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에 ‘코너’ 몰린 구영배 큐텐 대표, 지분 매각·사재 출연 등 출구전략도 “현실성 떨어진다”
'책임' 강조했지만 소극적인 큐텐 대표, 피해자들 "사태 해결 의지 있나"
회생 절차에 기업가치 하락, 지분 매각으로 자금 마련하긴 어려울 듯
개인 자산 부족해도,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 도전기 열망은 여전
구영배 큐텐 대표가 티몬·위메프(티메프) 대규모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에 사죄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겠다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양사가 이미 회생 절차에 돌입한 데다 구 대표의 개인 재산도 적은 것으로 알려져서다.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 사이에선 “구 대표의 모습에 사태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티메프 사태 확산, 구영배 대표 “사태 해결 위해 최선 다하겠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티메프는 평소 할인 쿠폰을 남발하고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상품권을 파격적인 가격에 할인 판매해 왔다. 구매 고객이 상품값을 지불하면 두 달 뒤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식으로 돌려막기를 자행해 온 것이다. 그러나 판매 대금 일부가 모기업인 큐텐의 경영 자금으로 유용되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티메프의 미정산 대금을 최소 2,1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이는 지난 5월분 미정산액만을 추정한 것으로, 6·7월 판매분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더 불어날 전망이다.
시장에선 큐텐이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위해 부실한 이커머스 기업을 무리하게 사들인 게 직격타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큐텐은 2022년부터 올해까지 티몬,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 미국 온라인 쇼핑몰 위시, AK몰 등을 인수했다. 대부분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진행됐지만, 일부 플랫폼을 현금 지급 방식으로 인수한 탓에 구멍이 생겼다. 특히 지난 2월 미국 플랫폼 위시를 인수하면서 2,500만 달러(약 400억원)의 티메프 판매 대금을 인수 자금으로 활용했다. 큐텐의 기형적인 구조와 무리한 외연 확장이 피해를 확대한 셈이다.
이에 구 대표는 30일 티메프 사태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 현장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인터넷(사업)이 가진 특성상 금방 죽다가 올라오기도 한다. 잘 설득하면 기회가 다시 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상품권 할인을 남발하고 긴 정산 주기를 활용해 판매 대금을 기업 인수 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가 십 수년간 이어온 행태”라며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 시장을 키우기 위해 글로벌로 가려 했다”고 말했다. 위시 인수 대금으로 티메프 자금을 유용한 것에 대한 질문에는 “티메프 자금을 동원한 건 맞지만 한 달 내 바로 상환했다”며 “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지분 매각 시사했지만, 긴급회생 절차에 매각 가능성↓
당초 구 대표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단 소식이 들려왔을 때, 피해자들은 그가 작은 대책이라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8일 위메프 사태가 발생한 지 22일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만큼 출구전략을 구성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였으리란 시선에서였다. 그러나 이날 구 대표는 해결 방안은커녕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공분을 샀다. 구 대표에게 질의한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도 질의가 마무리된 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부도덕한 한 사람의 망상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가.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변명과 궤변으로 자기합리화만 했다”고 구 대표를 질타했다.
구 대표의 문제 해결 의지에도 의구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구 대표는 이날 “(티메프 사태에 대한) 최종 책임은 기업을 잘못 운영한 저(에게 있다)”라며 “제가 가진 100%를 동원하겠다”고 했다. 동원할 수 있는 그룹의 시재(時在) 800억원에 본인이 가진 큐텐 지분(38%)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한때 2조원까지 갔던 큐텐의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돈을 마련한다는 게 골자지만, 시장에선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큐텐 계열사의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등 기업 전반의 신용이 급락한 상황에서 큐텐의 지분을 담보 삼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구 대표에 따르면 시재 800억원도 당장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유한 지분을 모두 내놓겠다”고 장담한 것치곤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티메프가 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구 대표의 지분 매각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회생 절차를 밟는단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회사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매수자가 나타난다 해도 모자란 대금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의 지분을 투자 목적으로 사들일 이유가 없단 것이다. 현재 큐텐의 결손금이 4,000억원에 달함을 고려하면 헐값 매각을 통해 매수자를 찾는다 하더라도 티메프 사태를 완전히 해결하는 건 어려울 거라는 게 증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재 적고 큐익스프레스 지분 활용에도 소극적
이에 업계 일각에선 구 대표의 개인 재산이 티메프 사태를 해결할 ‘키’가 될 수 있단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지난 1월 위기에 몰린 태영건설이 그룹 총수 일가가 사재 출연을 통해 일정 부분 자금 부담을 맡은 사례가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태영건설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규모는 484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에도 금호산업 워크아웃 사태가 발생하자 박상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해 2,200억원 규모의 사재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막상 구 대표는 내놓을 만한 자산 규모가 크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구 대표는 국회 현안 질의에서 “현재 남은 재산은 큐텐 비상장 주식 및 아내와 공동 보유한 시가 70억원 상당의 서울 반포자이 아파트, 통장이 든 10억~20억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G마켓을 매각하고 받은 700억원이 있지 않냐는 질문엔 “모두 큐텐에 투입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큐텐 재팬을 두 배에 매각하면서 받은 대금도 다른 투자자들에게 환불하고, 다 투입했다”고 덧붙였다. 사재를 출연하고 싶어도 처분할 자산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단 것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그나마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 큐익스프레스 지분(29.4%) 활용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데 볼멘소리가 나온다. 결국 위기 상황에도 큐익스프레스 나스닥 상장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단 의지를 내보인 셈 아니냔 것이다. 티메프 사태가 확산한 지난 27일 구 대표가 직접 나서 큐익스프레스 최고경영자(CEO)를 사임하며 “이 회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점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티메프 사태 수습엔 소극적이면서 큐익스프레스만 적극적으로 비호하는 것으로 비칠 여지가 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가 처음부터 계획된 ‘사기극’이었단 평가도 나온다. 일련의 사태 전반이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란 것이다. 구 대표에 따르면 큐텐은 2021년까지 누적 적자가 4,299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지만, 구 대표에겐 ‘쿠팡의 손정의’처럼 적자경영을 지원할 ‘큰 손’이 없었다. 이에 자금 마련을 위해 무자본으로 부실기업을 인수해 덩치를 키워 물류 자회사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방식으로 엑시트를 꾀했고, 그 결과가 티메프 사태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구 대표는 이베이와 합작했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큐텐재팬을 떼주며 결별했다”며 “이후 한국의 적자 플랫폼들을 무자본으로 끌어안았고, 이를 통해 큐익스프레스를 상장해 투자금을 회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위시를 인수한 데 대해선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상장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