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 미국 MRO에 도전장, 부품 공급망 확보·낮은 수익성 등 과제는 여전
미국과 MSRA 체결한 한화오션, HD현대도 MRO 사업 경쟁 나섰다
부가가치 낮은 미 MRO 사업, HD현대는 최근 RMO 입찰 참여 않기도
거듭되는 한화오션의 미 MRO 도전기, 영업손실 확대 추세는 '족쇄' 될 듯
국내 조선사들이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진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한화오션은 MRO 사업 참가 자격을 얻은 뒤 곧바로 입찰에 나섰다. 자격 획득부터 입찰까지 걸린 시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조선업 공급망이 붕괴하며 공백이 발생한 미국 시장을 발 빠르게 채워 나가겠단 취지로 분석된다.
한화오션·HD현대 미국 MRO 사업 진출 타진
14일 조선 및 방산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난달 22일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했다. 미군이 규정한 함정 MRO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한화오션은 이후 곧바로 입찰에 참가했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26일 진행된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미 해군 MRO 프로젝트 중 하나에 입찰했으며, 8월 중순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HD현대중공업도 MRO 사업 진출을 본격화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1일 MSRA를 체결하고 향후 5년간 미국 해상 수송사령부 소속의 지원함과 미 해군이 운용하고 있는 전투함에 대한 MRO 사업 입찰 참가 자격을 확보했다.
이처럼 국내 조선사들이 MRO 사업에 적극적인 건 미국 조선업 공급망 붕괴에 따른 빈자리를 자사가 채울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월 제프리 L 시비 퇴역 소령이 미국 해군연구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함정 정비 및 수리는 4곳의 공공조선소와 17개 건조시설(도크)에서 이뤄진다. 약 291척(2023년 말 기준)에 달하는 미국 전투함들을 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라는 것이다. 이는 미 해군의 전투력 감소로 이어졌다. 미 정부회계감사국(GAO)은 2015~2019년 수리 및 정비 지연으로 잠수함 3척과 항공모함 0.5척 이상의 전투역량이 소실된 효과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미국이 자국에서 함정을 건조할 능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카를로스 델토로(Carlos Del Toro) 미 해군 장관이 함정 건조 현황을 점검한 결과 모든 함정의 납기가 12~36개월 지연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미 해군이 찾은 방안은 한국, 일본 등 조선업 인프라가 갖춰진 동맹국 조선사와 협업을 이루는 것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국과 미국에 거점을 마련해 미 해군 7함대는 물론 본 함대 함정 MRO에 진입할 수 있는 길까지 한 번에 연 것이다. 이는 선체와 핵심 구조물 모두를 미국 본토 조선사에서 건조해야 하는 미국 제도에 맞춘 행보다. HD현대중공업 역시 지난해 5월 MSRA를 신청한 이후 올해 1월 시설 및 품질 실사를 완료했다. 3월과 5월에는 각각 보안 실사와 재무 실사까지 마쳤다.
낮은 수익성이 ‘발목’, 부품 현지 수급 등 변수도 산적
다만 시장에선 미국 MRO 사업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MRO 물량이 비전투함, 단순 정비, 중기 점검 등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들에 몰려 있어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모도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ience)에 따르면 글로벌 함정 MRO 시장은 2029년 636억2,000만 달러(약 86조5,000억원)까지 커지고 이 중 미국 시장은 2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규모 자체는 커질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보다 먼저 사업에 진입한 일본이 연간 600만 달러(약 81억원) 수준의 미국 MRO 사업을 수주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내 기업이 미국 함정 건조나 정비 등에 경험이 없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MRO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여러 변수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부품 공급망에서 원활한 현지 수급을 구현할 수 있는지 여부와 현지 노조와의 관계, 정비인력 관리에 필요한 제반 여건 등이 문제로 꼽힌다.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기조가 강화하고 있단 점도 따져볼 요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HD현대중공업은 MSRA를 체결하고도 최근의 미 해군 MRO 입찰(4만 톤급 보급선)엔 참여하지 않았다. 보급선의 MRO 비용을 분석한 결과 도크 점유는 수익성이 매우 낮다는 자체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이사도 지난달 진행된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미국이 보내는 사업은 주로 보급선 MRO로, 이는 비용 대비 사업성이 상당히 낮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슈퍼사이클에도 적자 전환, 한화오션 MRO 도전기 이대로 괜찮나
한화오션은 미 MRO 시장 규모의 미래 성장성을 고려해 물량 확보를 준비하겠단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난관이 만만치 않다. 한화오션이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악화를 겪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의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2조5,361억원, 영업손실은 9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약 47.8% 증가했지만 직전 분기와 비교했을 때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반면 HD한국조선해양은 올 2분기 영업이익이 3,764억원으로 전년 대비 428.7% 늘었고, 같은 기간 매출은 21.3% 증가해 6조6,155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2분기 영업이익이 1,307억원으로 전년 대비 121.9% 늘었다. 매출은 30.1%가 증가해 2조5,32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영업이익 감소는 일부 호선의 지체보상금(LD), 기타 사회비용, 생산 안정화 비용 증가로 1,400억원의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실 폭이 컸던 컨테이너선이 올해 인도되고 내년 상반기엔 90% 이상 완료돼 적자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매출 비중도 2분기 50%에서 3분기 60%로 늘어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손실 추세는 단기적인 흐름에 불과하며, 향후 흑자 전환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한창인 시기 홀로 적자 행진을 이어가는 건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수익성이 낮다고 평가되는 미국 MRO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하면 적자 폭이 오히려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한화오션의 행보에 업계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