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 ‘정상화 위한 홀로서기’ 시동, 조직 개편하고 다시 뛴다
티몬, 재무팀·상품본부 신설로 '경영 정상화' 시도
큐텐 벗어나 독립 경영, 대표 업무 지휘 체계 확립
에스크로 기반 시스템 도입 및 사흘 내 대금 정산도 추진
정산 지연 사태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던 티몬이 조직 개편과 함께 플랫폼 재건의 뜻을 전했다. ‘독립경영체제 구축’과 모바일 커머스의 핵심 가치인 ‘큐레이션 역량 강화’가 골자다. 이를 통해 중소상공인의 성장과 판로개척을 지원하며 동반성장하는 플랫폼으로 역할하겠다는 구상이다.
큐텐서 재무·자금관리 독립, 정산 주기 축소도
23일 티몬은 재무·자금 조직을 신설해 류광진 티몬 대표를 중심으로 업무 지휘 체계를 확립하는 조직 구조 개선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티몬은 먼저 고객의 구매를 지원하는 결제 조직과 준법경영을 위한 법무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이와 함께 영업 부문을 관할하는 상품본부도 류 대표 직속으로 신설한다. 사회적 물의를 빚어 입점 판매자(셀러)들이 끊긴 상황에서 사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관련 부서를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티몬 측은 고객 특성과 소비 성향 등을 고려해 상품을 선별하는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등 중소상공인과 협력해 플랫폼을 정상화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에스크로 기반의 새로운 정산 시스템도 이른 시일 내로 도입해 서비스 정상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신규 정산 시스템을 도입하면 자금 안정성이 높아지고 대금도 상품 발송 후 3일 안에 정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류 대표는 “판매자와 고객 여러분께 끼친 피해와 우려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투자 유치와 자본 확충 등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직 개편은 이를 위한 시작으로, 조직과 인사를 합리적으로 쇄신해 경영 투명성을 확립하고 대내외 신뢰 회복과 장기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힘쓰겠다”고 설명했다.
티몬의 이번 행보는 회사 자금을 직접 관리하고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티몬은 지난 2022년 큐텐에 인수된 이후 큐텐 자회사인 큐텐테크놀로지에 재무 기능을 떼어준 채 운영돼 왔다. 법인의 재무 관리 기능을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도맡는 기형적인 방식이었다. 특히 이 같은 재무 구조는 최근 대금 미정산 사태를 초래한 핵심 원인 중 하나로도 지적된다. 재무·자금 조직 신설이 티몬 정상화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 해석되는 배경이다.
피해자 보상이 먼저, 정산 주기는 부차적 문제
하지만 티몬의 플랫폼 재건에 대한 소비자와 판매자(셀러) 반응은 싸늘하다. 티몬의 경영 자금 확보와 고객 유입 가능성 등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티몬·위메프(티메프) 피해 소비자 A씨는 “앞으로 티몬에서 누가 사겠냐”며 “소비자들이 안 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피해 복구 없이 경영 정상화 먼저 하겠다는 건 정산 지연 사태가 사기로 보이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업이면 경영 능력도 중요하지만 도덕과 신뢰가 우선인데 과연 고객들이 믿어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피해 판매자들 역시 경영 정상화 시도는 반기면서도 실제 운영이 잘 될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고 있다. 신정권 티메프 판매자 피해자 대표는 “정상운영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실제 경영에 어느 정도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다”며 “직원들에 대해서도 권고사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직적인 세팅보다도 자금이 먼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신 대표에 따르면 셀러들은 티몬으로부터 해당 내용을 공유받지 못한 채 기사로 소식을 접했다. 신 대표는 “셀러들과 소통하고 계신 건지, MD 조직이 갖춰진 건지 궁금하다”며 “재무·자금 조직의 복원은 독립 경영을 상징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큐텐에서 대여금을 돌려받은 건지도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티몬이 내놓은 정산 주기 단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의견이 나온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산주기’가 아닌 ‘지급불능 사태’로 인한 것이란 지적이다. 심재한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티메프 사태는 쉽게 말해 장사가 안 돼서 망한 것”이라며 “결국 돈을 주고 물건을 받지 못한 소비자나 정산금을 못 받은 입점업체 등 다수의 채권·채무관계가 존재하는데 이를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가 핵심 문제고 대금 정산주기는 부차적인 개념”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플랫폼사들, 정산 주기 단축 움직임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자발적 정산 주기 단축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정산 주기와 관련한 공지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오늘의집은 지난 1일 통신판매중개 방식(3P) 국내 파트너사 1만400여 개 기업에 판매대금 약 675억원을 조기 정산했다. 건실한 재무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이번 정산대금을 조기 집행했다는 설명이다. 오늘의집은 월 2회 주기로 파트너사에 대금을 정산한다. 매월 1일부터 14일까지 구매 확정된 정산금은 20일에, 매월 15일부터 말일까지 구매 확정된 정산금은 내달 5일에 지급한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도 자동 구매 확정 제도를 5일에서 3일로 단축했다. 구매 확정 후 즉시 정산이 완료되는 식이다. 번개케어를 사용하는 판매자에 한해선 검수 및 판매 완료 후 구매확정 없이도 바로 정산된다. 이달부터 모든 거래에 에스크로 시스템을 적용하기도 했다. 홈서비스 플랫폼 미소도 전 파트너의 정산 절차가 서비스 완료 후 평균 3일 내로 집행된다고 밝혔다. 최근 주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발생한 판매대금 미정산금 지연 문제가 불거지며, 파트너의 불안을 잠재우고 재무적 안정성과 건전성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미소 측은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움직임도 포착된다. 당정협의체는 이달 초 정산 기한 지정과 에스크로 도입 등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대 60일에 달하는 이커머스 정산 기한을 단축하고 판매 대금을 별도 관리하는 의무 규정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지급결제대행업체(PG)사 등록 요건 및 경영지도 기준을 강화하고 미충족 시 제재 가능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야당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전자상거래법’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은 거래정산금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정산주기를 14일로 명시했다. 이와 함께 통신판매 중개 거래의 범위를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제공하는 오픈마켓서비스(거래알선), 위탁판매까지 포괄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등록 대상인 지불결제회사 등을 상대로 금융당국이 허가 대상(금융사)에 준하는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정부 차원의 제도 마련은 필요하지만 자칫 과도한 규제가 되지 않게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을 제도 마련의 필요성에는 대체적으로 공감하지만, 지나친 규제가 기업의 성장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