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판매 부진 원인으로 지목된 화재 이슈, 시장선 “이미 지난해부터 ‘전기차 캐즘’ 본격화”
테슬라 신규 등록 대수 17.7% 감소, 모델Y 판매량도 부진
전기차 화재 이슈 부각, 모델Y 중고차 가격 3.36% 급락하기도
하이브리드차 수요는 오히려 증가, 전기차 수요 빠지고 하이브리드에 몰렸나
유럽에서 테슬라 판매 실적이 지속적인 감소세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기차 화재 이슈가 전기차 업계의 추락을 가속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미 테슬라 등 주요 업체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데다 중고차 가격 등 지표가 폭락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화재 이슈를 전기차 판매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기차 화재 문제가 부각되기 전부터 이미 전기차 수요 감소는 가시화한 상태였단 주장이다.
테슬라 신규 누적 등록 대수 급감, 화재 이슈 영향?
19일 전기차 통계 사이트 ‘EU-EVs’에 따르면 올해 1~7월 유럽 15개국에서 테슬라 전기차의 신규 누적 등록 대수는 14만7,581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간 17만9,358대와 비교하면 17.7% 급감한 수준이다. 당초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등록 대수 추이를 보였지만, 4월부터 격차가 극심해지는 양상이다.
유럽 내 테슬라의 판매 부진은 또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카스쿠프(Carscoop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EU)과 영국 신차 판매량 순위에서 테슬라 모델Y는 10만1,181대를 기록하며 8위에 그쳤다.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모델Y는 지난해 상반기 같은 통계자료에서 판매량 순위 1위에 오른 바 있는 차량이다. 불과 1년 만에 유럽 내 베스트셀링카에사 8위로 밀려난 것이다.
이에 시장에선 최근 불거진 전기차 화재 이슈가 판매 부진을 불러온 것 아니냐는 견해가 제기된다. 실제 최근 들어 전 세계에 전기차로 인한 대형 화재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화재가 대표적이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16일(현지 시각) 포르투갈 리스본의 움베르투 델가도 공항(Humberto Delgado Airport) 인근의 한 렌터카 주차장에서 불이 나 차량 200대 이상이 전소됐다. 불길은 이곳에 주차돼 있던 테슬라 전기차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포르투갈 방송 SIC는 화재가 맨 위층에 주차된 전기차에서 시작돼 다른 차량으로 번졌다고 보도했다.
지난 1일엔 인천 서구 청라동 제일풍경채 2차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추자돼 있던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해 아파트 5개동 480세대가 화재로 인한 피해를 봤다. 이어 지난 16일엔 경기 용인의 한 도로에 주차돼 있던 테슬라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진 바도 있다. 이때 불이난 차종은 테슬라 모델 X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기차로 말미암은 화재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전기차 포비아(공포심)가 새겨진 것 아니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중고 전기차 가격도 폭락
소비자들의 전기차 기피 현상은 중고차 가격 폭락 등 가시적인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K Car)에 따르면 인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일주일 동안 ‘내 차 팔기 홈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이 전주 대비 무려 184%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10%는 인천 화재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EQE 시리즈 모델이었다.
중고차 온라인 판매 플랫폼 엔카닷컴에도 12일 기준 벤츠 EQE 모델이 109대 등록됐는데, 이 중 100대가 지난 5일 이후 등록된 중고차였다. 이 모델의 중고차 시세는 기존 7,000만원대에 형성돼 있었지만, 화재 사고가 불거진 이후 6,000만원 아래까지 떨어졌다. 이외 다른 전기차들도 가격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의 ‘8월 중고차 시세표’를 보면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중고차 가격은 전달 대비 각각 1.97%, 1.11% 하락했다. 테슬라 모델3와 모델Y는 2.61%, 3.36% 하락해 수입 중고차 평균보다 하락 폭이 훨씬 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완성차업체들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거나 대규모 할인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전기차 판매 전략을 구사하는 모양새다. 우선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는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다. 현대차는 13종 전기차 가운데 12종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국산 배터리를 채용했고, 코나 일렉트릭만 중국의 CATL 배터리를 채용했다고 밝혔다. 기아도 레이EV와 니로EV 등 일부 전기차 기종에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됐고, 나머지 기종은 국내 배터리 제품을 탑재했다고 밝혔다. 아우디의 경우 전기차 e-트론 55 콰트로를 비롯해 e-트론 스포츠백, e-트론S 콰트로 등을 29.5% 할인판매하고 있으며, BMW도 전기차 i7 xDrive 60과 iX xDrive 50 스포츠플러스를 각각 12.7%, 12.9% 할인된 가격에 판매 중이다.
“화재 이전부터 기세 꺾여, 하이브리드차로 수요 옮겨 갔다”
한편 시장 일각에선 화재 이슈를 전기차 판매 부진의 전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화재 이슈가 부각되기 이전부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출 하락이 가시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전기차 판매량은 전체 신차 판매의 10%를 차지하는 등 인기가 높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쩍 기세가 꺾였다. 고금리 장기화, 보조금 중단, 충전 인프라 부족 등 각종 악재가 겹친 탓이다.
반면 하이브리드차는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전기차 수요가 빠진 자리에 하이브리드차가 자리를 차지한 영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7월 친환경차 내수 판매량은 34만7,845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4% 증가했는데, 하이브리드차(27.9%), 전기차(-13.3%),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36.3%), 수소차(-38.9%) 등 친환경 차종 중 판매량이 늘어난 건 하이브리드차뿐이었다. 수출 부문에서도 전기차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5% 감소할 때 하이브리드차는 전년 대비 29.0% 증가했다.
전기차 업체들이 가격 인하 경쟁을 펼친 건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고 하이브리드차 성장이 본격화한 이 시점이다. 지난 1월 중국 전기차 업체 BYD가 독일에서 아토3 등의 전기차 가격을 15% 내린 데 이어 테슬라도 중국과 독일 등 유럽에서 판매하는 모델 가격을 2.8%에서 9%까지 낮췄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2024년형 아이오닉5 등 일부 차종에 대해 최대 7,500달러(약 990만원)의 할인 혜택을 한시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고금리 등 환경 아래 하이브리드차로 시장의 수요가 옮겨가기 시작한 점을 전기차 위기의 원인으로 파악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게 시장 관계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