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트 “구글, 재택근무로 AI 경쟁서 밀려”, 논란 커지자 “실언했다”
슈미트 "구글, 악착같이 일하는 스타트업 이길 수 없어"
구글 근무시스템 비판한 스탠퍼드대 발언 공개 후 뭇매
알파벳 노조 "인력 부족·해고·경영진 무능이 발전 막아"
에릭 슈미트 구글 전 최고경영자(CEO)가 구글이 재택근무로 인해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취지의 발전을 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이를 철회했다. 슈미트 전 CEO는 재택근무가 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해 온 대표적인 인물로 자신의 발언이 공개된 후 구글 노조가 반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자신의 발언이 경솔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슈미트 “구글, 경쟁에서의 승리보다 워라밸 중시”
14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슈미트 전 CEO는 이메일을 통해 “구글과 직원들의 근무 시간에 대해 실언했다”며 “내 실수를 후회한다”고 밝혔다. 전날 스탠퍼드대학 유튜브에는 올해 4월 슈미트 전 CEO가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 교수와 학생들과 나눈 토론 내용이 게시됐는데 해당 영상을 통해 구글의 재택근무를 비판한 발언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이 영상에서 슈미트 전 CEO는 ‘구글이 오픈AI, 앤스로픽과 같은 스타트업에 AI 선두를 내준 이유가 무엇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구글은 일과 삶의 균형, 조기 퇴근에 원격 근무를 하는 것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악착같이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하다”면서도 “여러분이 회사를 설립해 다른 스타트업과 경쟁하려면 직원들이 일주일에 대부분을 집에서 일하고 하루만 출근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글의 2대 CEO인 슈미트는 2001~2010년 구글 CEO를 지냈고 이후 2015년까지 구글 이사회 의장, 2017년까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다. 지난 2020년 알파벳의 기술고문직을 내려놓으며 구글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앞서 그는 2022년에도 “더 많은 근로자가 강제로 사무실로 복귀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하는 등 재택근무 등 유연화된 근무 형태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슈미트 전 CEO의 이 같은 발언은 역풍을 불러왔다. 알파벳 노동조합은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유연한 근무 방식이 작업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며 “인력 부족, 사업의 우선순위 조정, 지속적인 해고, 정체된 임금, 프로젝트에 대한 경영진의 미흡한 조치 같은 요인들이 매일 직원들의 업무를 지체시킨다”고 반박했다. 이에 슈미트 전 CEO는 스탠퍼드대학에 해당 영향을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전날까지 조회수 4만 회를 넘긴 영상은 이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구글, 주 3일 출근하지 않으면 인사고과에 반영
WSJ에 따르면 슈미트 전 CEO의 발언과 달리 구글과 오픈AI는 팬데믹 이후인 2022년부터 주 3일 사무실 출근을 의무화했다. 지난해 7월 피오나 치코니 구글 최고인사책임자(CPO)는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주 3일 출근을 지키고 있는지 추적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경고했다.
구글은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0년 3월 미국 대기업 가장 앞장서 100%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원격 근무, 여가와 교육을 가능하게 한 화상 회의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다른 회사에 제안하기도 했다. 팬데믹이 종식된 후 주 3일 출근을 의무화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체제’로 바꿨지만 상당 수 직원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관리자나 부서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출퇴근하는 등 참여율이 저조하자 회사 측에서 강경책을 꺼내든 것이다.
직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는 학교 칠판 앞에 서 있는 치코니 CPO의 사진과 함께 “오늘 사무실에 출근할 수 없다면 부모님이 결석 신청서를 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직원은 “내 출근을 확인할 게 아니라 내가 한 일을 확인해라”는 글을 게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본사 옆에 구글 소유의 호텔에서 1박에 99달러의 할인된 가격에 숙박을 제공하기도 했다.
美 빅테크 CEO “재택근무는 비효율적·비도덕적”
팬데믹 이후 실적 부진에 빠진 미국의 기업들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직원이 사무실에 출근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가능한 출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회사와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회사는 주중 2~3일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계약’으로 절충하며 한발 양보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경영진은 재택근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고, 샘 알트먼 오픈AI CEO도 지난해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는 기술 산업의 가장 잘못된 실수 중 하나”로 “직원들이 영원히 원격에 머물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재택근무는 비효율적이고 사무실에 온 엔지니어들은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재택근무는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근무형태다. 현재 재택근무를 둘러싼 논란은 팬데믹을 거치며 직장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사람들과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을 바라는 집단 간의 ‘문화 충돌’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이견이 단숨에 좁히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재택근무를 둘러싼 직원과 경영진의 대립은 채용을 결정하는 ‘권력의 추’가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팬데믹 기간 동안 재택근무가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인력 부족 탓에 노동자 우위의 고용 시장이 형성된 영향이 크다. 모든 기업이 탐내는 인재라면 지금도 주 5일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 현재 주도권은 기업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해고 사유 중 하나로 재택근무를 거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