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심화하는 구직난에 ‘인턴 알선업체’ 성행, 돈 주고 무급으로 일하는 기현상 발생
중개업체에 알선비 주는 '유료 인턴십' 확산
업종·도시·시기 등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
글로벌 기업, 국제기구 등 알선비 4배 높아
심화하는 구직난에 중국 청년들이 1,000만원에 달하는 거액을 내고 인턴십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대졸자가 1,200만 명에 달하는 등 노동시장의 초과 공급이 발생하자 돈을 주고 스펙을 사는 현상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에 극심한 취업난이 청년층의 무기력과 절망을 깊어지게 만들어 중국 사회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달라진 中 취업 풍속도, ‘유료 인턴십’ 등장
29일 중화망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대졸자 사이에 ‘유료 인턴십’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중개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원하는 기업에 제출할 공식 추천서를 받아 인턴에 합격하는 식이다. 중화망은 “특히 경쟁이 치열한 유망 산업 분야나 대도시에서 유료 인턴십이 성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턴십 알선비는 업종에 따라 적게는 8,000위안(약 151만원)에서 많게는 1만9,000위안(약 360만원)에 달한다. 중국 내 구직 플랫폼에서는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의 현장 인턴십 알선비가 3만6,800위안(약 700만원)으로, 하계·동계 방학 기간에는 2만9,800위안(약 570만원)으로 할인한다고 홍보하는 중개업체도 있었다.
중국 최대의 온라인 구직·구인 플랫폼 즈롄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기준 도시별 임금 순위에서 1위에 오른 상하이의 평균 월급이 1만3,888위안(약 263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 대졸자들은 웬만한 도시 근로자의 한두 달 치 월급을 알선비로 줘야 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 내 기업으로 한정됐던 유료 인턴십이 글로벌 기업, 국제기구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일례로 한 중개업체는 국제기구 인턴십 자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4만8,800위안(약 93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탕핑족까지 포함한 청년 실업률 50% 육박
이런 가운데 유료 인턴십을 내세운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중국의 소비자 불만 접수 사이트에는 ‘허위 광고’, ‘소비자 사기’, ‘환불 거부’ 등 유료 인턴십 중개업체에 대한 불만이 다수 접수됐다. 여기에 수백만원의 알선비를 주고 유로 인턴십의 기회를 얻어도 무급으로 2~3개월 일하다가 인턴십 종료와 함께 다시 실직자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아 일부 기업들이 이러한 관행을 악용한다는 비판도 높다.
한 달 치 월급을 주고 무급의 인턴십 자리를 구하는 기현상의 배경으로는 극심한 취업난이 꼽힌다. 지난해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인 21.3%를 기록했는데, 당국은 같은 해 7월부터 청년 실업률 발표를 잠정 중단했다. 대신 지난해 12월부터 중·고교 및 대학 재학생을 제외한 구직자를 기준으로 한 실업률 추계를 발표하며 수치를 10%대로 낮췄지만, 청년층의 실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베이징대 연구팀은 ‘탕핑족(躺平族·집에서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청년층)’과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캥거루족’ 등 취업을 포기한 1,600만 명의 청년을 합치면 실제 청년 실업률은 46.5%라는 추계를 내놨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이 실업률을 계산할 때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제외해 현실과 괴리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중국의 대졸자 중 수백만 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무너진 ‘중국夢’, 변화 이끌 시한폭탄 되나
현재 중국 청년층은 그동안 미처 준비하지 못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돈을 벌어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취업 박람회에서는 대졸자에게 영업직이나 기술직의 조수 등 저숙련 일자리를 권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며, 대기업 취업에 대한 암울한 전망에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면서 지난해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300만 명을 넘기도 했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일자리와 실제 취업 가능한 일자리 간에 미스매치가 발생하면서 도시에서의 구직을 포기하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게 돌아가기를 택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중국 당국 차원에서도 높아지는 실업률에 청년들에게 귀향과 농촌에서의 구직활동을 독려하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의 ‘신빈곤층’이라 불리는 16~35세 청년 인구는 3억6,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달한다. 문제는 팬데믹 이후 경제 위기의 직격타를 맞은 이들의 빈곤이 단순히 일자리, 기회, 경제적 수입의 부족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국이 소비 부진, 부동산 침체 등에 더해 청년 실업의 문제가 향후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샹 바오 교수는 이러한 중국 청년층의 변화를 두고 ‘중국몽의 재구성’이라고 정의하면서 “중국 Z세대 마음속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시진핑 체제는 전체 인민의 ‘공동부유’와 함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중국몽’을 주창해 왔지만 시진핑이 키워낸 1020세대, 이른바 ‘애국청년’이 우울과 불안감에 자포자기하면서 ‘중국몽’이 오히려 체제를 위협하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세가 꺾이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900만 명 이상의 청년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들이 중국을 변화시킬 강력한 세대로 진화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과거에도 중국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천안문 광장 시위가 대표적이다. 지난 1989년 실업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청년들의 좌절감이 트리거가 돼 천안문 광장에서 역사적이고 거대한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최근인 2022년에도 중국 정부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같은 애국청년의 백지 시위에 중국 정부는 결국 코로나19 확진자의 자가격리를 허용하는 등 방역 완화 조치를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