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산 쇼크’ 티몬·위메프 “사재 턴다”더니 기업회생 신청, 피해자 보상 길은?
티몬·위메프 기업회생 신청에 미정산액 피해 우려
정부 추정액만 2,100억원, 업계는 월결제액 근거로 1조원 이상 추산
양사 파산하면 채권도 휴지조각, '울며 겨자먹기'로 회생에 동의할 수도
이커머스의 불합리한 정산 관행 도마에, '긴 정산 주기' 대출 부담으로 이어져
결제 대금 미지급 사태를 겪고 있는 티몬과 위메프가 결국 법원에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신청했다. 모회사 큐텐의 구영배 대표가 “사태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나온 결정이다. 피해자에게 더 이상 변제할 현금 여력이 없다는 얘기로, 미지급 정산금이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물론,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 보상이 더 힘들어 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티몬·위메프 ‘돌려막기 한계’, 법정관리 신청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는 전날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두 회사는 “최근 대규모 환불 사태와 거래처 이탈 등으로 자체적으로 재정 상황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기업회생 신청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일 대금 미지급 사태 발생 이후 일부씩 돌려막던 상황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의미다.
이어 양사는 “계속되는 언론 보도와 이에 따른 거래중단 및 구매, 판매회원의 이탈은 점점 가속화했고, 그 여파로 당사의 현금 흐름 또한 급격히 악화됐다”며 “결국 정산금이 지급되지 못함으로써 영세한 사업자인 판매회원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전사적 노력을 했지만 끝내 회생 개시신청을 택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회생 제도를 통해 사업 정상화를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채권자인 판매회원들과 소비자인 구매회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며 “그 과정에서 뼈를 깎는 자구방안을 수립, 실행할 준비도 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파악한 판매자 정산 지연 금액은 지난 25일 기준 약 2,134억원이다. 여기에 추후 정산일이 다가오는 거래분까지 고려하면 판매자들의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업계에선 총 1조원에 달하는 티몬·위메프의 추정 월 결제액을 근거로, 최악의 경우 1조원의 미정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뒤따르고 있다.
채권자들 날벼락, 돈 덜 받는 ‘회생’ vs 돈 못 받는 ‘파산’ 중 양자택일 기로
기업회생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 상황에 놓인 회사에 대해 사업을 영위할 때의 가치가 청산할 때의 가치보다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 감독하에 채권자, 주주, 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하는 제도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법원이 선임한 회계법인이 ‘조사위원’으로서 그 회사의 경제성을 조사하게 되는데, 이는 즉시 회사를 청산해 채권자에게 배당하는 가치(청산가치)와, 회사를 계속 경영해 채무를 갚을 수 있는 가치(계속기업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사위원은 회사가 재기하는 것이 채권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에게 유리한지 확인한다. 이 단계에서 청산가치가 높거나 사업 계획 수행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될 경우엔 재기에 실패한다. 자금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과다 경쟁으로 영업이익율이 낮아 적자경영을 지속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법원의 조사를 통과해도 채권자들이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낮다. 기업회생의 핵심은 ‘채무조정’인 만큼 법원은 채권자가 기업의 채무 일부를 탕감해 주도록 양자 사이를 중재하는데, 채무 탕감은 채권자의 권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티몬이 기업회생에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채권자들로부터 회생계획안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는 채권 총액의 3분의 2 이상에 해당하는 의결권자의 동의로, 만약 회사에 120억원의 부채가 있다면, 기업회생에 동의하는 채권자들의 채권 액면가 합이 80억원 이상일 때 기업회생이 가능한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에 큰 돈이 물린 채권자일수록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에서 양사의 기업회생 여부는 거액 채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 달려있지만, 채권자들로선 자기 채권이 제값을 못 받을 걸 뻔히 아는 만큼 기업회생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동의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파산할 위험이 있어 무턱대고 거부하기도 어렵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한 법인은 △법원이 회생심사를 기각하거나 △인가 전 회생절차가 폐지되거나 △제출한 회생계획안이 법원과 채권자의 인가를 받지 못하면 ‘임의적 파산선고’ 상태로 돌입한다. 파산한 기업은 파산 선고 당시의 재산 중 국가에 납부할 분량을 제외하고, 남은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분배한 뒤 소멸하는데, 이때 파산한 기업에 재산이 없을 경우 채권자들은 돈을 받을 권리가 사라진다. 채권자 입장에선 기업회생에 동의해야 적은 돈이나마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커머스 정산 주기 관행 수면 위로, 업계 재편 신호탄 될까
한편 이번 미정산 사태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불합리한 판매대금 정산 관행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의 정산 주기는 최대 두 달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G마켓 5∼10일 △무신사 10∼40일 △SSG 10∼40일 △쿠팡 30∼60일 △티몬 35~70 △위메프 37~70일 순이다.
문제는 판매대금이 60일 뒤에나 지급되는 정책으로 인해 소상공인들은 대출 상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긴 정산 주기를 가진 플랫폼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한 후에도 정산이 이뤄지기 전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연 6%의 이자를 부담하며 은행에서 선정산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선정산 대출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가 정산되지 않은 판매대금을 대출 형태로 먼저 받고 정산일에 은행이 이커머스로부터 정산금을 받아 자동으로 상환하는 방식이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 중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선정산 대출 상품을 제공하는 곳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SC제일은행으로, 이들 3개 은행이 지난해 취급한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업체의 선정산 대출 총액은 1조2,300억원을 초과했고, 올해 상반기 대출 규모만 7,500억원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롯데마트와 이마트를 포함한 대기업 유통사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라 판매대금 정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따른다. 그러나 이커머스 플랫폼에는 이러한 정산 및 대금 보관과 사용에 관한 법적 기준이 없다. 게다가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통해 자금난을 버티는 동안 이커머스 플랫폼은 판매대금을 두 달간 보유하며 예금 이자 등의 수익을 취하고 있었다.
이에 유통업계에서는 앞으로 자금력이 충분하고 지급보증을 제공할 수 있는 대기업 및 흑자기업에 판매자들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과 네이버가 사실상 주도하는 가운데 그 뒤를 지마켓·옥션·SSG닷컴(신세계그룹), 11번가(SK그룹) 등 1위부터 6위까지 모두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임희석 연구원은 “큐텐은 판매자와 소비자 신뢰를 잃은 이상 이용자 이탈은 불가피하다”며 “7조원 수준의 큐텐그룹 총거래액(GMV)은 경쟁 오픈마켓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