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높은 청년 실업률 뒤에 숨은 글로벌 경쟁
대졸 백수 400만 시대
청년들의 눈 높이를 채워줄 수 있는 국내 기업 숫자 절대 부족
오히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을 위해 해외 인력들을 적극 채용해야 할 판국
청년들이 눈 높이 낮추지 않으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밀리는 현상 계속될 것 전망
사실상 '열패(劣敗)'된 인력들 포기해야 된다 지적도
올해 상반기 대학을 졸업한 후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40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2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월평균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의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405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000명 늘었다. 이는 1999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상반기 기준 가장 많은 수치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들로, 일을 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할 뜻이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쟁의 승자만 채용되고 채용하는 시대
인사 전문가들은 대졸자들의 취업 포기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기업들 중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로 매출액을 만들어 내는 기업들 숫자 대비 국내 근로가능인력의 숫자가 터무니 없이 많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잃고 한국 시장에서만 경쟁하는 기업들 중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급여, 복지, 사원들의 자부심 등을 경쟁할 수 있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한국 청년들이 자신의 역량에 맞게 기대 수준을 낮춰 취업하려 하지 않는만큼, 글로벌 상위권 경쟁력을 갖춘 일부 기업들이 아니면 인력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기업과 구직자 간의 ‘매칭(Matching)’이 일어나지 않는 노동 시장이 되는 것이다.
지난 2010년 노동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런던정경대학(LSE)의 크리스토퍼 피사리디스(Christopher Pissarides) 교수에 따르면 기업과 구직자 각각이 다양한 요구 조건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서로 간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 노동 시장의 ‘경제학적 균형(Equilibrium)’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획일적이고 암기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동질성(Homogeneity)이 높아 피사리디스 교수가 주장하는 ‘이질적 매칭(Hetergeneous Matching)’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 노동 경제학자들의 설명이다. 피사리디스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3국의 동질적 인종 구성 및 집단 문화가 강한 지역에서 자신의 노동 시장 균형 모델이 맞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가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과 한국의 동질성이 결합된 탓에 속칭 ‘한 줄 세우기’ 문화에 따라 대기업 선호 현상이 더 심해지고 경쟁 낙오된 인력들이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않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즉, 청년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대졸 백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제경제학에서 지적하는 자본, 노동의 국제적 이동이 심화되는 시대
국제경제학자들은 자본과 노동의 국경 이동이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기업들이 일찍부터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해외 공장을 세웠던 것 이상으로 재택근무 문화로 인한 노동력도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최근 미국 실리콘 밸리의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투어 자국 내의 개발자 팀을 해체하고 인도에서 약 1/3 ~ 1/4의 비용으로 다시 팀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대 초반부터 빅테크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IT개발자들을 채용해왔다. 미국 명문대 컴퓨터 공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들은 연봉 12만 달러 내외로, 석사 및 박사 학위자들은 15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지급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대에 해당하는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의 IT개발 인력들은 대개 연봉 7만 달러에 업무를 시작했고, 자연계열(STEM) 전공자들에게 최대 3년의 연수 비자가 주어지는 점을 이용해 3년 정도 저렴한 인력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국내 기준으로는 높은 연봉으로 보이지만, 캘리포니아 일대의 생활비를 감안하면 단칸방을 공유하면서 살아야 하는 저(低)연봉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IT인력들은 미국 커뮤니티 칼리지를 거쳐 구글, 페이스북 등의 주요 빅테크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덕분에 캘리포니아 일대의 커뮤니티 칼리지들은 미국 타 주(州)와 달리 학생 수급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인도 현지에서 개발팀을 직접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칼리지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최근 인도 남부의 타밀 나두(Tamil Nadu) 현지에서 재택근무 형식으로 글로벌 테크 기업에 IT개발자로 채용된 한 인도인의 면접 후기에 따르면 1개월간 단순한 O/X 테스트부터 서버 문제 발생시 대응 속도 및 방법 등을 모두 따지는 꼼꼼한 면접을 거쳐 채용이 됐다. 해당 개발자의 연봉이 3만 달러(약 4천만원)에 불과한 것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는데, 국내 IT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면접 중에 받은 과제의 수준과 대응 내용, 속도 등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는 채용이 매우 어려운 최상위권 인재인만큼 연봉 1억을 불러도 채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한국에서는 그 정도 인재라면 콧대가 굉장히 높아 1달에 걸쳐 복잡한 과제들을 다 할 가능성도 낮고, 국내 기업들도 그렇게 복잡한 과제를 낼 수 있을만큼 준비된 곳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인력 채용, 매출 창출하는 기업들, 글로벌 경쟁력 갖춘 인재들만 살아남게 될 것
한 때 개발자가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군이라고 인력이 몰리기도 했었으나, 국내 IT기업들도 한국보다 인도에서 고급 인재를 채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만큼, 내부 역량을 끌어올려 단계적으로 채용 시장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미 LG CNS는 인도 현지 채용된 개발 인력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데 인력을 투입한 상태다. 한 때 15명에 달하던 국내 개발팀을 해체하고 인도 및 동유럽 현지 팀을 필요할 때마다 프리랜서 형태로 채용 중이라는 한 IT스타트업 관계자는 월 1억에 가깝게 나가던 인건비 항목이 연간 1천만원 내외로 줄었다고 밝혔다.
재택근무로 한계가 있는 업무의 경우, 해외 인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국가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독일은 지난 2015년부터 해외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해 지난 2022년 기준 전 인구의 15%가 외국인이 될만큼 글로벌화가 진행됐다. 국내 스타트업을 접고 독일 베를린에서 2021년에 재창업을 했다고 밝힌 A씨는 외국인임에도 독일 정부에서 차별없이 지원금을 받고 있고, 한국 기업들과 달리 독일 및 유럽 기업들이 해외 인재들이 만든 상품을 이용하는데 적극적이어서 영업 활동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고 밝혔다. A씨는 이어 독일 및 서유럽 국가들 사이에는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동유럽, 최근들어서는 남유럽에서도 IT개발자들을 채용하는 것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건비 절감이 이미 10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신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본 및 노동 시장 모두에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맞춰 ‘대졸 백수’들도 시야를 빨리 낮추지 않으면 해외 인력들에게 일자리를 모두 뺏길 것이라고 지적한다. 쉽고 편한 일자리만 찾으려는 MZ세대를 채용하다 지쳤다는 어느 편의점 점주가 최근 무인점포로 점포를 개조하게 된 이유를 밝힌 것이 인터넷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이미 몽고, 구소련 지역, 아랍 등에서 온 인력들이 건설 인력의 적게는 30%, 많게는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밀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