리춤에 측정기를 달고 다녀야 했던 기존의 24시간 혈압감시기의 불편을 해소한 것이다. 참케어는 해당 제품을 통해 2023년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CES)에서 혁신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9월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내 판매 허가도 받았다.

참케어의 발목을 잡은 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었다. 심평원은 팔이 아니라 손목에서 혈압을 재는 건 ‘기존 보험 적용 기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참케어는 지난해 12월 이의 신청을 냈다. 손목형 혈압계는 국내외에서 20년 전부터 권장되던 혈압 측정 방법이라는 게 참케어 측의 주장이었지만, 심평원은 이후 6개월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동화 참케어 대표는 “현재 우리와 비슷한 제품을 개발 중인 중국과 일본 업체들이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다”며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한 우리가 출시가 늦어 ‘선점효과’를 빼앗길 판”이라고 지적했다.

루트로닉의 ‘알젠’도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황반변성 치료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나 임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 FDA와 유럽에서 판매 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세계 최초 타이틀은 호주 업체에 빼앗기고 말았다. 국내 첫 디지털 치료제인 에임메드의 ‘솜즈’ 역시 혁신의료기술 평가로 인해 출시가 늦어졌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솜즈에 이중 임상을 요구하면서 심사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솜즈가 실제 시장에 출시된 건 식약처 허가를 받은 지 11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실상 정부의 늑장 대응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기술 특례 제도의 허점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통상 기술 특례 제도를 통해 혁신 기술을 인정받은 기업은 기술을 개발해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한다. 문제는 제도가 요구하는 성과의 기준이 지나치게 ‘단기 성과’에만 치중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 기술 특례 기업은 현행 제도상 5년 이내에 재무 성과를 내야 한다. 결국 혁신과는 별개로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별도로 모색해야 하는 게 기술 특례 기업의 현실이라고 현장 관계자는 전했다. 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제도를 개선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위한 정부 차원의 현장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