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에 먹구름 드리운 미국 경제, ‘닷컴 버블’ 악몽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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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업률 4.3%까지 상승, 시장서 AI 거품론 확산하기도
과도한 투자로 실적 하락한 빅테크 기업들,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 ↑
월가선 AI 거품론에 반박 의견, "기술 성숙도 및 재투자율 높은 만큼 닷컴 버블과 단순 비교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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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가 급격한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급변한 분위기 탓에 증권가의 시선도 엇갈리고 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낙관론과 AI 거품이 가시화하면서 침체가 더욱 심화할 것이란 회의론이 얽히고설킨 것이다. 월가에서도 경기 침체를 경계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 한편 AI 거품론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적잖이 나온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 확산

5일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잇달아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내놨다. 최근 미국의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고 있단 의견이 나오면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고용률이다. 앞서 미 노동부는 지난달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전월 대비 11만4,000개 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월가 예상치인 18만5,000개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동기간 실업률도 4.3%까지 올랐다. 4.3%는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DB금융투자는 “미국 고용시장의 모멘텀은 한 번 둔화하기 시작하면 추세적으로 악화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민간소비가 국가 경제의 70%를 차지하고 민간소비의 60%를 임금소득이 지탱한다”며 “이와 더불어 유연한 고용 제도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용·임금소득·소비·다시 고용으로 이어지는 미국 경제의 주요한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연쇄적인 영향을 받아 고용시장이 붕괴할 수 있단 점을 꼬집은 것이다.

월가에서도 경기 침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워런 버핏이 주식을 팔았단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앞서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다 보유 주식이었던 애플의 지분을 줄이는 등 주식 보유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고 발표했다. 실제 6월 말 기준 버크셔의 애플 주식 보유 규모는 842억 달러(약 115조원)가량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애플 지분 보유 규모가 1,743억 달러(약 237조원)였음을 감안하면 6개월 새 보유 지분을 절반까지 줄인 셈이다.

AI 거품론이 직격타, 지나친 투자가 발목 잡았다

그간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오던 AI 산업이 ‘거품’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도 경기 침체 위기론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AI의 수익성에 기대를 갖고 투자해 왔는데, 실상 AI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극히 제한적이었단 인식이 생겼단 것이다. 과거 2000년대 초반에 발생했던 닷컴 열풍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단 우려도 적지 않다. 닷컴 열풍 당시 기업들이 대거 광케이블 설치에 나섰다가 하락세를 겪은 것처럼 이번엔 AI 인프라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무너질 수 있단 주장이다.

빅테크 기업의 실적 하락은 이미 가시화한 상태다. 미국 증시를 견인해 온 매그니피센트7(엔비디아·애플·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알파벳·테슬라)에 속한 6개 빅테크 기업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수익 성장률이 둔화했단 소식을 전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통신은 “(이들 기업은) 지난해 4분기 수익 성장률이 56.8%까지 올랐으나 (올해) 2분기엔 29.9%까지 하락했다”며 “오는 3분기엔 17%대까지 떨어질 전망”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의 발목을 잡은 건 천문학적인 AI 투자 액수였다. 실제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AI 투자액이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지난 상반기 투자액 190억 달러(약 26조원) 중 약 60%가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와 관련돼 있다고 언급했다. 아마존 역시 2분기 매출이 시장 예상치보다 낮은 상황에서도 AI에 165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막상 이들 기업의 AI 부문 매출액은 투자액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시장 일각에서 AI가 ‘돈 먹는 하마’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AI 산업의 주요 축 중 하나인 엔비디아가 미끄러졌다는 소식은 AI 산업에 대한 의구심마저 키웠다. 지난 2일(현지시간)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의 차기 AI 반도체 ‘블랙웰’ 제품이 설계상의 결함으로 3개월가량 생산 일정이 늦어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블랙웰은 이전 제품 대비 연산 속도가 2.5배 빨라 ‘괴물 칩’으로 불린다. 이에 블랙웰이 처음 공개될 당시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퉈 블랙웰을 주문했다. 차세대 AI 모델 개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블랙웰을 탑재한 데이터센터를 내년 1분기쯤 짓겠단 계획도 발표했다. 그런데 블랙웰 출시가 연기되면서 빅테크들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엔비디아가 흔들리자 다른 AI 기업들도 연쇄적인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러잖아도 AI 수익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시장에 불안 요소가 더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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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선 낙관론도, “닷컴 버블 때와는 상황 자체가 달라”

다만 일각에선 낙관론도 적잖이 나온다. 아직 미국의 경기 침체를 확신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메리츠증권은 “추후 경기 침체가 올 수는 있지만, 몇 개 지표만으로 임박했다고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신증권도 “올해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은 전년 동기 대비 1.7%”라며 “이를 저점으로 경기가 회복할 것이란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AI 거품론에 반박하는 월가의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이자 투자자문사 GMO의 공동설립자인 제레미 그랜덤(Jeremy Grantham)은 “매그니피센트7과 같은 주요 기업을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당시 기업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당시와 현재 주요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을 나란히 비교했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클수록 고평가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랜덤은 “닷컴 버블 당시 10대 기업의 PER은 2000년 기준 60배에 달하는 반면, 현재 미국 상위 10대 기업의 PER은 27배에 불과하다”며 “오늘날의 위험은 닷컴 버블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강조했다.

빅테크 기업의 펀더멘털이 닷컴 버블 시기보다 훨씬 견고한 상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LPL파이낸셜의 퀸시 크로스비(Quincy Krosby) 수석 전략가는 “닷컴 버블 붕괴는 시장이 AI와 관련한 모든 것을 밸류에이션 지층으로 끌어올리는 과정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면서도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들 기업이 견고한 대차대조표를 보유하고 있고 매력적인 수익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 시장 추세는 AI의 현실을 기반으로 하며 시장은 이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AI 빅테크 기업들의 기술 성숙도 및 재투자율이 높은 만큼 과거 닷컴 시장과 현재의 AI 시장을 단순 비교하는 건 옳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 과거 닷컴 버블 당시엔 기술의 성숙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 및 수익성 없이 투자를 받던 인터넷 기업들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빅테크 기업들은 AI를 중점으로 의료, 제조, 금융, 예술 등 여러 산업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재투자율도 높다. 월가에 따르면 매그니피센트7 기업들은 단기현금의 약 60% 이상을 R&D(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다. 반면 닷컴 버블 당시 기업들의 재투자율은 약 26%에 불과했다. AI 시장의 순간적인 약세를 ‘버블’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거듭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