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반독점 소송 패소 판결, 항소심서 ‘강제 기업 분할’ 명령 가능성 거론되기도
검색엔진 기본 탑재에 260억 달러 투입, 미 법원 "반독점법 위반 맞다"
'고객 위한 것'이라는 구글, 시장선 "독점적 지위 무기화한 건 사실"
구글 최종 패소 시 강제 기업 분할 명령 떨어질 듯
구글이 인터넷 검색 분야 독점 기업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자행했다는 내용의 미국 법원 판결이 나왔다. 미국 정부가 제소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구글이 패소한 것이다. 이후 구글이 최종 패소할 경우 기업 강제 분할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단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 연방법원 “구글 시장 지배력 남용했다”
5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의 아미트 메흐타 판사는 구글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며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구글은 독점 기업이고, 구글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구글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미 법무부는 지난 2020년 10월 구글이 검색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제소했다. 소송 과정에서 구글이 자사 검색 엔진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에 막대한 자금을 지급해 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구글은 2022년 한 해 동안에만 애플에 200억 달러(약 27조4,000억원)를 지급했고, 삼성전자에는 4년에 걸쳐 80억 달러(약 10조9,000억원)를 지급했다.
이에 연방법원은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남용한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날 메흐타 판사는 “구글이 검색엔진 기본 탑재를 위해 지불한 돈은 다른 경쟁업체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며 “구글은 시장 지배력을 불법적으로 남용하고 경쟁을 제한했다”고 적시했다. 구글이 시장 독점을 활용해 경쟁에 대한 우려 없이 온라인 광고 수익을 올렸단 설명이다. 그러면서 “구글이 스마트폰 웹 브라우저에서 자사의 검색 엔진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건 독점을 불법으로 규정한 셔먼법 2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즉각 반발했지만, 시장선 “예견된 결과”
패소 판결이 나오자 구글은 즉각 반발하며 항소를 예고했다. 구글 측은 “자사의 검색엔진 기본 탑재를 타진한 건 소비자가 최고의 검색엔진을 경험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라며 “소비자 역시 최고의 제품을 선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용자는 구글이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글 검색을 이용해 왔고, 이를 위해 (우리는) 투자를 지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판결 직후 “이번 재판 절차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사람들에게 이용하기 쉬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계속 초점을 맞출 게획”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검색엔진 탑재는 고객을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스탠스를 견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장에선 구글의 패소가 ‘예견된 결과’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의 입장이 어떻든 금전적 대가를 통해 검색엔진 기본 탑재를 현실화한 건 자사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미 법무부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선 행동경제학자 인토니오 랭겔은 “디폴트 설정이 소비자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을 준다는 건 한계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이나 개인용 컴퓨터(PC) 같은 기기에 디폴트(기본 설정) 검색엔진을 두는 건 대규모 이용자가 특정 검색엔진을 선택하는 쪽으로 편향되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구글이 독점적 지위를 ‘무기화’해 애플을 굴복시켰단 정황이 파악되기도 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애플이 사파리 검색엔진에 구글 사용을 처음 허가할 당시엔 양사에 금전적 대가나 독점성 조건 등 요구가 일절 없었으며, 2005년 수익 공유 약정을 체결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이 사용자들에게 구글과 야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 화면’을 제공하려 하자 구글은 “기본 검색엔진 배치가 되지 않으면 수익 분배도 없다”고 밀어붙였다. 결국 구글이 ‘독점자의 횡포’를 부린 탓에 애플이 굴복했다는 게 법무부 측의 설명이다.
기업 분할 리스크 현실화하나
패소 판결이 나오자 구글 측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구글의 검색엔진이 모회사인 알파벳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다. 구글이 최종 패소하면 기존 사업 관행을 중단하거나 일부 사업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 경우 중·장기적인 매출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일각에선 구글의 강제 기업 분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법무부가 구글에 “검색 사업 부문을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나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 등 다른 제품들과 분할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단 것이다.
1890년 ‘셔먼법’ 제정 이래 기업이 강제 분할된 전례는 이미 다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11년 미 연방대법원의 스탠더드오일 분할 명령이다.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여러 정유회사가 스탠더드오일에 주식을 신탁하는 트러스트(기업연합) 방식으로 덩치를 키워 미국 석유 시장의 88%를 차지하는 등 불법을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연합을 거부하는 정유소는 덤핑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문을 닫게 만들기도 했고, 미국 철도 업계의 가장 큰 화주라는 입장을 이용해 경쟁자에게 차별적인 운송료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태에 1911년 연방대법원은 스탠더드오일에 대한 반독점법 혐의를 인정했고, 결국 스탠더드오일은 34개 회사로 분할됐다.
이외에도 1911년 미국 담배 시장의 90%를 차지하던 아메리칸타바코가 16개 회사로 쪼개진 바 있고, 1942년엔 미국 방송산업을 독점했던 NBC가 강제 분할되기도 했다. 미국 통신 업계를 독점했던 AT&T도 1984년 지역 사업별 7개의 ‘베이비벨’로 쪼개졌다.
구글과 가장 비슷한 사례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있다. 지난 1998년 미 정부는 PC 운영체제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던 MS가 ‘윈도’ 운영체제의 기본 브라우저로 ‘윈도 인스플로러’를 선탑재하는 방식을 통해 경쟁 서비스를 밀어내고 브라우저 시장까지 장악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미 연방법원은 MS의 행위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판단, 기업 분할을 명령했다. 5년 뒤 항소심에서 기업 분할 결정은 취소됐지만, 이 기간 동안 MS의 역량은 상당 부분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 분할을 피하기 위해 정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CEO(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출혈도 상당했다. 향후 구글도 막대한 리스크를 직면할 가능성이 있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