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배 ‘꼬리 자르기’ 논란 속 자구안 내놓은 티메프, 채권단 설득 ‘난항’
채권단, 티몬 측 '소액 우선 변제 자구안' 거부 "정상화가 우선"
구 대표 반포 아파트 가압류 결정, 채권단 "구 대표 신뢰 훼손"
티몬·위메프 법률지원 제외해 내부 반발도, "일부 측근만 선별"
티몬·위메프(티메프)가 소액 채권자 약 10만 명에게 우선 변제하는 자구안을 제시했으나 채권단 측이 정상화가 먼저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자 수 감소는 채권단의 몸집부터 줄여 회생계획안을 신속히 의사 결정하는 중요한 첫 관문인데, 여기서부터 합의가 결렬된 것이다. 이에 지난달 29일 기업회생을 신청한 지 15일 만에 공개한 자구 계획안은 보완 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티메프 “소액 채권 우선 변제” vs 피해자 “회사 정상화 먼저”
13일 서울회생법원 회생합의2부(안병욱 법원장)는 티메프에 대한 회생절차 협의회를 열고 티메프가 제출한 자구계획안을 검토했다. 협의회에는 채무자인 류광진 티몬 대표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 채권자협의회 및 신정권 판매업체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일부 판매업체 대리인과 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중소벤처기업부) 공공기관(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이 참석했다.
자구안에는 소액 채권자인 미정산 파트너 약 10만 명(티몬 4만 명, 위메프 6만 명)에게 일정 금액(200만원)을 우선 변제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또 티메프의 정상화 방안으로는 △정산시스템 개편을 통한 파트너사 및 고객 신뢰 회복 △임차료 등 경비 절감 △인력 구조조정 △이익률 중심으로 사업구조 재편성 등이 포함됐다. 신뢰 회복에 대해서는 셀러에게 지급할 판매대금이 회사를 거치지 않는 에스크로 계좌 도입, 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빠른 ‘배송완료 후 +1일’ 정산일 및 선정산 방식의 결제주기 단축 등을 담았다. 아울러 특수관계자에 대한 채무는 전액 출자전환 후 무상감자하고, 셀러 미정산 대금에 대해서는 분할변제안과 일정 비율 채권 일시 변제 및 출자전환하는 2가지 변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티메프의 소액 채권 변제보다는 회사의 조기 정상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신정권 대표는 협의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판매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회사가 정상 운영이 가능한가,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계획들이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에 있다”며 “지금 티메프의 정상적인 운영 계획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만원을 일괄로 다 상환하겠다고 했으나 저희가 힘든 이유는 채권액이 아니라 회사가 오늘, 내일 하는 것 때문”이라며 “소액 채권을 위한 변제가 (우선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2,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통해 채권자 수는 크게 줄일 수 있지만, 거액이 물린 금융채권자들 입장에선 향후 변제받을 수 있는 자금 집행이 불투명해진다는 것이다. 다만 미정산대금이 200만원 이하인 상거래채권자들은 떼인 돈을 일시에 상환받을 수 있는 방안이라 고액금융채권자와 소액상거래채권자 간의 입장차도 돌출되고 있다.
이에 법원은 협의회 자리에서 ‘채권자 수가 많으면 절차적 비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자율구조조정(ARS)에서 채권자 수가 10만 명이 넘어가면 채권신고부터 시작해 회생계획안의 동의를 받기 위한 작업이 지난해진다. 채권자명부를 확인해 주소나 연락처 등을 파악하고 하도급 관계를 확인하는 데부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파악하는 채권과 소액채권자들의 신고 금액이 다르면 채권조사 확정재판도 거쳐야 하며 구조조정 과정이 더뎌지고, 채권단 협의도 어려워 모든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소액채권 우선 변제는 구조조정의 ‘첫 열쇠’로 지목된다. 법적으로 소액 상거래채권자와 고액금융채권자의 변제 순위는 평등하지만, 소액 상거래채권자의 경우 줄도산이나 연쇄 부도 등의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단, 채권단 협의회가 이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투자 유치를 위한 경영 정상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구조조정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구영배 반포자이 가압류 결정, 채권단 측 “전 재산 티메프에 증여해 조치해야”
이런 가운데 채권자들은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와 큐텐그룹을 상대로 잇따라 가압류 신청을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6일 채권자 삼성금거래소가 구 대표 부부 아파트를 대상으로 낸 36억7,500여만원의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가압류된 부동산은 구 대표와 부인이 7대 3 비율로 공동보유하고 있는 70억원대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다. 이번 가압류 결정으로 구 대표는 보유지분을 처분할 수 없게 됐다.
티몬과 위메프의 법인 자산은 지난달 29일 회생 신청으로 보전처분이 내려졌지만 구 대표와 큐텐그룹의 자산은 처분 대상이 아니어서 이같은 결정이 가능했다. 추후 삼성금거래소가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경매 등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신 대표는 “구 대표는 투명하지 않은 자금운용을 해 압수수색을 받는 등 신뢰가 훼손된 상태”라며 “사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려면 자신과 큐텐·큐익스프레스의 해외자산을 모두 공개하고 전 재산을 티메프에 즉각 증여해 미지급금을 정산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정책이사는 “구 대표 개인이 미지급 사태에 관여가 돼 있고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고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라며 “손해배상 책임이 있을 경우 채권을 보존하기 위해 보전 처분 절차인 가압류를 신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또 큐텐테크놀로지 등을 상대로 제기된 채권가압류 신청도 받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총 3건의 가압류 신청이 인용됐으며 규모는 42억원가량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9일 주식회사 문화상품권이 큐텐테크놀로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채권가압류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제3채무자인 하나은행의 큐텐에 대한 지급이 청구채권액만큼 정지된다.
같은 날 법원은 쿠프마케팅이 큐텐테크놀로지를 상대로 제기한 채권가압류 신청도 인용했다. 청구금액은 약 6억9,700만원으로 제3채무자는 헥토파이낸셜, 비바리퍼블리카 외 1곳이다.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몰테일인코퍼레이티드 외 1곳이 큐텐을 상대로 제기한 채권가압류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청구금액은 약 35억9,600만원이며 제3채무자는 큐텐테크놀로지다.
구 대표, 핵심 임직원에만 법률 지원 ‘꼬리 자르기’ 논란
한편 구 대표는 티몬과 위메프 임직원들은 법률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 내부 반발을 사고 있다. 김효종 큐텐 테크놀로지 대표는 13일 목주영 큐텐코리아 대표 등 6명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변호인 지원을 공지한 이메일을 보냈다. 참고인 조사는 법무법인 지평에서 입회 지원하고 피의자로 전환되거나 형사소송과 관련해선 법무법인 화우에서 맡는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이번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티몬과 위메프 임직원은 그룹 차원의 변호인 지원 대상에서 모두 빠졌다. 구 대표가 2000년 전후 인터파크 재직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류광진 티몬 대표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도 제외됐다. 미정산 사태와 계열사 임원에게 대형 로펌 변호인의 도움을 받도록 지원하면서 정작 티몬과 위메프 대표는 배제한 것이다. 이는 티몬과 위메프를 합병한 뒤 새로운 ‘K-플랫폼(KCCW)’을 만들어 사업을 정상화한다는 큐텐 차원의 회생안을 제시하며 두 대표에게 협조를 구할 때의 모습과는 상반된 태도다.
이를 두고 큐텐 안팎에서는 ‘꼬리 자르기’라는 비난이 거세다. 그룹 경영 사항의 핵심 정보를 쥔 큐텐 측근들과 입을 맞춰 각 사의 경영 실패로 법리적 대응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K-플랫폼 회생방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고수하는 두 대표와 사실상 결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티메프가 제출한 자구안에도 구 대표가 구상한 ‘티몬-위메프 합병 및 K-플랫폼 설립’ 방안은 빠져있다.
구 대표의 변호인 지원 명단에 이시준 큐텐 재무본부장(전무)이 빠진 것도 눈에 띈다. 이 본부장은 큐텐 계열 플랫폼의 재무업무를 총괄한 인물로, 구 대표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검찰이 티몬·위메프 사옥과 구 대표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한 다음 날인 지난 2일 주요인사 가운데 가장 먼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기도 했다.
이에 큐텐 안팎에서는 이 본부장이 검찰 수사를 전후로 구 대표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사실상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검찰 소환을 앞둔 구 대표가 법적 대응에서 자신과 보조를 맞추는 측근만 선별해 법률지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대응전략이 어떤 결과를 낼지는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