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파운드리 공장 착공 나선 TSMC, ‘기업 문화 간극·현지 인력 확보’ 등 과제는 여전
TSMC 유럽 첫 번째 공장 착공, 독일 정부와 '윈-윈' 이뤘나
미국 애리조나 등에도 공장 건설 진행, 공격적인 시장 확장 움직임
서구권 '워라밸' 기조 두고 갈등 표출, 현지 인력 수급 난항 예상
대만 반도체 업체 TSMC가 독일 드레스덴에 유럽 첫 번째 공장 착공에 나섰다. 생산 기지를 각국에 배치해 시장을 다변화하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겠단 취지로 풀이된다. 독일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받으면서 서로 ‘윈-윈(Win-Win)’ 전략을 취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여전히 부담은 남아 있다. 서구권의 기업 문화와 TSMC 및 대만의 상명하달식 경직된 조직 문화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실제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의 경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전부터 현지 직원들이 줄퇴사를 이루기도 했다.
TSMC, 독일 드레스덴 공장 신설
20일(현지 시각)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TSMC는 이날 독일 드레스덴 공장 기공식을 진행한다. TSMC는 이 공장에 28/22㎚(나노미터·10억분의 1m) 상보형금속산화 반도체(CMOS) 기술과 16/12㎚ 핀펫(FinFET) 공정을 도입할 예정이며, 2027년 말부터 해당 공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번 드레스덴 공장은 TSMC가 공장 지분의 70%를 갖고 TSMC의 주요 고객사인 보쉬와 인피니언,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가 나머지 지분 30%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정부는 50억 유로(약 7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TSMC가 유럽에 생산 기지를 건설하고 나선 건 생산 기지 다변화 및 공급 확대를 위함이다. TSMC는 엔비디아와 AMD 등의 AI 가속기를 독점 생산하고 있는 데다 애플의 A18 프로세서와 퀄컴의 스냅드래곤8 4세대, 미디어텍 디멘시티 9400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주문을 몰아받고 있어 거듭 공급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유럽에 생산 기지를 추가함으로써 공급 확대를 도모함과 더불어 유럽 현지 반도체 수요까지 함께 잡겠단 게 TSMC의 최종 목표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의 독일 드레스덴 공장은 유럽 고객사 물량 확보를 위한 전진 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고객사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지면 고객사의 요청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진행하기도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TSMC의 공격적인 투자로 삼성전자 등 경쟁사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기지 건설로 TSMC의 점유율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단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1분기 점유율은 61.7%로 2위 삼성전자(11%)와 50%p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 2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6,735억1,000만 대만달러(약 28조5,000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독일 드레스덴 공장을 시작으로 유럽에까지 TSMC의 손이 뻗치면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단 의미다.
이런 가운데 TSMC는 대만과 유럽 외 해외 생산 기지 건설도 지속하고 있다. 올해 말 양산 개시를 목표로 일본 구마모토 공장을 빠르게 건설 중이며, 인근에 제2공장 건설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외 미국 애리조나에도 미국 정부로부터 66억 달러(약 8조9,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공장을 건설 중이다. TSMC의 공격적인 시장 확장 노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구형 공정에 주력하는 독일 공장, ‘윈-윈’ 전략 취한 듯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독일 공장 신설 자체가 TSMC에 큰 의미가 있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독일 공장의 주요 설비는 10㎚ 이상의 구형 공정이 대부분이라서다.
지난해 2분기 기준 TSMC의 매출은 53%가 5㎚ 및 7㎚ 공정에서 발생했다. 물론 16㎚, 28㎚ 등 10㎚ 이상 공정에서 발생한 매출도 22% 수준으로 높은 편이지만, 독일 공장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서는 2027년이면 이 공정의 매출 비중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아이폰15를 시작으로 3㎚ 매출이 본격화할 전망인 데다 TSMC 계획상 내년께부터 2㎚ 공정 양상에 돌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에 진출한 다른 공장과 비교해도 독일 공장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축에 속한다. 이는 공장에 투입된 자금량만 봐도 알 수 있다. TSMC가 미국 공장에 투입한 자금은 총 400억 달러(약 53조2,000억원)에 달하는 반면, 독일 공장엔 최대 11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 수준의 자금이 투입됐다. 게다가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공장은 4㎚ 및 3㎚ 공정 설비가 들어설 예정이다. 투입한 자금에 있어서도 공정 단계에 있어서도, 독일 공장은 TSMC에 있어서 후순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독일 입장에서 TSMC 공장 유치는 우선순위 과제 중 하나다.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으로 꼽히는 TSMC의 힘이 필요해서다. 독일 정부가 TSMC 측에 대량의 보조금을 지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TSMC의 독일 공장 설립은 TSMC와 독일 측의 ‘윈-윈’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TSMC는 독일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으면서 적당한 속도 조절에 돌입할 수 있게 됐고, 독일은 어느 정도의 반도체 점유율 확보에 성공한 셈이라서다. TSMC 입장에선 독일을 시장 다변화 포트폴리오에 포함할 수 있게 됐단 점도 호재로 꼽힌다.
극심한 기업 문화 차이, ‘인력 확보 리스크’ 가시화
문제는 공장 신설 이후 현지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여부다. TSMC는 앞서 미국 첫 공장 가동에서 난항을 겪은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만보다 훨씬 높은 인건비를 제시하는 등 노력을 이어왔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문화 차이다. 미국과 독일 등 서방 국가에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혀 있다. 회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기본 문화라는 것이다. 반면 TSMC는 격무가 흔한 대만 내에서도 업무 강도가 높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모리스 창(장중머우) TSMC 창업자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직원들의 워라밸을 비판하며 “내가 젊었을 때는 일이 없다면 곧 삶도 없었다”고 일갈한 것이 이들의 간극을 대변한다.
이 같은 문제로 많은 미국 현지 직원이 떠나갔고, TSMC 애리조나 공장은 인력 수급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직원 2,200명을 현지 인원으로 채우지 못해 절반가량을 대만에서 데려올 정도다. 현재 애리조나 공장 완공 이후 필요한 근무 인력이 6,000명 정도로 추산된단 점을 고려하면, TSMC 입장에선 앞길이 막막한 상황이다. 결국 다소 후진적인 기업 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한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을 넘어 독일 정부와의 윈-윈 계획마저 틀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